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정기국회가 끝났습니다. 정기국회는 내년도 예산을 처리해 정부가 예산집행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하지만 특검법 재의를 놓고 공방을 벌이다 국회가 10여일 동안 공전돼 지난 10일부터 임시국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7명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 회부된 상태였기때문에 방탄국회라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한 달간 회기를 연 것입니다. 역시 명분은 예산이었습니다.그러나 임시국회가 열린지 8일이나 지난 오늘(18일)까지도 예산심의는 시작조차 못했습니다.
계수조정소위원장의 자리를 누가 맡느냐가 이유입니다. 이해를 돕기위해 설명을 드리자면 예산을 다루는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는 위원장과 계수조정소위원장이 있습니다. 보통은 예결위원장이 계수조정소위원장까지 겸하지만 현재 예결위원장이 민주당의 이윤수 의원이기때문에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계수조정소위원장을 맡겠다고 나섰습니다.처음에는 어느 당이 맡느냐를 놓고 실랑이를 벌이다 한나라당이 맡기로 결론났지만, 이번에는 한나라당 의원 가운데 누가 하느냐가 논란이 됐습니다.
예결위 한나라당 간사인 비례대표 이한구 의원과 대구가 지역구인 박종근 의원 가운데 한 명이 맡기로 돼 있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이한구 의원이 맡자고 했고, 한나라당도 어느 정도 동의를 했습니다. 하지만 한나라당이 다시 박종근 의원이 맡아야한다고 주장했고,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여기에 반대하면서 지금까지 지연되고 있는 것입니다.계수조정소위원장 자리를 놓고 각 당이 이렇게 신경을 쓰는 이유는 바로 지역구 예산을 배정하는 막중한 자리이기때문입니다.
과거 지역구 선심성 예산은 모두 비공개로 진행되는 계수조정소위원회에서 이뤄졌고, 이에 대한 비난때문에 계수조정소위원회 공개 이야기까지 나오게 됐습니다.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은 박종근 의원이 과거 추가경정예산심의 당시 계수조정소위원장을 하면서 다른 당 간사들의 합의내용조차 받아들이지 않고 독단적인 운영을 했기때문에 이번에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반면 한나라당은 원래 예결위원장 자리를 원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박종근 의원이 맡기로 한 것인데 민주당에 양보했으니 계수조정소위원장 자리는 박 의원이 맡아야한다고 반박하며 평행선을 긋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렇게 예산심의가 지연되면 어떤 일이 생기는가? 쉽게 말해 내년도 정부사업을 하나도 진행할 수 없게됩니다. 공무원 급여 같은 경직성 경비와 계속사업비는 지난해에 준하는 ' 준예산'으로 집행할 수 있지만, 청년실업 문제나 SOC사업, 중소기업지원책 등 정부가 추진해야할 각종 사업이 진행될 수 없게 됩니다.
다시말해 공무원 월급 주고 사무실 운영하는 것 외엔 아무일도 할 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경제에 더욱 주름살만 늘게하는 셈이죠. 마치 미국에서 클링턴 정부 초기 국회와의 대립으로 예산집행이 늦어져 유례없는 '정부파업' 사태를 겪었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비난여론때문인지 앞다투어 기자회견을 하며 서로를 비난하는 상황까지 생겼습니다. 이윤수 예결위원장은 "예결위 파행의 모든 책임은 한나라당" 이라고 공격했고, 한나라당 박종근 의원은 "이윤수 위원장이 월권을 하고 있다"고 반박했습니다.
내일(19일) 오전, 예결위 각당 간사들이 다시 모입니다. 무슨 명분으로든 더 이상 끌 수 없다는 위기감에서인 것 같습니다. 과연 합의가 이뤄지고 회의가 원만하게 진행될 지는 모르겠지만 한가지는 분명합니다.정부가 예산을 허튼 곳에 쓰지 않았나를 꼼꼼히 챙겨내 우리의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막아줄 '선량'의 모습은 이번 예결위에선 보기 어려울 거라는 사실말입니다. "국회의원의 가장 중요한 의무는 예산심의" 라는 국민들의 비난을 귀담아 듣고나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