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 글까지 세이버메트릭스의 역사를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살펴 보았죠. 2005년엔 그 동안 세이버메트릭스계에서 논의되어 온 구체적인 내용들을 소개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야구라는 경기는 크게 3가지 차원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공격, 수비, 피칭이 그것이지요. (피칭도 수비가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한데, 일단 여기서 수비라 함은 영어로 Fielding, 즉 야수들의 수비 행위만을 뜻합니다) 야구 통계도 이 세 가지 범주의 개인 기록과 팀 기록, 그리고 이 세 범주를 통합한 기록(팀의 승률, 득점, 실점, 'MVP 기자단 투표 순위' 등이 그것이지요)으로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살펴볼 분야는 공격 통계입니다. ('타격' 통계가 아니라 '공격' 통계인 것은, 주루플레이 등 타자의 타격 말고도 몇몇 공격 행위가 포함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세이버메트릭스계에서 지적하는 기존 공격 통계들의 문제점을 살펴 보겠습니다. 그리고 다음 대여섯 번의 글에서 세이버메트릭스의 '대안 공격 통계'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는 현재 다음의 8개 범주의 공격 통계에 대해 순위를 매기고 있습니다.
-타율, 안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장타율, 출루율
세이버메트릭스에서는 이 8개 통계들이 제각각 약점들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먼저 전통적 공격 통계 가운데 가장 권위를 인정(?)받고, 이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면 '수위 타자'의 명예가 주어지는 '타율'부터 어떤 약점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죠.
1. 많은 분들이 잘 알고 계신 것처럼, 타율의 계산 방법은 이렇습니다.
타율=안타/타수
타율의 가장 큰 통계적 문제점은, '안타라고 똑같은 안타가 아니다'라는 사실을 무시하고 있다는 점이지요. 타율 공식 속에서는 단타, 2루타, 3루타, 홈런의 중요성이 모두 똑같은 것으로 취급됩니다. 단타도 1 안타요, 홈런도 1 안타일 뿐입니다. ('최다 안타' 역시 똑같은 약점을 가집니다)
야구에서 공격의 목표는 점수를 얻는 것입니다. 전에도 한 번 쓴 적이 있는데, 점수를 많이 얻기 위해선 1. 최대한 자주 살아나가야 하고, 2. 기왕이면 한 번 살아나가도 멀리 가야 합니다. 당연히 똑같은 안타라면 단타보다는 2루타가 낫고 2루타보다는 3루타가 낫습니다. 당연히 제일 좋은 건 홈런이죠.
지난 시즌에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한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당연히 타율도 아메리칸리그 1위를 차지했죠.(0.372) 그런데 MVP 투표에선 아예 명함을 내밀지 못했습니다.(6위)
이유는 이치로의 안타 가운데 86%는 단타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보스턴의 매니 라미레즈는 이치로보다 타율이 6푼이나 낮았고(0.308), 안타도 90개 가까이 덜 쳤지만, 안타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장타였습니다. 그래서 총루타수에서는 오히려 라미레즈가 이치로보다 20개 넘게 앞섰습니다. 때문에 라미레즈는 이치로보다 MVP 투표 순위가 세 계단이나 높았지요.
그런 점에서 지난 시즌 한국야구 골든 글러브 포수 부문 수상자의 선정 과정은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한국의 골든 글러브상은 수비를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해당 포지션에서 공수를 망라해 최고의 선수에게 주는 상이지요.
2004시즌 포수부문의 수상자는 두산의 홍성흔이었습니다. SK의 박경완을 간발의 차로 제쳤지요.
홍성흔의 가장 큰 무기는 '최다안타 타이틀'과 '높은 타율'이었습니다. 일단 두 선수의 수비능력을 제쳐놓고 (야구계의 중론은 전체적인 수비능력은 박경완이 조금 낫다는 겁니다) 타격성적만을 살펴보겠습니다.
홍성흔 : 타율 0.329 165안타 36볼넷 14홈런 출루율 0.384 장타율 0.475
박경완 : 타율 0.295 121안타 94볼넷 34홈런 출루율 0.440 장타율 0.595
박경완은 홍성흔보다 훨씬 자주 살아나갔으며 (6푼 이상 높은 출루율), 한번 나갈 때 멀리 나갔습니다.(1할 이상 높은 장타율). 박경완은 안타가 적은 대신 홍성흔보다 엄청나게 많은 볼넷과 장타로 공격에서 더 많은 공헌을 했다는 것이 명확합니다.
