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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알렉산더와 아킬레스 6

지중해 문명기 4권BR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BR 글 싣는 순서 3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1(아카이아 연합군) 1. 헬레네 송환 협상 2. 아킬레스 1성장 3. 아킬레스 2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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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 문명기 4권--

도자기로 읽는 트로이 전쟁과 로마의 건국

---글 싣는 순서--

3장. 트로이 전쟁의 전개 1(아카이아 연합군)

1. 헬레네 송환 협상

2. 아킬레스 1--성장

3. 아킬레스 2--참전

4. 아킬레스 3--사랑

5. 아킬레스 4--브리세이스

6. 아킬레스 5--헥트르와 대결

7. 아킬레스 6--죽음

8. 고대 그리스의 애정사

9. 파트로클로스

10. 올림픽 1

11. 올림픽 2

12. 올림픽 3

13. 올림픽 4

14. 大아이아스

15. 그리스, 직접 민주주의

16,17,18 민주주의를 이끈 사람들 1,2,3

19. 중우정치와 민주정치

20. 고대 민주주의와 현대민주주의

21. 미국 민주주의의 현실

22. 오디세우스

23. 디오메데스, 小아이아스

24,25 네오프톨레모스, 필록테테스

26, 27,28,29,30,31,32. 알렉산더와 아킬레스 1,2,3,4,5,6,7--오늘 이야기

33. 테티스, 헤파이스토스, 아테나

31. 알렉산더와 아킬레스 6. 알렉산더가 동성애자?

◆ 1. 그리스 문명의 동성애 전통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의 관계를 남색(男色)의 연인 관계로 보는 주장도 제기된다. 글쎄... 함께 고된 훈련을 받고, 멀리 원정을 떠나 목숨을 내놓고 전쟁을 치르면서 쌓는 문경지교(刎頸之交)의 우정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한발 더 나아가 이성(異性)을 접하기 어려운 통제생활에서 남자들끼리 특별한 관계로 발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전혀 배제하기는 어렵겠지만, 일상적이라고 평가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그리스는 달랐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남색(男色)에 대해 상대적으로 관대한 문화적 전통을 가졌다. 특히 전투에 나서는 동료나 선후배 병사간의 연애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용인하는 분위기였다. 요즘 잣대와는 크게 벗어난다. 요즘 군대에서는 성희롱에 즉시 사법처리 감이다.

그리스에서 남성 동성애인 남색의 실체를 좀더 자세히 짚어보자. 미케네 문명을 멸망시킨 도리아인의 내습(來襲)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게 정설이다. 도리아인은 남성 중심적인 사고를 지닌 사람들로 집단적인 병영 생활을 하며 전투로 상대를 굴복시켜 나갔다. 강건하고 용맹한 전사의 양성은 사회를 유지하고 지켜나가기 위한 필수적인 과제였다. 이역할을 누가 맡을까? 전쟁시 군에 나가는 성인 남자들이 평시 청소년들을 훌륭한 전사로 조련한다. 이렇게 전쟁에 필요한 전사 육성이란 개념은 점차 10대 청소년을 정신, 육체적으로 건강하고 온전한 성인으로 길러내는 사회화 과정으로 확대됐다.

그 과정을 들여다 보자. 성인 남성은 자신이 보호하고 교육해야 할 한 명의 청소년을 선택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모든 지식과 정보를 물려준다. 각종 예절 교육과 덕성 교육을 실시해 심성을 가다듬는다. 세상 살아가는 각종 지혜도 들려준다. 사냥기술도 가르쳐 주고 잡은 산토끼나 닭을 선물로 건넨다. 바른 습관과 도덕을 가질 수 있게 절제된 생활능력도 길러 준다. 가령 당시에 별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노류장화(路柳墻花)와의 만남을 너무 자주 가질 때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는 식으로... 스승과 학생의 관계도 이런 연장선에 있었다. 독선생이든 아니면 몇명을 가르치든... 여기서 청소년에 대한 어른의 관심과 애정은 필수적이다. 소크라테스 역시 성의있게 가르치려면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할 정도였다.

