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착륙 사고를 낸 아시아나항공의 사고 원인을 놓고 미 연방항공안전위원회(NTSB) 발표와 외신의 보도 등을 통해 조종사 과실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때마침 사고기의 조종을 맡았던 기장이 기종 전환을 위한 '관숙 비행'중이었고 해당 기종(B777)의 운항시간이 43시간에 불과해 조종사 과실에 더욱 무게중심이 옮겨가는 분위기다.
만약 사고 원인이 기체결함이나 공항 시스템상의 문제가 아닌 조종사 과실로 드러날 경우 국내 항공업계에 적지 않은 피해가 우려된다.
국적기인 아시아나항공의 이미지에 치명상을 입게 됨은 물론 우리나라가 갖고 있는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안전평가 세계 1위라는 명성에도 오점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 재상승 시도 왜?…비행 각도·고도 등 판단 착오했나 7일 NTSB는 브리핑을 통해 2시간 분량의 조종석녹음기록(CVR)을 분석한 결과 기장이 충돌 1.5초 전에 착륙 시도를 중단하고 다시 기수를 상승하려 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블랙박스 기록상 당시 사고 여객기가 너무 낮은 고도에 너무 느린 속도로 활주로에 접근하고 있었고 충돌 7초 전에 적절한 속도로 높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전했다.
또 기장과 부기장은 속도나 활주로 접근 각도 등에 문제가 있다는 대화는 없었고 어떤 이상 징후도 보이지 않았다고 NTSB측은 밝혔다.
착륙에 앞서 응급차를 요청했다는 앞선 보도와 달리 충돌 사고가 날 때까지 기장과 부기장이 사고를 예상한 어떠한 언동도 없었다는 것이다.
만약 착륙 직전에 기체에 이상 기운을 감지하고 기장과 부기장이 미리 공항 관제탑과 교신했다면 엔진 등 기체 결함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에 이런 움직임이 없었다면 착륙 직전까지 항공기 결함은 나타나지 않았을 확률이 커진다.
착륙을 시도할 때 엔진과 착륙 바퀴(랜딩기어)가 정상 작동했던 것으로 밝혀진 것도 일단은 조종사 과실로 유추될 수 있는 대목이다.
속도가 떨어진 것과 착륙에 문제가 생긴 것이 엔진이나 랜딩기어가 오작동한 게 아니냐는 의심도 있었으나 일단 사실이 아닌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아시아나항공측은 조종사 과실로 판단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8일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사고 직전 여객기가 느린 속도로 활주로에 접근했다는 지적에 대해 "관제탑으로부터 오케이 사인을 받아서 착륙하는 과정이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문가들도 일단 조종사 과실로 단정하기 보다는 계기판 이상 등 다른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말한다.
이우종 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 항행위원은 "착륙에 따른 충격을 줄이고 오버런(착륙시 관성에 의해 항공기가 활주로 밖으로 벗어나는 것)되는 것을 막기 위해 기술이 뛰어난 조종사일수록 고도를 낮추고 활주로 끝에 착륙하려 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비정상적으로 고도를 낮췄다면 고도계 등 계기판에 이상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한 대학교수는 "계기장치에 문제가 있으면 착륙 직전에 조종사가 인식하고 관제탑에 관련 사실을 알리는 게 일반적"이라며 "그런 교신이 없었다면 계기장치 문제로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사고기 기장 '관숙비행'중…조종 누가 책임졌나 기장의 사고기종 운항경력이 짧다는 것도 '조종 미숙'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조종사는 기종전환시 해당 기종에 대한 기장 자격을 확보하기 위해 일종의 훈련비행인 '관숙비행'을 해야 하는데 사고기를 운항한 이강국 기장은 당시 B777의 기장 자격을 확보를 위해 관숙비행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사고기의 기장을 수행한 이강국 기장은 전체 비행시간이 9천시간이 넘는 베테랑급이지만 B777기 운항경험은 43시간에 불과하고 샌프란시스코행이 해당 기종의 9번째 비행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착륙이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진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직접 조정간을 잡고 착륙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형기종인 B777로 기종전환을 하기 전까지 이 기장이 몰던 비행기는 A320로 177석 규모의 소형 비행기다.
반면 이번 관숙비행의 교관이면서 부기장을 맡은 이정민 기장은 비행시간이 1만2천시간이 넘고 해당 기종의 운항 경력도 3천시간이 넘는 베테랑이다.
윤영두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이에 대해 "사고기는 비행 1만시간이 넘는 숙련된 조종사가 교관기장으로 탑승해 운항에 대한 모든 책임을 졌다"며 기장의 비행경험이 짧아 문제가 된다는 지적을 일축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의견은 차이가 있다.
이우종 전 위원은 "누구든 기장의 임무를 부여받으면 옆에 아무리 베테랑 기장이 있다해도 간단한 어드바이스 정도만 가능할 뿐 조종간을 직접 잡고 운항을 책임질 수는 없다"며 "법적으로도 기장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훈련중이라 해도 기장을 맡은 조종사의 판단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한 대학교수는 "사고기 기장이 직전에 몰던 비행기가 소형기여서 대형기인 B777을 조정하면서 착각을 했을 수는 있다"며 "다만 섣부르게 판단할 수는 없고 블랙박스 결과 등 조사 결과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블랙박스 결과가 나와봐야 확실한 사고원인을 파악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우종 전 위원은 "조종사 과실은 기체결함, 관제탑 교신 등 다른 정황을 모두 따져본 후 마지막에 최종 판단할 사안"이라며 "블랙박스 해독 결과가 나오기 전인만큼 섣부른 판단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