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화학적 거세'가 이미 2010년에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이뤄진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이 지난 14일 청소년 성폭행범에게 '화학적 거세'를 국내 처음으로 청구했다고 밝힌 것과 비교하면 2년이나 먼저인 셈이다.
28일 의료계에 따르면 국내 첫 화학적 거세는 2010년 8월 모 대학병원에서 만 18세의 성도착증 남성을 대상으로 이뤄졌다.
이 남성은 고등학생 시절이던 2009년부터 학교생활 부적응과 신체 왜곡망상, 하루 3~4차례의 자위행위, 여성의 가슴을 만지고 도망치는 등의 충동적 성행위 등의 문제행동이 이어져 병원을 찾았다.
그해 10월부터 정신과 진료를 받은 이 학생은 당시 성도착증과 충동조절장애 진단을 받았으며 20일에 걸친 입원기간에 심리치료 및 약물치료가 이뤄졌다.
하지만, 퇴원 후에도 증상이 개선되지 않아 2010년 1월 이후로도 10여차례에 걸쳐 외래 정신치료를 받아오던 중 그해 4월에는 짧은 치마를 입은 여성을 10여차례나 추행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
다행히 이 학생은 피해자의 고소 취하로 풀려나 치료를 다시 시작했으나, 결국 4개월 만에 또다시 성추행을 저질러 1년간의 보호관찰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지속적인 약물치료와 심리치료에도 성도착 증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에 의료진과 부모는 이 남성의 성도착증이 지속될 경우 범법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판단에 따라 화학적 거세를 위해 '항남성호르몬제(GnRH)'를 투여하고, 심리치료를 병행했다.
GnRH는 주로 성조숙증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로, 1개월에 한번씩 3개월에 걸쳐 이 남성에게 주사됐다.
이 과정에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항호르몬제 투여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병원 윤리심사위원회를 거쳤다는 게 의료진의 설명이다.
의료진은 화학적 거세 시행 후 1년 뒤 투고한 논문을 통해 "항남성호르몬제 주사 후 성욕이 줄어들고, 야한 동영상을 보는 횟수도 매일에서 1개월에 1~2차례로 줄어들었다"면서 "치료 후 4주와 12주째에는 외관상 남성적이었던 환자의 인상이 부드러워진 모습이었다"고 평가했다.
남성호르몬(testosterone) 혈중농도는 화학적 거세 전 6.23 ng/㎖에서 퇴원 후 3개월 후에는 0.48 ng/㎖로 감소했다.
우려와 달리 약물 투여에 따른 부작용도 관찰되지 않았다.
의료진은 "골다공증의 위험성에 대해 X-선 검사를 했지만, 이상이 없다는 정형외과 전문의의 자문을 얻었다"며 "거세 이후 2년이 지난 지금도 다른 문제없이 성욕이 잘 억제되면서 생활도 안정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2년전 화학적 거세의 첫 사례로 증상 개선효과를 확인함에 따라 정부의 화학적 거세 확대 방안이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다만, 이번 사례가 국내 처음인데다 장기간의 연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대규모의 환자를 대상으로 한 임상평가 및 안전성 확인이 이뤄져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단국대병원 정신과 임명호 교수는 "화학적 거세 후 2년째 문제행동이 없다는 것은 약물의 효과를 뒷받침하는 것"이라며 "윤리적 문제와 비용의 문제만 극복한다면 성범죄 근절 차원에서 화학적 거세를 적극적으로 적용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