여기까지는 너무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다. 완고한 조선의 성리학적 가치관으로 접근해도 손색없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는 조금 더 나갔다. 고전기 그리스에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가치관이 풍미(風味)했다.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육체를 가꾸는 일은 정신적인 수양 못지 않게 중요한 과제였다. 군살 없이 근육으로 잘 단련된 신체. 고전기 그리스에서 완벽한 균형의 동상들을 만들어 낸 사회적 배경이다. 요즘도 다이어트나 운동으로 잘 다진 몸매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지만, 이를 정신적인 측면에서의 성숙으로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고전기 그리스에서는 이를 동일시 했다. 도시마다 체육관(팔레스트라, 김나지움)를 만들어 놓고 청소년들이 육체를 단련하고, 또 체육교사들이 직접 엄하게 교육한 것도 이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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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애 장면. 왼쪽은 남성임이 분명하다. 오른쪽은 얼굴만 봐서는 여성인지 남성인지 불분명하다. 그러나, 남성으로 보는게 좋다. 가슴이 없기 때문이다. 비슷한 포즈의 다른 도자기 그림에서는 가슴에 둥그렇고 풍만한 가슴을 그려 여자임을 분명히 해준다. 브리티시 뮤지엄. ⓒ김문환

문제는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는 과정에서 청소년이 한 사람의 굳건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나가는 것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은 것. 체육관에서 나체로 행하는 청소년의 체력 단련 모습, 아름다운 육체를 바라보다 아름다움과 빼어남을 칭찬하는 찬사의 글귀를 적은 도자기를 선물로 전하고... 나아가 끈끈한 연정으로 싹터 신체의 특정 부위를 만지는 등의 행위로까지 이어졌다. 그 이상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너무 심할 경우는 남색가로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결국 그리스 사회에 퍼졌던 남성 동성애의 남상(濫觴)은 중장년 남성이 군사훈련이나 지식, 체육을 포함한 사회교육을 통해 앳된 청소년을 훌륭한 성인으로 키워내는 차원이었으며, 여기서 일부 육체관계로 퍼져 나간 게 후기의 실상(實相)이었다.

◆ 2. 알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

알렉산더가 20대 후반 박트리아 원정에서 록사네와 전략적으로 만나기 전까지 결혼하지 않았던 점이나 여러 정황을 볼 때 어려서부터 함께 자라고 모든 전투를 같이 했던 헤파이스티온의 역할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것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헤파이스티온이나 알렉산더 모두 술을 많이 마신 두주불사(斗酒不辭)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언제든 눈앞에 죽음을 두고 살아야 하는 군인들에게 술과 사랑은 해방구(解放區)다. 아무리 험한 천리길 행군이나 처절한 전투라도 술을 들이키면 아련해지기 마련. 거기에 쾌락이 더해 진다면 금상첨화(錦上添花)다. 여기에 탐닉(耽溺)하면 사랑의 대상이 이성이냐 동성이냐의 문제는 도덕적 가치판단을 떠나 부차적일 수 있다.

특히, 저녁이면 푸짐하게 차려 놓고 질펀하게 향연(饗宴)을 벌이던 고대 그리스의 생활 습관은 이를 부채질 하는 요인이었다. 또, 앞서 살펴봤듯이 남성간 애정을 너그럽게 보아주는 문화적 전통도 있고... 알렉산더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도 남자애인을 두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죽음도 이와 관련이 있는데... 필리포스 2세를 암살한 호위병 파우사니아스. 그는 한때 필리포스 2세의 사랑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필리포스 2세가 아탈로스의 조카딸 클레오파트라와 좋아져 그녀와 결혼식을 올리자 자존심을 상해 극도로 분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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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더 동상. 얼굴 부분이 많이 훼손돼 알렉산더의 모습을 세심하게 뜯어보는 재미는 누릴 수 없다. 터키 내륙의 아름다운 그리스 로마 도시 아프로디시아스 박물관에 전시중이다. 아프로디시아스 박물관. ⓒ김문환

그렇다고 알렉산더를 동성애자로만 묘사하는 일은 경계해야 한다. 여러 정황상 아렉산더와 헤파이스티온의 관계를 의심해 볼 수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라고 인식하는 것은 또 다른 오류다. 트로이 전쟁에서 아킬레스나 기타 장수들이 자기 막사에 여자노예를 데리고 사는 장면이 나오듯이, 알렉산더의 원정에도 많은 여성들이 따라 다녔다. 아내와 자식을 대동하는 경우도 있었고, 포로로 잡은 여성들을 노예로 부리며 성적 노리개로 삼을 수도 있었다. 아예 직업적인 창녀들도 군부대를 따라 다녔다. 알렉산더의 원정을 살기등등한 남성 병사들만의 행군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마음만 먹으면 이성과의 사랑이 얼마든지 가능했다. 알렉산더 역시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 3. 알렉산더를 계승(?)한 하드리아누스 황제

