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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야 미친다/기타리스트 안형수

저는 요즘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한양대 정민 교수가 쓴 이 책은 조선시대 숨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미쳐야(狂) 미친다(及). 미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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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요즘 '미쳐야 미친다'라는 책을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한양대 정민 교수가 쓴 이 책은 조선시대 숨은 예술가들과 지식인들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미쳐야(狂) 미친다(及)'. '미칠 정도로 파고들어야 어느 경지까지 미칠 수 있다'는 뜻이지요.

"잊는다는 것은 돌아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것을 해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한다는 말이다. 붓글씨나 그림, 노래 같은 하찮은 기예도 이렇듯 미쳐야만 어느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얼마나 미쳐야 할 것인가?"

정민 교수는 조선시대 박지원이 쓴 '형언도필첩서'에 나오는 말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이 말은 조선시대의 예술가들에만 적용되는 얘기가 아닐 터이지요. 이 구절을 읽자마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습니다. 클래식 기타리스트 안형수 씨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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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가 된 이발소 소년

강원도 양구의 시골 마을에 한 소년이 살았습니다. 이 소년은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동네 이발소에서 일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슬퍼질 때도 있었지요.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에서 접한 클래식 기타 음악에 반했습니다. 이유도 모르게 그저 좋았고, 나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뭉클뭉클 솟았습니다. 그는 앞 집 형의 낡은 기타를 빌렸고,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얻은 기타 교본들을 뒤적이며 혼자 연주법을 익혔습니다.

그렇게 사춘기를 보낸 소년은 넓은 세상을 봐야겠다는 생각에 서울로 올라옵니다.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검정고시를 준비했습니다. 너무나 고생스러워 다 포기하겠다는 생각도 여러 번, 좋아하는 기타를 연주할 시간도 없었습니다. 그러다 군대를 다녀온 그는 경기도 광명의 조그만 기타 공방에 들어갑니다. 기타 없이 살 수 없었던 그는, 기타와 관련된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공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다시 연주를 시작했습니다. 낮에는 기타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밤에는 잠을 줄이며 기타 연습에 몰두했습니다. 생활은 여전히 궁핍했습니다. 감기 걸려도 약 한 번 제대로 사 먹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보람은 있었습니다. 1987년, 당시 국내 유일의 기타 콩쿠르였던 한국 기타협회 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이지요. 유명 음대 학생들도 많이 참가했던 대회였습니다.

이 콩쿠르의 심사위원이었던 한 교수의 권유에 따라 그는 음대에 진학합니다. 기타 제작기술을 배워놓은 덕택에, 대형 악기제조업체에서 일하면서 학비를 벌 수 있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는, 꿈에 그리던 스페인 유학 길에 나섰습니다. 다른 사람의 머리를 깎아주기도 하고, 거리의 악사로 활동하기도 하면서 유학 비용을 충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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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그는 국내 최고의 클래식 공연장이라는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섰고, 자신의 음반도 두 장 냈습니다. 강원도 양구, 고향에서 공연했습니다. 중학교도 가지 못하고 이발소에서 일하던 소년이, 성공한 클래식 기타리스트로 금의환향한 것입니다. 이 소설 같은 성공 스토리의 주인공이 바로 안형수 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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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기타가 좋아서' 살아온 삶

저는 그가 첫 음반을 냈을 즈음인 지난 2001년, 그를 인터뷰했습니다. 입지전적 성공담에 끌려 취재를 시작했던 저에게, 그가 살아가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그의 일터는 작은 레스토랑이었습니다. 물론 가끔 음악회 무대에도 섰지만, 그는 주로 이 레스토랑에서 저녁마다 연주하는 것으로 생활비를 벌고 있었습니다.

명색이 '클래식 음악가'라는 사람이 왜 이렇게 살까. 대학에서 강의를 할 수도 있고, 음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을 가르쳐 많은 돈을 벌 수도 있는데...... 저는 의아했습니다. 그는 한 때 몇몇 대학과 예고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지만, 모두 그만뒀다고 했습니다. 기타 공방 시절부터 그와 절친한 한 친구는 이런 그를 가리켜 미쳤다고 했습니다. '왜 레슨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그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돈은 지금도 살 수 있을 만큼은 벌어요. 제가 좋아하는 음악 할 시간도 모자라고요. 또 한 가지 이유는......저는 기타를 배울 때, 기타가 좋아서 기타를 하고 싶어, 정말 잘하고 싶어, 그냥 이 한 가지 생각으로 했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안 그래요. 기타가 먼저가 아니라, 기타를 해서 돈을 벌겠다, 유명해지겠다, 아니면 무슨 교수가 되겠다, 이런 생각이 먼저예요. 그래서......"