결론적으로 홍성흔의 수상은, 야구의 본질과 동떨어진 '타율'과 '최다안타'라는 통계가 갖는 약점과 환상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저 홍성흔 선수한테 개인적 감정 없습니다^^)
타율의 또 다른 큰 약점은, 안타만을 유효한 공격 수단으로 상정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다시 한번 타율 공식을 들여다 보지요.
타율=안타/타수
즉 타율은 몇 타수만에 한 번 안타를 얻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입니다. 분자와 분모 어디에도 '볼넷'의 자리는 찾아볼 수 없지요.
'타수''란 타석에 들어선 전체 횟수에서 사사구(볼넷, 몸에 맞는 공)과 실책 개수를 뺀 것이지요. '타석' 대신 '타수'가 분모를 차지하고 있는 건, 사사구와 실책이 '타자의 능력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실제로 몸에 맞는 공과 실책은 타자의 능력이 아니라는 건 역사적으로 증명됩니다. (특정 시즌에 몸에 맞는 공과 실책을 많이 기록한 타자가 다음 시즌에도 많은 공을 얻어 맞고 실책을 많이 유도하는 건 아닙니다)
그러나 볼넷의 경우는 이야기가 다릅니다. 야구 중계를 듣다 보면, '저 선수 선구안이 좋아요' 혹은 '저 선수는 선구안이 문제에요'라는 말을 흔히 듣게 됩니다. 이런 말들에는 타자가 볼과 스트라이크를 판단하는 능력이 존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습니다. 실제로 역사적으로 보면, 선구안이 좋은 타자는 계속 좋은 경향이 있고, 나쁜 타자는 계속 나쁜 경향이 있습니다. (세이버메트릭스에선 볼넷/삼진 비율을 기량 향상 여부를 나타내는 중요한 지표로 봅니다)
볼넷을 얻는 능력을 가진 타자는, 그것만으로도 팀공격에 많은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일단 본인이 무사히 1루까지 살아나갈 수 있습니다. 만약 1루에 주자가 있었다면 그 주자를 2루에 보낼 수 있지요. 많은 경우에 볼넷은 단타 하나에 맞먹는 가치를 가진 셈입니다. (세이버메트릭스에서는 볼넷은 단타의 71% 정도의 가치가 있다고 봅니다) 실제로 제 앞선 글들에 등장했던 마크 벨혼이나 최희섭 같은 타자들이, 타율은 낮지만 많은 볼넷으로 기량을 인정받고 있는 타자들이죠.
요약하자면, 타율은 크게 두 가지 통계적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ㄱ. 모든 안타를 똑같이 취급한다.
ㄴ. 볼넷 같은 다른 공격수단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2. 이번엔 '찬스에 강한 타자'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타점'을 살펴보도록 하지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타점의 가장 큰 통계적 약점은 '상황 의존적'이라는 점입니다. 타자 개인의 능력보다, 타자를 둘러싼 상황이 큰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지요.
2004 시즌 메이저리그의 타점왕은 150타점을 기록한 볼티모어의 미구엘 테하다였습니다. 강타자의 대명사 배리 본즈는 겨우(?) 101개의 타점 밖에 올리질 못했죠. 그렇다고 본즈의 '클러치 능력'이 테하다보다 못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본즈의 부진한(?) 타점 기록은, 본즈의 능력이 못해서가 아니라 본즈를 둘러싼 타자들(샌프란시스코의 2,4번 타자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본즈에게 남발된 고의사구 때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이지요.
또 타순도 타점 기록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똑같은 타자라도 3,4번에 갖다 놓으면 5번이나 2번보다 타점이 늘어나는 게 당연합니다.
알렉스 로드리게즈는 2004시즌에 106타점을 기록했습니다. 98년 처음 100타점을 넘어선 뒤 가장 적은 타점이지요. 텍사스보다 타자에게 불리한 양키스타디움의 '구장 효과'를 감안하더라도, 로드리게즈의 타점 저하는, 기량이 떨어졌다기 보다는 강타자들이 즐비한 팀 사정상 2번 타순에 자주 기용됐던 상황 때문이라고 보는게 합리적입니다.
