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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은 법률가만 할 수 있다?

어제(11일) 김영일 헌법재판관이 정년을 맞아 퇴임했습니다.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인데 그 전에 정년을 맞으면 퇴임을 하게 됩니다. 이건 대법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영일 전 재판관은 권성 재판관 등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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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11일) 김영일 헌법재판관이 정년을 맞아 퇴임했습니다. 헌법재판관의 임기는 6년인데 그 전에 정년을 맞으면 퇴임을 하게 됩니다. 이건 대법관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영일 전 재판관은 권성 재판관 등과 함께 헌법재판소 안에서도 비교적 강한 보수 성향을 보인 것으로 평가를 받는 인물입니다. 비교적 소신이 뚜렷한 사람이고 법 논리도 치밀한 편이라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물론 법관 출신이죠.

지난해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집권 여당은 공공연히 헌법재판소를 비난했고, 심지어는 헌법재판소를 폐지하고 대법원으로 그 기능을 통합시켜야 한다는 얘기까지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여당은 헌법재판소의 인원 구성을 다양화시켜야 한다, 즉 법률가 일색의 현재의 구성 방식을 바꾸겠다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헌재는 공개적으로 이 문제를 언급한 적이 없었습니다.

▶ 김 전 재판관, "헌법재판소 결정 폄훼하지 말라"

그런데 김 전 재판관이 자신의 퇴임식에서 포문을 열었습니다.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이 될 수 있습니다. 먼저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정치적인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헌재 결정을 폄훼하는 것이다, 이런 지각없는 행동으로는 국가와 사회를 질서있게 유지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주장에 저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지난해 행정수도특별법에 대한 위헌 결정 이후 집권 여당이 보여준 행태는 분명 문제가 있었다고 봅니다. 헌법재판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들이 추진하던 정책이 좌절된 데 대한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더구나 국가를 경영하는 집단에서 헌법에 따라 설치되고 운영되고 있는 다른 국가기관을 그런 식으로 비난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사실에 대한 왜곡도 심심찮게 이뤄졌습니다. 헌재가 군사정권의 산물이라며 정통성을 부인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김 전 대판관은 이런 '지각없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과연 국민의 대표기관인 의회를 대변하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 "헌재 폄훼하는 것은 지각없는 행동"

김 전 재판관의 퇴임사에서 또 하나 관심을 끄는 부분은 헌법 재판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김 전 재판관은 헌법 재판은 고도의 법률적 판단을 필요로 하는 것으로 어떤 상식인도 법률가보다 잘 처리할 수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을 달리합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어떤 심판을 제기한 당사자는 물론 모든 국가기관에 영향력을 갖습니다. 마치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결과를 초래합니다. 국민의 대표기관이 제정하는 법률을 무효화시킬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것들이 헌법에 규정된 각종 기본권에 대한 해석을 통해서 이뤄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만 일반적인 재판과는 달리 고도의 정치적 판단, 가치 판단을 수반하는 과정입니다. 따라서 헌법재판의 본질을 '재판' 쪽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김 전 재판관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지고지순한 것으로 간주되고 모든 국가기관과 국민이 이를 존중하고 따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맞습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는 재심도 없고 이의 제기 절차도 없습니다. 단심으로 끝입니다. 따라서 국민들의 신뢰와 동의를 얻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합니다. 이런 신뢰와 동의는 물론 뛰어난 능력을 갖춘 직업 법률가들을 통해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헌법재판은 오로지 법률 지식을 기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폭넓은 인식, 그리고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깊은 성찰도 필요로 하는 것입니다. 평생 법률과 함께 살아온 사람들보다는 다양한 사회 경험을 갖춘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이런 인식과 성찰을 얻기가 더 쉬울 겁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법률가만으로 이루어진 헌법재판소보다는 법률가들과 함께 법률가 아닌 사람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는 헌법재판소가 더욱 국민의 신뢰와 동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재판관을 다 일반인으로 채우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사회 현상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을 재판관으로 앉히는 것이 아니라 상당한 경륜을 갖추고 신망을 얻고 있는 사람을 모신다면 법률가 출신 재판관들이 판단을 내리는 데에도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일본의 최고법원이나 독일의 경우도 이런 사례들이 이미 있습니다.

▶ 헌법재판은 법률가만의 것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 여당과 헌재와의 관계를 보면 섣불리 이런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무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나마 자격이 오랜 경력을 갖춘 법률가로 되어 있으니 아무나 헌법재판관으로 앉히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일반인을 재판관으로 참여시키도록 한다고 해서 정말 자신들과 정치적 이해가 맞는, 이른바 코드가 맞는 사람 갖다 심는다면 헌법재판의 제1 책무인 헌법과 기본권 수호가 결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게 걱정이네요.

그리고, 퇴임사에서 정치권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 김 전 재판관을 아는 사람들의 평은 이랬다고 합니다. "그 분으로서는 충분히 할 만한 말을 했구먼...". 현장을 취재하러 갔던 손석민 기자의 전언입니다. 무슨 뜻인지는 여러분 각자의 해석에 맡기겠습니다. 퇴임사 전문은 취재파일이라는 코너에 올라가 있는데 어찌된 일인지 제 이름으로 올라가 있기는 합니다만 녹취문을 정리한 건 제가 맞습니다만 앞에 붙어있는 머릿말은 제가 올린 게 아닙니다. 오해 없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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