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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파리스 1

지중해 문명기 4권BRBR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nsp; 글 싣는 순서 BR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트로이 연합군) BR 1. 트로이 연합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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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4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2(
트로이 연합군)


1. 트로이 연합군

2. 고대 그리스의 전투

3. 헥토르 1--삶과 죽음

4. 헥토르 2--시신훼손과 신들의 분노

5. 헥토르 3--시신송환과 장례

6. 아에네아스

7. 파리스 1--오늘 이야기

8. 파리스 2

9. 트로이로스

10. 펜테질레아와 아마존

11. 멤논과 이디오피아

12. 에오스

13. 사르페돈, 돌론

14. 아폴론, 아프로디테, 제우스

7. 파리스 1

◆1. [일리아드]에서 파리스에 대한 묘사

아내 헬레네가 파리스와 정분이 나 도망간 행위 자체가 전쟁의 직접 원인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원인에 대해 남편인 메넬라오스가 "여자가 어디 한둘이냐"라면서 헬레네를 잊었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메넬라오스가 크게 분개하면서 아내 헬레네를 되찾고, 헬레네를 유혹한 파리스를 응징하겠다는 결의를 했기 때문에 전쟁이 발발한 것이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메넬라오스다. 영화 [트로이]에서 아에네아스를 잘못 그렸듯이 메넬라오스 역시 신화에 전하거나 일리아드에 기록된 모습과는 사뭇 다르게 묘사됐다. 뛰어난 용장은 아니지만 메넬라오스는 미남자이며 용감하게 전투에 나서고, 마음씨 또한 고운 그런 성정의 그런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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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스 모자이크. 귀공자 스타일의 미남자 파리스의 면모를 가장 잘 보여주는 고대 로마시대 모자이크 작품이다. 루브르. ⓒ김문환

이런 메넬라오스가 복수를 맹세한 인물. 파리스(호메로스는 파리스를 알렉산드로스라고 부름. 이는 알렉산더의 그리스식 이름). 파리스의 출생과 헬레네를 만나게 된 과정은 앞서 자세히 살펴봤다. 여기서는 트로이 전쟁에서 파리스의 활약상과 그의 죽음을 들여다 본다. 신화는 물론이고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에 파리스를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대목을 찾기는 어렵다. 특히, 트로이 전쟁을 자기민족인 아카이아 연합군의 트로이에 대한 응징으로 간주하는 시각을 갖고 있던 호메로스는 전쟁의 원인제공자 파리스를 곱게 바라볼 리 없었다. 그렇다고 자기 입으로 파리스를 비난하지는 않는다. 호메로스는 그렇게 1차원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다른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파리스를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나약한 사람으로 규정하는 방법을 취한다. 그것도 형제 헥토르나 아내 헬레네 처럼 파리스와 가까운 인물을 동원해 파리스를 색정으로 가득찬 형편없는 인물로 그려내는 그래서 독자들로 하여금 파리스와 트로이가 응징돼도 좋다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2차세계 대전을 그릴 때 미국측 영화는 시종일관(始終一貫) 미군을 용감하고 정의감에 가득찬 군인상으로 미화하고 독일군을 바보나 악한으로 만드는 수법과 같다. 독일측의 영화는 물론 정반대였고. 이얘기가 나오니 70년대 TV가 대중화 되면서 일요일 저녁을 풍미했던 미국 TV 시리즈 [전투(Combat)]가 떠오른다. 이 시리즈를 통해 인도적이며 용감한 정의의 사도로서 미군의 모습을 어린시절부터 뇌리속에 깊이 각인시켜왔던 한국사람들이 요즘 미군의 실체를 객관적으로 들여다보기 얼마나 어려울까? 쉽게 짐작,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은 그렇고. 남한의 반공영화 역시 북한군을 무뢰한으로 북한의 영화는 남한군을 미제 앞잡이로 그리는 일방성과도 궤를 같이 한다.

자신을 아카이아인의 후예라고 여기는 호메로스의 기록 [일리아드]를 읽을 때 우리는 이점을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무릇 어느 나라도 한쪽이 일방적으로 좋고 나쁨이란 있을 수 없는 법. 독자들은 상황에 따라 원작자들의 이런 편견까지 파악하고 작품을 접해야 진실에 접근할 수 있다. 동양 최고의 고전으로 꼽힐 만한 소설 [삼국지] 역시 마찬가지다. 원작자인 중국민족의 우수성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이민족들은 우매한 족속으로 비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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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시대 도자기에 그려진 양치는 파리스. ⓒ김문환

