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축구 국가대표 경기가 열린 28일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1-1로 팽팽히 맞선 가운데 후반전이 시작됐지만 한국 축구 대표팀 서포터스인 '붉은 악마'는 돌연 응원전을 거부하고 나섰다.
이날 경기장에는 4만7천여 명의 많은 관중이 들어찼지만 붉은 악마가 자리하는 골대 뒤편 응원석은 후반전 내내 활력을 잃었다.
일반 팬들이 끊임없이 질러대는 환호성과 박수 소리도 만만치 않게 컸지만 서포터스들이 흔들어대는 대형 깃발과 북소리는 후반부터 실종됐다.
이에 반해 일본 원정 응원단은 반대편 골대 뒤에 자리를 잡고 질서 정연하게 응원을 펼쳤다.
덥고 습한 날씨에 지칠 법도 했지만 후반 내내 목소리를 드높이며 일본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했다.
이날 붉은 악마는 후반 들어 응원을 거부한 이유에 대해 준비해간 대형 걸개를 대한축구협회에서 강제로 철거했기 때문이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밝혔다.
이날 붉은 악마 응원석에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대형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이것이 자칫 정치적인 문구로 해석될 여지가 있기 때문에 하프타임에 철거됐다.
붉은 악마는 바로 이런 이유로 후반전 응원을 하지 못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한 마디로 한국 축구 대표팀 공식 서포터스의 돌출 행동 때문에 이날 한국 축구는 일본에 경기도 지고, 응원 매너도 진 결과로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플래카드 내용이 옳고 그름은 여기서 전혀 따질 이유가 없다.
지난해 런던올림픽 3-4위전에서 박종우(부산)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문구를 들었다가 자칫 메달을 받지 못할 뻔했던 것도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내용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다.
축구뿐 아니라 대부분의 스포츠에서는 거의 예외 없이 정치적인 문구나 인종 차별적인 행위 등을 금지하고 있다.
이런 기준에 비춰보면 이날 붉은 악마가 만들어 온 대형 플래카드는 얼마든지 정치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한국 축구 대표팀 공식 서포터스라는 단체라면 주위에서 '이런 문구라도 좀 내걸지 그러느냐'고 부추겨도 오히려 자제했어야 마땅하지만 이날 붉은 악마가 보여준 행태는 수준 이하였다.
일부에서는 일본 응원석에 '욱일승천기'가 나온 것을 지적하며 '서로 마찬가지 아니냐'고 항변하지만 이는 바람직한 자세라고 볼 수 없다.
일본 응원석의 욱일승천기는 말 그대로 한 개인의 돌출 행위로 볼 수 있는 반면 붉은 악마라는 단체는 한국 축구 대표팀에 갖는 의미가 더 크고 무겁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대한축구협회 관계자는 "그런 내용의 플래카드가 경기장에 들어온 것을 파악하지 못했었다"며 "자세한 경위를 파악해 곧 공지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