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도강간범 서진환. 그의 ‘특수강도강간 전과’는 이미 검거 때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2004년 4월 21일 대낮에, 서울 면목동의 한 옥탑방에 올라가 20대 여성을 성폭행했습니다. 피해자가 저항하자 마구 때렸습니다. 방안에 있던 2만 원을 가져가 강간에 ‘강도죄’가 덧붙었습니다. 이 특수강도강간죄로 경북북부제2교도소(옛 청송2교도소)에서 7년을 살았습니다. 일부 언론은 ‘7년 6개월’이라고 썼지만, 7년이 맞습니다. 그런데 경찰은 지난해 서진환이 출소한 뒤, 그를 ‘절도범’으로 관리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걸까요?
단서는 ‘7년 6개월’과 ‘7년’의 차이에 있습니다. 서진환은 두 개의 죗값을 치르고 출소했는데, 특수강도강간으로 먼저 7년을 살고, 이어서 절도로 6개월을 더 복역한 겁니다. 서진환은 ‘옥탑방 성폭행’을 저지르기 닷새 전, 그러니까 2004년 4월 16일 밤 9시, 서울 성수동2가에서 운전석에 열쇠가 꽂혀 있는 승용차를 훔쳐 달아났습니다. 장물차를 몰고 가다가 이 차 저 차를 들이받는 교통사고까지 냈습니다. 경북북부제2교도소와 경찰서가 이 두 범죄를 헷갈리기 시작한 것이, 서진환을 절도 ‘잡범’으로 어처구니없이 착각하게 된 이유입니다.
서진환은 지난해 11월 초 출소했습니다. 교도소는 서진환 같은 강력범이 출소하기 직전, 거주지 관할 경찰서에 석방 통보문을 보내줍니다. 이런 자가 다시 자유의 몸이 될 예정이니 잘 살펴보라는 취지입니다. 경찰은 이 통보문을 기초로 우범자 목록을 업데이트하고 관리합니다. 서진환의 경우에도, 경북북부제2교도소는 2011년 10월 26일, 서울 중랑경찰서에 석방 통보문을 보냈습니다. 이 통보문의 제목은 ‘수형자 석방통보’였고, 범죄개요 란에는 앞서 말씀드린 ‘옥탑방 성폭행’이 적혀 있습니다. 문제는 ‘죄명’입니다. 교도소는 경찰서에 죄명을 그냥 ‘절도’라고만 적어서 알려줬습니다. 형기도 ‘통산’이라고 해놓고 7년 6개월이 아니라 그냥 ‘징역 6월’이라고 고지했습니다. 죄명 따로, 범죄개요 따로, 착각하기 딱 좋게 알려준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걸 또 헷갈리는 경찰도 우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석방 통보문은 달랑 1장입니다. 문서 중간에 죄명이 있고, 문서 하단에 범죄개요가 자세히 적혀 있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대충 쓱 한 번 훑어보기만 해도, 어 이상하네? 감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죄명 ‘절도’만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그냥 대~충 본 겁니다. 이 느슨한 행정 덕분에, 서진환은 말로만 ‘우범자’지 사실상 아무런 감시를 받지 않았습니다. 우범자 가운데 높은 등급인 ‘중점관리 첩보수집’ 대상이 아니라, 그냥 ‘자료보관’ 대상으로 분류된 것입니다. 서류 속에 묻혀버린 강도강간범 서진환. 용마지구대에는 지난 9개월 간 그의 동향을 파악하는 담당자도 지정돼 있지 않았고, 당연히 집에 찾아간 적도 없습니다.
교도소는 수형자 관리 시스템에 책임을 돌리고 있습니다. 석방 통보문은 컴퓨터에서 자동으로 출력되는데, 가장 최근에 확정된 범죄로 통보된다는 것입니다. 서진환의 강도강간죄는 2004년 8월 11일 항소심에서 끝났고, 절도죄는 2005년 11월 16일 항소심에서 확정됐습니다. 2005년이 더 최신 범죄니까, 경찰서에는 죄명을 ‘절도죄’만 알려주게 돼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식이라면 살인을 몇 차례 저지른 뒤에 마지막으로 절도죄를 범하면, 석방 통보문에는 ‘절도’가 기록됩니다. 참으로 희한한 시스템입니다. 교도소 관계자는 또 범죄개요에 다 적혀있는 걸 경찰이 몰랐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 전자발찌까지 차고 출소한 사람인데 경찰이 절도범으로 관리했다는 게 말이 되느냐, 이러고 있습니다.
경찰은 교도소와 우범자 관리 인력을 탓합니다. 죄명을 똑바로 알려주지 않은 교도소에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죠. 또 중랑경찰서가 관할하는 우범자가 5백여 명. 1년에 4차례, 1분기에 한 번씩 동향을 업데이트하는데, 이 대규모 작업을 벌일 때 ‘신규 우범자’도 새로 추가하기 때문에 석방 통보문을 꼼꼼히 못 본 것 같다는 얘기입니다. 법무부 보호관찰관이 전자발찌 착용자를 전담 관리하는 것과 달리, 경찰에게 우범자 관리는 ‘기타 업무’에 불과한 게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A4 한 페이지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볼 수 없을 정도로, 업무가 과중한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경찰은 교도소와 인력을 문제 삼고, 교도소는 경찰을 핑계대고, 무고한 애기 엄마만 무참하게 희생됐습니다.
경찰이 서진환을 끝까지 ‘자료보관’ 우범자로 방치한 것은 아닙니다. 지난 7월, 통영 한아름 양 사건을 계기로 관내 우범자를 일제히 점검하는 과정에서, 서진환의 강도강간 전과를 뒤늦게 발견한 것입니다. 경찰은 서진환을 부랴부랴 한 단계 높은 ‘첩보수집’ 대상자로 격상했습니다. 그게 8월 13일입니다. 우범자 등급을 한 단계 올리고, 이제 막 용마지구대에 첩보수집 담당자를 지정하려던 차였습니다. 그러나 때는 이미 늦었습니다. 8월 21일, 경찰은 서진환의 13번째 범죄를 막지 못했습니다. 그를 첩보수집 대상자로 지정한 지 불과 1주일 만입니다. 결과에 대한 얘기지만, 서진환을 출소 직후부터 잘 관리했더라면, 8월까지 적어도 3번 정도 그를 찾아가 심리적인 압박을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경찰이 그의 집에 단 한 번이라도 가봤더라면... 진한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범자 관리시스템, 빨리 개선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