호메로스의 파리스에 대한 묘사를 들여다보자. 먼저 헥토르의 입을 통한 비난.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와 대결하려다 겁을 먹고 도망가는 장면에서 호메로스는 "파리스가 숲속에서 독사를 보고 벌벌 떨며 도망치는 사람 같았다"고 묘사하며 헥토르의 말로 뒤를 잇는다. 헥토르 왈(曰). "이 비겁한 녀석아! 너 세상엔 왜 나왔냐? 멋이나 내고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고... 차라리 나가 죽어라, 죽어, 임마. 네가 몽달 귀신이나 됐다면, 오늘 우리조국이 이렇게 어려움에 처하지는 않았을 것을... 네 매끈하게 생긴 얼굴을 보고 여자들은 너를 최고의 용사로 잘못 생각하겠지.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꼬셔 데려올 때도 그런 나약한 모습이었나. 헬레네는 너에게 어울리지도 않는 여인이다. 조국과 아버지를 모욕시킨 녀석 같으니라구. "

호메로스는 이런 원색적인 비난도 모자라 아내 헬레네의 입을 통해서도 파리스를 짓밟는다. 싸움을 피하고 집에 도망와 있는 파리스를 형 헥토르가 방문했을 때 헬레네가 시아주버니인 헥토르에게 던지는 말. 헬레네 왈(曰). "아주버님, 저는 죄많은 여인이랍니다. 죄를 짓고 트로이로 올 때 저는 더 훌륭한 남자의 아내가 되기 위해서였지요. 그러나 이게 뭡니까? 저 양반 파리스 말예요. 오늘의 내 남편. 불의에 맞설 줄 알기나 하나요? 줏대가 있기를 하나요? 앞으로 좋은 방향으로 바뀔 가능성도 없어 보입니다. 저 사람은 자기가 뿌린 씨를 거둘 거예요. 안타까운 것은 아주버님이 공연히 저희 때문에 더 큰 고통을 겪고 계시는 거랍니다." 아내에게 이 정도 평가를 받고 사는 남자라면. 글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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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네. 아테나 흑색 인물기법. 브리티시 뮤지엄. B.C 520년 작품. ⓒ김문환

한 대목 더 있다. 헬레네가 파리스를 비난하는 장면 말이다. 파리스가 메넬라오스와 결투를 벌이다 죽음 일보직전 신의 도움으로 간신히 목숨을 건진 뒤 고대광실(高臺廣室)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헬레네의 침실을 찾았을 때이다. 파리스의 몰골을 본 헬레네가 한마디 쏘아 붙였다. 헬레네 왈(曰)"어이구. 사지(死地)에서 살아 돌아오셨네. 위인이셔, 위인. 차라리 결투에서 죽고 말지. 내 전남편의 손에 죽기를 얼마나 바랐는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다시 나가 싸워봐요 좀, 용감하게." 그러나, 헬레네는 곧 마음을 고쳐 먹는데. "전투에 나가지 마세요. 당신은 메넬라오스 손에 죽고 말테니까요." 말을 마친 헬레네. 파리스가 달콤한 사랑의 말을 풀어내자 언제 그랬냐는 듯 파리스와 잠자리에 든다.

◆2. 파리스-메넬라오스의 결투로 전쟁 끝내자

아킬레스가 브리세이스 문제로 아가멤논과 갈등을 일으켜 전투에서 손을 뗀 뒤, 트로이 성벽 밖에 트로이군과 아카이아 연합군의 대병력이 집결했다. 성벽 위에서 프리아모스 왕과 트로이 사람들이 전투를 지켜보는 가운데 파리스가 맨앞으로 나섰다. 어깨에 표범가죽으로 만든 옷을 걸치고 특유의 활을 멨다. 허리춤에는 칼을 차고, 손에는 창도 들었다. 가장 반긴 이는 아카이아 연합군의 메넬라오스였다. "어, 이녀석 봐라. 덤비라 이거군. 좋다. 내가 나가 네 소원대로 목숨을 끊어주마" 메넬라오스가 전차에서 뛰어내렸다. 이제야 아내를 빼앗기고 10년간 이국땅에서 전투를 치르면서 고생한 원수를 갚을 수 있겠다는 일념으로 어느새 날쌔고 강인한 사자의 모습이 돼 있었다. 메넬라오스가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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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넬라오스. 브리티시 뮤지엄. B.C 6백년 작품. 코린트 양식의 접시속 그림. 메넬라오스라는 그리스어 이름이 얼굴 옆에 씌여져 있다. 메넬라오스는 잘생겼고, 뛰어난 용사였지만 심성은 고왔던 것으로 신화는 전한다. ⓒ김문환

아! 그러나, 겁먹고 도망가는 파리스. 싸워보기도 전에 자기 진영으로 되돌아가 숨는게 아닌가! 트로이 진영은 일순간 "악" 소리를 내고 경악했다. 저럴 수가! 형 헥토르마저 기가 막혀 꾸짖자 파리스가 말을 받는다. "형님. 나를 너무 책망 마시오. 용감하고 강한 형님과 나는 다르지 않소. 아프로디테가 건네준 선물(헬레네)을 인간인 내가 어찌 거역할 수 있으리오. 더구나, 애걸복걸(哀乞伏乞)해도 얻기 어려운 선물인데... 형님이라도 운명으로 받아들였을 것이오." 한숨을 길게 몰아쉰 파리스는 뭔가 결심한 듯 무겁게 입을 열었다. "좋소, 형님. 내가 나서리다. 결자해지(結者解之). 트로이와 아카이아 연합군의 피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소. 메넬라오스와 내가 서로의 전재산과 헬레네를 걸고 싸우도록 합시다. 이기는자가 모두를 갖고, 양군은 평화협정을 맺은 뒤 전쟁을 중단하는 것이 좋겠소."

