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뉴스>
<앵커>
정치인의 단식이라고 하면 주로 독재에 항거하기 위한 최후의 저항 수단이라는 인상이 강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단식의 의미도 크게 변해 왔는데 결국은 역시 여론 향배가 변수입니다.
보도에 양만희 기자입니다.
<기자>
지난 83년 5월, 군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됐던 김영삼 전 대통령은 광주 민주화운동 세돌을 맞아 민주화를 요구하며 23일간에 걸친 단식투쟁을 벌입니다.
[김덕룡/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 비서 : 그 어떤 희생이라도 감수할 것입니다. 나는 조국의 제단에 자신을 바친 현충의 넋, 참담한 광주사태에서 희생된 영령...]
김대중 전 대통령도 군사정권에 항거해 세 차례 단식 농성을 벌인 데 이어, 지난 90년, 민자당이 내각제를 추진하자 열사흘간의 단식으로 맞섰습니다.
그러나 군사독재가 종식되자 단식 투쟁의 주객이 바뀌는 상황도 빚어졌습니다.
5공 비리로 수감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YS의 탄압에 항거한다며 교도소 안에서 최장 기록인 28일 간의 단식을 벌여서,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또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집권한 98년에는 이기택 전 의원이 경성 비리와 관련한 검찰 소환이 부당하다며 25일 동안 곡기를 끊었습니다.
YS 비서 출신인 한나라당의 박종웅 의원은 언론사 탈세에 대한 수사에 항의하며 20일간 단식을 벌였습니다.
[김영삼/전 대통령 : 굶으면 확실히 죽는 거니까 딴 처방이 있는 게 아니니까 솔직한 얘기로...]
비장한 결의로 목숨까지 내건다는 단식 투쟁.
그러나 항상 공감대가 형성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난 날의 사례들은 말해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