알렉산더의 의심스런 행동은 5백여년 뒤 로마 제국에서 확실한 모습으로 부활(復活)한다. 로마 천년(서로마) 역사에서 가장 넓은 제국을 일궜던 정복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주인공이다. 트라야누스 황제를 이어 영국 북부에서부터 중서 유럽과 이베리아 반도, 북아프리카 연안 전체, 오리엔트, 아라비아에 이르는 거대 제국을 다스렸던 로마제국 최대 전성기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그는 무용(武勇)에서는 아킬레스와 알렉산더의 뒤를 잇고 있지만, 굳이 고르자면 알렉산더에 더 가까워 보인다. 남색(男色)이라는 범주에 알렉산더를 묶어 놓고 볼 때 둘은 닮은 꼴은 더욱 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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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 황제. 그는 로마제국 천년 역사에서 가장 광대한 영토를 다스렸던 영광의 황제다. 아킬레스나 알렉산더를 연상시키는 정복자인데... 그는 동성애에서도 알렉산더를 본받았다. 아름다운 황후 사비나가 있었지만...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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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드리아누스의 황후 사비나. 알테스 박물관에 남편인 하드리아누스 황제와 나란히 서 있다. 그러나, 남편의 마음은 황후가 아니라 시종이자 동성애 파트너였던 안티노우스에게 있었던 듯 하다. 그래서 그런가. 조각가가 묘사한 황후의 표정은 울적해 보이기만 한다.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잠시 하드리아누스를 돌아보자. 그는 참 건강하고 활동적인 사람이었다. 치세기간에 로마에 머물지 않고 자신의 제국 전체를 순방 여행하며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요즘 부시처럼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 원(Airforce 1)을 타고 누비는 것도 아니고, 마차 타고 지중해 전체를 다닌 다는 것은 보통 체력이 요구되는 게 아니었다. 그만큼 정력적이었다는 얘기다. 그러다보니 여성들의 사랑도 받았는데... 전임 트라야누스 황제가 바쁜 통에 외로워진 황후 플로티나. 그녀를 즐겁게 해준 남자가 하드리아누스 였다고 전해진다. 그 덕에 후계자를 지명하지 못하고 죽은 트라야누스의 뒤를 이어 로마제국의 대통을 이었다는 설도 있다. 하드리아누스의 아내 사비나는 트라야누스의 조카딸이었으므로 조카사위가...

사비나는 아름다운 여인이었지만, 하드리아누스는 이를 넘어서야 할 야망이 있었다. 야망을 이뤄 대권을 쥔 하드리아누스는 새로운 세계로 빠져든다. 남색(男色)과 여색(女色)을 오가는 일. 미소년과 미소녀 모두를 즐겁게 만났다는 하드리아누스는 아킬레스의 신화와 알렉산더의 전설이 찬란하게 살아 숨쉬는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그리스의 전통을 충실히 따르는 취지(사실 그는 그리스문화의 신봉자였다)였는지, 남중일색(男中一色)의 미남자 안티노우스를 만났다. 그는 트로이의 가니메데스를 연상시키는 빼어난 몸매를 지닌 청년이었다. 하드리아누스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안티노우스를 자신의 시종으로 삼았다. 제우스가 가니메데스를 시종으로 삼은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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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일강. 룩소르(구, 테베)에서 출발하는 나일강 펠루카(돛단배) 투어를 떠나면 도중에 강가에 정박해 마을 주민도 만나고, 나일강에서 수영도 즐길 수 있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도 이랬을 것이다. 투어 도중 잠시 강가에 내려 동네 어린이들 한테 볼펜 한 자루를 쥐어 주고 당나귀를 빌려 타 봤다. 참 더 없이 즐거운 나일강의 추억이 된다. ⓒ김문환