'기특한 동생이로고'. 헥토르가 파리스의 말에 만족해 하며 아카이아 진영에 파리스의 의중을 큰소리로 전달했다. 메넬라오스가 받았다. "나도 동의하는 바요. 양진영의 피해를 더이상 보고 둘 수는 없소이다. 파리스와 나 둘이 해결합시다. 먼저 검은 암양 한마리와 흰 숫양 한마리를 잡아 희생의식을 치른 뒤, 신에게 맹세합시다." 아카이아 연합군은 물론 트로이 진영에서도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제 지긋지긋한 전쟁을 그만둘 수 있게 된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10년을 끌던 전쟁을 종식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의식과 결투가 시작될 무렵 한 사람이 빠질 수는 없다. 헬레네. 그녀도 집에서 나와 성벽 위에서 결투장면을 내려다 봤다. 심정이 어땠을까? 옛 남편과 현재 남편이 자신을 놓고 결투를 벌이고, 누구든 이기는 자의 품으로 가야하는 자신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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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에게 기원하는 희생의식 장면. ⓒ김문환

먼저 의식이 시작됐다. 프리아모스왕이 성에서 나와 양진영의 가운데로 갔다. 아가멤논도 프리아모스 앞에 와 섰다. 아가멤논이 두팔을 벌려 하늘을 바라보며 외쳤다. "제우스 신이시여. 파리스가 메넬라오스를 이기면 헬레네는 물론 메넬라오스의 재산을 갖게 해주십시오. 메넬라오스가 이기면 헬레네와 파리스의 재산을 차지하며 트로이는 아카이아 연합군에 배상금을 물도록 해주십시오. 어기는 자는 누구든 천벌을 내려 신의 엄숙함과 위엄을 살려주십시오." 말을 마친 아가멤논은 양의 목을 자르고 기원의 술잔을 올렸다. 프리아모스도 "누구든 신의 뜻대로 되도록 하라"는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이제 결투만 남았다. 헥토르와 오디세우스가 결투 진행위원으로 선정됐다. 둘은 파리스와 메넬라오스의 주사위를 투구에 넣고 뽑았다. 파리스 주사위가 나왔다.

파리스가 먼저 창을 던지는 것이다. 파리스는 형제인 리카온의 갑옷을 입고, 투구에 각반을 찬뒤 창을 들고 앞으로 나왔다. 번쩍이는 금속제 무구에 파리스의 풍채가 유난히 빛나 보였다. 오디세우스와 헥토르가 정해준 자리에 둘이 섰다. 미국 서부 황야에서 결투라면 둘이 반대 방향으로 걷다가 돌아서서 총을 소는 것이지만, 트로이 전쟁에서는 둘이 제자리에 서고 주사위로 뽑힌 사람이 먼저 창을 던지고 다음 사람이 창을 던지는 방식을 취했다. 창을 한번씩 던진 뒤에는 칼을 빼 들고 접근전을 펼치며 상대를 제압하면 된다.

파리스가 창을 던졌다. 메넬라오스가 방패로 막아냈다. 다음은 메넬라오스가 이를 악물고 던?병? 아뿔싸! 창이 파리스의 방패를 뚫고 갑옷마저 파고 들었다. 다행히 치명상은 입지 않았다. 뒤로 넘어진 파리스를 향해 메넬라오스가 칼을 내리쳤다. 파리스의 투구가 벗겨지고, 파리스는 넘어져 꼼짝없이 죽음을 맞게될 상황으로 몰렸다.

메넬라오스는 그러나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그자리에서 파리스를 베면 끝인데, 파리스를 자기진영으로 데려간 것이다. 투구 끝에 달린 깃털 장식을 손에 잡고 파리스를 질질 끌었다. 투구가 끈으로 턱에 단단히 고정돼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메넬라오스는 파리스를 자기 진영 앞에서 철저히 욕보인 뒤 죽일 심산이었다. 그러나, 갑자기 아프로디테가 나타나 투구 끈을 풀었다. 이어 파리스를 하늘로 솟게 한 뒤 그의 집에 데려다 줬다. 자기진영에 도착해 빈 투구만 끌고 온 것을 알아챈 메넬라오스는 길길이 날뛰었다. 하지만, 다 소용없는 일. 전쟁을 지속시키려는 제우스의 뜻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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