그는 기타를 하면서 다른 것을 잊었습니다. 돌아보지 않고 따지지 않았습니다. 기타를 해서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될지, 출세에 보탬이 될지 따지지 않았습니다. 그냥 무조건 좋아서, 하지 않을 수 없어서 했습니다. 저를 감동시킨 것은 '성공 스토리'가 아니라, 기타에 대한 그의 순수한 열정 그 자체였습니다.

그는 음반을 내고 여러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요청을 받았다고 합니다. 책을 쓰자는 제안도 들어왔습니다. 하지만 그는 모두 거절했다고 합니다. 명성을 바라고 기타를 한 게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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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산한 시대를 건널 수 있도록

얼마 후, 저는 그가 손목 이상으로 본격적인 연주활동을 중단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손목 통증은 특히 고난도의 기교가 필요한 곡을 연주할 때 더욱 심해졌다고 합니다. 그는 실망하지 않고 끈기 있는 자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난해부터 다시 무대에 서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여전히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레슨은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작지만 내실 있는 음악회에 계속 출연하고 있습니다. 곧 세 번째 음반의 녹음에 들어갑니다. 화려한 명성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미치려면(及)' 아직도 멀었다고 말합니다. 더 '미쳐야(狂)' 한다는 것이겠지요.

정민 교수는 '미쳐야 미친다'의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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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 속에서 성실과 노력으로 자신의 세계를 우뚝 세워 올린 노력가들, 삶이 곧 예술이 되고, 예술의 그 자체로 삶이었던 예술가들, 스스로를 극한으로 몰아세워 한 시대의 앙가슴과 만나려 했던 마니아들의 삶 속에 나를 비춰보는 일은, 본받을 만한 사표도, 뚜렷한 지향도 없어 스산하기 짝이 없는 이 시대를 건너가는 데 작은 위로와 힘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안형수 씨의 음반을 CD 플레이어에 올려놓습니다. 따뜻하고 투명한 기타 선율이 울려나옵니다. 기타에 대한 그의 사랑이, 행복감이 전해집니다. 그를 만나고 싶습니다. 기타에 좋아, 기타에 미쳐 살아온 그를 보면서, 그의 음악을 들으면서, '스산하기 짝이 없는 이 시대'를 건너가는 데 작은 위로와 힘을 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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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책을 쓰고 싶습니다

위 글은 SBS 매거진의 제가 연재하는 코너에 실었던 원고를 조금 고친 것입니다.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지난 2001년 안형수 씨에 대한 뉴스 리포트를 하고 나서도 '행복한 기타리스트 안형수'라는 제목으로 이 코너에 글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4년이 넘게 흘렀습니다. 그 동안 안형수 씨는 40대 중반에 들어섰지만, 그의 순수함은, 기타에 대한 열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글을 쓰고 나서 그와 통화를 했습니다. 이런 저런 안부를 묻다가, 만약 앞으로 안형수 씨의 마음이 변해서 자신에 대한 책을 내기로 결심한다면, 그 책을 쓸 사람은 제가 됐으면 좋겠노라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즉흥적으로 나온 얘기였지만, 아마, 그의 이야기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다는 욕심이 언제부터인가 저에게 있었나 봅니다. 갑작스런 제 얘기에 당황한 그의 대답은 '어, 그게, 글쎄요..... 나이가 아주 많이 들면 몰라도......'였습니다. 언젠가, 아주 먼 훗날이라도, 안형수 씨가 아주 나이를 많이 먹고, 저도 아주 나이를 많이 먹은 뒤라도, 그의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요즘 소식을 자주 띄우지 못했습니다. 쓰다 만 글은 네 편이나 되는데, 몸도 마음도 여유가 없어서 마무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암만해도 출산휴가 석 달의 후유증(?)이 큰 것 같습니다. 조만간 마무리하고 찾아 뵙도록 하겠습니다.

또 한 가지, 제가 얼마 전 '뉴스 스테이션'을 개통했습니다. '뉴스 스테이션'은 SBS 기자들의 개인 블로그 같은 것인데, 아직 제대로 꾸미지는 못하고 있습니다만, 곧 날마다 취재 일기 같은 짧은 글들도 올릴 생각입니다. 왠지 적성에 안 맞는 듯하기도 하고, 게으르기도 해서(사실 이게 가장 큰 이유지요), 남들이 이른바 '싸이질' 하는 것을 구경만 해왔는데, 이제는 뉴스 스테이션에 재미를 붙여볼까 합니다. 제 이메일 주소 옆에 '뉴스 스테이션 바로 가기'가 있습니다.

폭설이 내린 게 얼마 전인데, 이제 정말 봄이 온 것 같습니다. 또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해도, 계절의 흐름을 되돌릴 수는 없겠지요. 행복한 봄맞이,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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