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②

우리는 통일에 준비돼있는가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②
지난 글에서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가 영원히 계속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 김일성 일가의 세습독재는 영원히 계속될까? ① [안정식 기자와 평양 함께 걷기]

이번 글에서는 김일성 일가의 집권이 언젠가 끝나게 된다면 그 이후의 북한 권력은 누가 잡게 될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습독재가 끝난다는 것은 김 씨 일가와 그를 둘러싼 엘리트 간의 운명공동체가 허물어진다는 것으로 기존 권력층 내부에 균열이 발생한다는 뜻입니다. 권력층의 균열은 통제 체제를 이완시킴으로써 시민혁명의 공간을 열어줄 수 있지만 북한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기 어렵다는 점은 이전 글(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에서 살펴본 바 있습니다.

아래로부터의 혁명 가능성이 없다면 김 씨 일가 이후의 북한 권력은 위로부터 생성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위로부터 권력이 생겨난다는 것은 권력층 내부에서 차기 권력이 생성된다는 것으로, 기존 지배연합 내에서 권력 투쟁의 승리자가 후계자로 정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차우세스쿠와 깊은 연관 있던 세력이 권력 잡은 루마니아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 가운데 북한과 가장 비슷한 체제였던 루마니아의 사례를 참고해 보겠습니다. 이전 글( '대중시위로 무너진 동독, 북한에서도 가능할까?')에서 살펴보았듯이 루마니아는 동구 사회주의권 국가 가운데 북한처럼 저개발 국가였고 국민들도 민주주의의 경험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차우세스쿠 집권 이후에는 북한과 같은 왕조적 시스템도 더해져 차우세스쿠 개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됐으며 아들로의 세습까지 거론되고 있었습니다.

루마니아 독재자 차우세스쿠

이런 루마니아에서 차우세스쿠 정권이 몰락한 것은 1989년 동구권 민주화의 물결 때문이었는데, 차우세스쿠의 뒤를 이어 루마니아에서 정권을 잡은 쪽은 일리에스쿠를 중심으로 한 '구국전선' 세력이었습니다.

그렇다면, '구국전선'은 차우세스쿠에 반대하던 세력이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국전선'의 실세 그룹은 공산주의자들과 군인들로 차우세스쿠 정권과 깊은 연계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이었습니다. 차우세스쿠 정권이 대중시위로 무너진 만큼 그와 연계된 세력들은 퇴진하고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세력들이 정권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이 순리였겠지만, 차우세스쿠 이후의 권력도 차우세스쿠 정권과 깊은 연계를 가지고 있던 세력들이 다시 잡는 희한한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요? 루마니아에는 차우세스쿠에 반대하는 반체제세력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김대중이나 김영삼처럼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며 새로운 시대의 구심점이 될 야당 정치인이나 세력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구국전선'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루마니아 국민들의 변화 열망을 대변했기 때문이 아니라, 조직화된 야당 세력이 없던 권력 공백기에 스스로 지도부를 자처하고 나섰기 때문이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구공산계 인사들이 루마니아에서 유일한 정치 엘리트그룹인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이들은 차우세스쿠 정권에서 가장 비난받던 정책들을 일부 수정했지만 기본적으로 구공산주의 관료체제를 재생시켰습니다. 루마니아 혁명이 '사이비 혁명'이었으며 혁명이 '납치'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루마니아 국민들은 이들의 집권을 지지했습니다. 1990년 5월 선거에서 '구국전선'은 의회의 66%를 차지했고 일리에스쿠는 85%의 지지율을 획득해 압도적으로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민주주의를 경험해보지 못했던 루마니아 국민들은 민주화를 위한 준비가 돼 있지 않았고, 현실적으로 별다른 대안도 없었습니다.
 

김 씨 일가 무너져도 그 측근들이 권력 잡을 가능성 높아

북한도 루마니아처럼 김 씨 일가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서 전혀 새로운 세력이 등장하기는 힘듭니다. 김 씨 정권을 대체할 만한 야당 세력이 아예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김 씨 일가의 세습독재가 무너진 이후의 권력은 기존 지배연합 내에서 생성될 가능성이 큽니다. 2021년의 시점에서 보자면 최룡해(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위 제1부위원장)나 조직비서, 선전비서 같은 당의 주요 인사, 혹은 리병철(정치국 상무위원,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이나 총정치국장, 총참모장, 국가보위상 같은 군부나 보위 부문의 핵심 인사 가운데 누군가가 세력을 모아 권력을 잡을 가능성이 큰 것입니다.

이러한 권력 이양에 대해 북한 주민들의 별다른 저항도 없을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에게 권력이란 국민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닌 권력자들이 으레 나눠가지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비해 변화가 생기길 기대하겠지만 그러한 변화가 민주화와 연관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도 미비할 것입니다. 북한 주민들은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도 어느 한 순간 갑자기 얻어진 것이 아닙니다. 제도로서의 민주주의 도입과는 별개로 우리 국민들 사이에 민주주의에 대한 인식이 생기고 그것이 현실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함께 4·19혁명, 5·18광주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같은 많은 노력들이 있어야만 했습니다. 김일성 일가의 세습 정권이 무너진다고 해서 북한에 바로 민주주의가 도입되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결국은 개혁 개방 내세우는 권력자 등장할 것

김 씨 정권이 무너진 직후 권력을 잡을 사람은 기존 권력층 가운데 한 사람이 되겠지만, 이 권력자가 보수 강경 성향의 사람일지 개혁개방 옹호론자일지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힘듭니다. 절대권력이 사라진 혼돈기에 권력을 잡는 데는 군부 장악력과 정치적 수완 등 권력 투쟁 능력이 중요하지 정치적 성향이 중요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만약 보수 강경파가 정권을 잡게 될 경우 그 정권은 오래 가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김 씨 일가 이후의 집권자는 북한 권력의 가장 큰 정통성 요소였던 '백두혈통'을 주장할 수 없기 때문에 집권의 정통성을 선전할 다른 요소를 찾아야 하는데, 이는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일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개혁개방은 필수적입니다. 새로운 집권자가 '백두혈통'이라는 정통성을 주장하지도 못하면서 보수 강경정책으로 북한 주민들의 삶의 질 향상도 이뤄내지 못할 경우 불만은 고조되고 머지않은 시기에 다른 세력의 도전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과도기적으로 보수 강경세력이 권력을 잡더라도 결국에 가서는 개혁개방을 내세우는 인물이 새로운 권력자로 자리를 잡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인데, 이런 의미에서 본다면 김 씨 일가 이후의 권력자는 기존 지배연합에서 나오지만 기존 지배연합에서 행했던 정책과는 차별화된 정책을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