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te of the Union, 이미지 정치의 극치
미국 대통령의 국정연설 (State of the Union Address)은 상하 양원에 대한 보고라는 형식을 띠기는 하지만 결국 국민들에게 직접 국정 방향을 설명하고 지지를 호소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연설 시각도 전 국민이 텔레비전 앞에 앉아 지켜볼 수 있는 동부시간 저녁 9시로 고정돼 있습니다. 40분 남짓의 연설문에 20분 정도 박수를 합해 한 시간쯤 동안 미국의 대통령은 마음껏 자신의 뜻을 소개할 권리를 얻게 됩니다. 아무리 미국 대통령이라도 이렇게 자기 맘대로 좌우할 수 있는 온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빈번히 갖는 백악관 기자회견도 짓궂은 질문에 대응하는 일이 골치 아프기 그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시간이 주는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온갖 이미지 조작이 시도됩니다. 조작이라는 단어가 거북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꼭 나쁜 뜻에서만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이번 국정연설의 초점은 사회보장제도의 개혁과 이라크 안정화였습니다. 먼저 사회보장 제도 쪽을 볼까요? 사회보장 시스템이 파산위기에 있으니 연금 혜택은 줄이고 납입금을 늘리는 쪽으로 개혁하겠다는 부시의 구상은 보다 폭 넓은 사회보장을 추구하는 민주당에게는 말도 안 되는 소리입니다. 국정연설에서 그런 말 한마디만 나와도 야유가 터져나올 판입니다.
박수 안치면 속 좁은 의원
그러나 부시는 사회보장 제도 개혁안에 대해 여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국정연설을 통해 보여줘야 하는 숙제를 안고 단상에 섰습니다. 어떻게 하면 전국에 생중계 되는 화면에 야당 의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회보장 개혁안에 대해 박수치는 장면을 내보낼 수 있을까? 부시 연설문 팀의 번득이는 기지가 여기서 발휘됩니다. 개혁의 당위성은 강조하되 개혁의 방법은 쏙 빼는 전략입니다. “사회보장제도가 몇 년 뒤면 파산 위기입니다.” “파산을 막기 위해 나는 여야 가리지 않고 의회와 협력해 해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여야 모두와 손잡고 일하겠다는 데 박수 안치는 야당 의원은 속 좁은 인물로 비칠 수 밖에 없습니다. 부시는 결국 연설 내내 민주당 의원들의 마지못한 박수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라크 안정화 문제로 넘어가면 이미지 조작의 정도는 점입가경입니다. 이번에는 눈물 짜내기 전략입니다. 대통령 부인 로라 부시의 양 옆에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출신 여성 두 명을 데려다 앉혀 놓은 것부터가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것입니다. 부시가 연설에서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의 총선 성공을 언급하며 그들을 소개하자 TV 카메라는 기다렸다는 듯이 세 명의 여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양 옆의 여인들은 손가락으로 승리의 V자를 그리며 흐느껴 울고 로라 부시는 두 여인의 어깨를 다독여 줍니다. <자유와 민주주의의 어머니>가 <핍박 받던 희생양들>을 품고 서 있는 형국인 것이지요. 전쟁의 부당성에 대한 그 숱한 비난들을 이미지 한 컷으로 잠재울 만큼 강력한 장면입니다.
성모 마리아의 이미지까지 동원
부시 대통령은 이어서 로라 부시의 바로 뒷 좌석에 앉은 부부 한 쌍을 소개합니다. 이라크전에서 숨진 젊은 병사의 부모입니다. 아래 자리에 있던 이라크 여인이 전사자 어머니를 끌어 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는 장면으로 카메라가 클로즈업 해 가면 이미지의 파괴력은 극에 달합니다. 이 부부를 로라 부시의 뒷 쪽에 앉게 한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윗자리의 미국 여인, 그 여인을 올려다보며 포옹하는 아랫자리의 이라크 여인. 조금 과장을 섞어 표현하자면 <아들을 십자가에 바친 성모 마리아와 죄 사함 받은 유대 여인>의 형상이 머리에 떠오릅니다. 박수는 끝날 줄 모르고 이라크 전쟁은 마치 성전(聖戰)의 반열에 올라설 듯한 분위기가 TV 화면을 가득 채우더군요.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이미지 정치의 시대가 열린 것은 지난 95년 첫 지방선거 때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때부터 후보들의 캐리커쳐가 등장하고 단상에서 경쾌한 음악에 맞춰 춤추는 유세장면이 보이기도 했지요. 그 이후 여러 차례의 선거를 거치면서 우리 정치의 이미지 기법도 발전을 거듭했습니다. 필리핀 민주화 시위에서 착안한 DJ의 노란색 이미지 전략이 우선 기억에 떠오르고, 민자당에서 쫓겨난 JP가 새마을 운동을 연상하게 하는 초록색 자민련 깃발로 재기에 성공한 사례도 생각납니다. 가장 최근에는 역시 노무현 대통령 진영의 이미지 전략이 대박을 터뜨린 셈이 됐지요.
하지만 이미지 정치도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한계가 과유불급의 문제입니다. 가능한 한 호감 가는 이미지를 많이 만들어 내면 좋겠지만 어느 순간 그런 이미지가 너무 넘치면 역효과를 나타낸다는 점입니다. 잘 생기고 언변에 능한 앨 고어 후보가 용모도 그저 그렇고 말은 실수 연발인 부시 후보에게 패배한 2000년 선거나 젊음에 금발에 탁월한 설득력에 자수성가의 이미지까지 가졌던 에드워즈 민주당 부통령 후보가 선거 내내 어린아이 취급만 받다가 끝난 지난 해 선거가 이런 문제를 잘 설명해 줍니다.
결국은 본질이 승부
이미지가 넘치면 오히려 정책 비전이 그림자에 가릴 수 있다는 얘기 입니다. 이미지 정치가 가장 발달했다는 미국의 선거에서도 관심의 마지막 초점은 누구의 정책 공약이 더 많은 유권자의 지지를 받는 가에 맞춰집니다. 지난 해 대선 내내 미국의 일부 언론이나 시민 단체들이 선거에서 정책은 사라지고 이미지만 남았다고 비판을 했지만 미국 선거는 여전히 정책의 선거였습니다. 이라크 전쟁 같은 국가 대사에서부터 재정적자. 사회보장, 동성결혼, 낙태, 이민문제에 이르기까지 유권자의 마음을 사려는 두 후보 진영의 정책 경쟁이 볼만 했습니다. 아무리 이미지가 중요해도 마지막 승부를 가르는 일격은 항상 본질에 있다는 교훈을 재확인 한 선거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