반대로 올시즌 60타점 밖에 올리지 못한 이치로를 3번에 기용하면, 100타점을 넘기는 건 우습겠지요.
또 똑같은 타자라도, 앞선 타자들의 능력이 좋으면 더 많은 타점을 올리게 돼 있습니다. 2004 시즌에 105타점을 올린 현대의 브룸바가 롯데로 온다면? 극악한 1,2번 타자의 출루율(정수근이 풀시즌을 뛸 수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요) 속에 80타점도 넘기기가 힘들 겁니다.
요약하자면, 타점은 타자 개인의 능력보다는 상황에 많이 좌우되기 때문에, 타자의 능력을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습니다.
3. 홈런은 가장 위력적인 공격 수단입니다. '한 방에' 최소한 한 점이니까요. 홈런 타자는 팬들을 즐겁게 함과 동시에, 팀공격에도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됩니다.
'홈런 개수'의 공격 지표로서 문제점은, 야구장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공격 행위들 가운데 오직 '홈런 개수'만을 고려대상으로 삼는다는 점입니다. 통계의 '철학적 바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게다가 통계의 유용성에도 약점이 있습니다. 표본의 개수가 너무 적다는 게 대표적입니다. 시즌 홈런왕이 요즘은 40-50개 정도인데, 과연 홈런 42개 친 선수는 35개 친 선수보다 더 낫다고 볼 수 있을까요? 2003년 시즌에 심정수보다 홈런을 한 개 더 많이 친 이승엽은, 심정수보다 더 뛰어난 타자라고 볼 수 있을까요?
홈런 개수는 구장 크기, 타순에 따른 상대 투수의 차이 등 미묘한 차이에 따라 요동칩니다. 오직 홈런 개수 만으로 타자의 능력을 평가하는 건, 사람을 첫인상으로 평가하는 것보다 더 부정확할 수 있습니다.
4. 나머지 통계들...
타자의 목표는 '자주 살아 나가기'와 '멀리 나가기'라고 말씀 드렸었죠. '자주 살아나가기'를 반영하는 통계는 출루율입니다. '멀리 나가기'를 반영하는 통계는 장타율이죠. 때문에 이 두 통계는 공격의 중요한 두 측면 가운데 하나씩을 정확히 설명하는 장점을 가집니다. 반대로 말하면, 나머지 한 측면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을 하지 못한다는 치명적 약점이 있습니다. 때문에 이 둘을 합한 통계인 OPS(=출루율+장타율)은, 두 통계의 약점을 상쇄해주기 때문에 공격능력에 대한 뛰어난 설명력을 가지지요.
도루에 대해선... 굳이 설명드릴 필요가 없겠네요. 아홉 명의 정수근을 모아 놓은 타선보다는 아홉 명의 이승엽을 모아 놓은 타선이 당연히 득점력이 높겠죠. 도루 개수는 선수의 '기동력'을 제외하고는 아무런 공격 능력도 설명해주지 못합니다. 게다가 세이버메트릭스계에선 '도루 많이 하는 선수가 좋은 선수냐', 즉 도루의 유용성에까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지금까지 '기존의 타격 통계'들의 약점들을 개략적으로 살펴 보았습니다. (좀더 자세하고 정확한 설명을 원하시는 분은, Pete Pamler와 John Thorn이 지은 'The Hidden Games of Baseball'의 2장, 'Traditional Baseball Statistics'를 참조하시면 도움이 되실 겁니다. 필요하신 분들은 메일 주시면, 복사본을 보내 드리겠습니다.)
그럼 좀 더 나은 타격 통계란 무엇일까요? 일단 전제 되어야 할 것은, 모든 공격 행위는 '득점'을 목표로 한다는 것입니다. 안타, 볼넷, 도루, 병살타 등 모든 공격 행위의 효과는, '득점과의 연관' 속에서 검토되어야 합니다. 새로운 타격 통계들이 가장 중요시 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입니다. 어떤 공격 행위는 얼마 만큼의 '득점 가능성'을 가지는가?
다음 편부터는 세이버메트릭스계가 내놓은 새로운 타격 통계들을 살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