하드리아누스는 제국 시찰 여행도중 늘 황후 사비나를 동반했다. 그러니, 하드리아누스는 황후의 침실과 안티노우스를 동시에 오가야 했다. 이런 3인의 어색한 동거는 나일강에서 끝을 보는데... 130년 8월 하드리아누스 황제 일행은 예루살렘과 지중해 동부 연안을 거쳐 그림같은 북아프리카 지중해 연안의 도시 알렉산드리아에 이르렀다.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알렉산더의 영혼이 깃든 알렉산드리아에 머물며 시와 오아시스 건너로 사자 사냥도 나가고, 남부 지방 시찰도 다니면서 휴식을 취했다. 지방행차를 하면... 아! 그가 잠시 머물 도시는 각종 준비물을 마련하느라 허리가 휘어졌다. 사례가 있는데, 카이로 남부의 도시 파이윰을 지날 때 지방 관리가 하드리아누스 일행을 위해 준비한 내용물을 보면 젖떼지 않은 새끼돼지 372마리, 양 2천 마리, 달고 맛있는 대추야자 열매 데이트(date) 2천 리터... 수행원만 수천명이었으니...

문학적 소양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듣기 원했던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대도서관 무세이온에서 학자들과 토론도 즐겼다. 그러다 사고가 발생하는데... 안티노우스가 상이집트로 떠나는 도중 나일강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것이다. 자살인가 타살인가! 안티노우스는 하드리아누스를 위해 자신이 죽어야 한다는 신탁을 얻어 죽음을 택했다고 하는데, 검증할 길은 없고... '사랑하기 때문에 죽는다'? '사랑하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유행가 보다 격은 높지만, 쉽게 이해하기는 어려운 대목이다. 안티노우스가 의문사로 생을 마감하자 하드리아누스는 어린애처럼 엉엉 울며 슬퍼했다고 한다. 죽은 안티노우스가 들으면 그의 사랑에 감복하겠지만, 주변에서 보면 영 황제의 체통이 서지 않는 게 볼썽 사나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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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노우스. 하드리아누스가 동성애 파트너로 삼았던 그리스 출신의 미남자. 남중일색(男中一色). 제우스가 트로이 출신 가니메데스를 탐내 시종으로 삼았듯이, 하드리아누스는 안티노우스를 골랐다. 그가 나일강에서 의문사 한 뒤 하드리아누스는 그를 신으로 선포했다. 알테스 박물관에는 하드리아누스, 사비나, 안티노우스 3명이 나란히 서있다. 탐방객들은 2천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3각관계를 자기 마음속에서 멋대로 연상해 볼 수 있는 즐거움을 만끽한다. 알테스 박물관. ⓒ김문환

어쨌든 하드리아누스의 비통함은 자신의 음악세계를 이해하는 친구가 죽자 거문고 줄을 끊어 버리고 다시는 연주를 하지 않았던 백아절현(佰牙絶絃)의 슬픔에 빠진 아킬레스와 알렉산더의 애통함에 뒤지지 않았다. 선배들이야 전장(戰場)의 동료가 죽어 그렇다고 하지만, 애정의 상대인 일개 시종인데... 하드리아누스는 헤파이스티온을 신으로 추존했던 선배 알렉산더의 예(例)를 충실히 따라 안티노우스를 국신(國神)으로 모신다고 선포했다. 황제의 동성애 파트너가 국신이라...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신이라면 당연히 신전이 있어야 하는 것. 안티노우스를 기리는 신전 건축 명령이 불호령처럼 떨어졌다. 여기서 멈추면 청출어람(靑出於藍)의 반열에 오르기 힘들다. 선배 알렉산더 보다 한발 더 나갔다. 신전 주변에 아예 신도시를 만들고 '안티노폴리스'라는 이름까지 붙였다.

참고로 로마인들은 그리스 문화를 존중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지켰고, 또 남색에 대해서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드리아누스에 앞서 네로 역시 말년에 남색에 빠졌는데... 폼페이 출신의 아내 포파에아를 죽이고 난 뒤 한 남자와 결혼했다. 이유는? 자신이 죽인 아내 포파에아를 닮았다는 것. 특이한 것은 네로도 하드리아누스 만큼이나 그리스 문화에 심취했던 로마황제란 점. 여기서 그리스 문화와 남색, 즉 알렉산더에서 네로를 거쳐 하드리아누스에 이어지는 행동의 근원을 이해하는 열쇠가 발견된다. 그렇다고 요즘 남성 동성애자(호모)들을 그리스 문화 신봉자로 해석하는 것은 아무래도 동조자를 구하기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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