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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눈 앞에서 본 한일 우주기술 '50년 격차'

아리랑 3호 발사 취재 후기

[취재파일] 눈 앞에서 본 한일 우주기술 '50년 격차'
......산(3), 니(2), 이치(1), 제로!

새벽 1시 39분, 장내 아나운서의 일본어 카운트다운과 함께 깜깜하던 밤 하늘 저 한켠에서 환한 빛이 번쩍하며 연기가 피어오르더니 로켓이 맹렬한 화염을 내뿜으며 높이 솟구칩니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과학담당으로서 나로호 취재를 10번도 넘게 다녀왔고,우주인 이소연 박사의 발사 건으로 러시아에도 갔었지만 한밤중에 보는 로켓 발사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이렇게 밝을 수가 있을까요? 로켓이 상승하면서 내뿜는 밝은 빛으로 밤하늘이 마치 대낮처럼 환해졌습니다. 지켜보던 사람들 모두 긴 표현을 찾지 못하고 감탄사만 내뱉을 따름입니다. 마치 하늘 위로 솟구치는 태양처럼, 눈부신 빛을 뿜으며 로켓이 하늘로 올라갑니다.

발사 약 2분 뒤, 아직 한 점이라고 하기엔 조금 더 밝게 보이던 로켓에서 뭔가 분리되어 땅으로 떨어집니다. 예정대로라면 저것이 아마 로켓 양쪽에 장착돼 있던 부스터(추진체)일 것입니다. 정확합니다. 21번 중 1번 밖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일본이 자랑하는 H-2A 로켓은 마치 자로 잰 듯 정확한 타임 랩에 맞추어 정해진 단계대로 우주로 올라갔습니다.

'우리는 러시아 로켓으로도 두 번이나 실패했는데...'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머리를 스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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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일 우주기술, 부정할 수 없는 50년의 격차

일본 규슈 남쪽의 작은 섬, 다네가시마. 길쭉한 섬 모양이 씨앗 모양을 닮았다고 해 '다네가시마(種子島)'란 이름이 붙은 이 섬에 일본이 자랑하는 다네가시마 우주센터가 있습니다. 본토에서 꽤 떨어진 섬인데다 섬 경제의 많은 부분이 우주센터에 의존하고 있고, 과거 일본에 조총이 처음 전래된 섬이라는 인식보다는 이제 '다네가시마'하면 먼저 '우주센터'를 떠올릴 정도로 우주센터는 섬의 상징이 됐습니다.

마치 고흥 외나로도의 나로 우주센터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번 발사를 직접 본 뒤엔 그 안의 내용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됐습니다. 눈앞에서 일본 기술력의 정수를 실제로 목격한 뒤엔 그 격차가 새삼 크게 느껴집니다. 이번 발사기간 중 일본의 한 신문은 '한국의 로켓 기술은 일본보다 50년이나 뒤쳐졌지만, 위성 기술은 수준급이다'라고 보도했습니다. 마치 한수 내려다 보는 어조에 자존심이 상합니다.

하지만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한국의 나로호는 러시아의 도움을 받고서도 두 번이나 실패했고, 올해 10월 쯤으로 예정된 발사도 성공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한국형 발사체의 개발은 아직 발사시험장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그에 반해 일본의 로켓 H-2A는 지금까지 단 한번을 제외하고 모두 발사에 성공했습니다. 특히 6년 전 일본의 우주탐사선 '하야부사'가 소행성 '이토카와'에 착륙해 암석 샘플을 가지고 무사히 지구로 귀환한 것은 고도의 정밀도가 요구되는 매우 어려운 임무였기에 성공 소식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은 2030년쯤 달에 우주선을 보낸다는 그야말로 막연한 계획만을 한 줄 갖고 있습니다. 이 계획이 정말로 실현되더라도 2006년도 하야부사의 기술력과는 큰 격차가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처음 로켓 발사에 성공한 것은 지난 1970년입니다. 실제로 50년에 해당하는 기술의 차이가 있는 셈입니다.


* 취재하러 왔다가 취재 당한 경험

이번 발사가 이뤄진 18일을 이틀 앞두고 취재진은 가고시마를 거쳐 섬에 도착했습니다. 섬에 도착한 다음날, 그러니까 발사 전날인 17일 아침 우주센터를 찾은 취재진을 기다리는 것은 일본 취재진이었습니다. 일본 유수의 방송인 NHK를 비롯해 지역 방송사인 MBC, KYT, KTS 등이 일제히 경쟁적으로 한국 기자단을 취재하기 시작했습니다. 취재가 일이던 기자들이 오히려 취재를 당하고 카메라 렌즈가 자신들을 향하면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사실 일본으로서는 이번이 처음으로 돈을 받고 외국 위성을 발사해주는 기회였습니다. 따라서 한국 언론이 이번 발사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일본의 우주과학을 얼마나 평가하는지, 또 한국의 수주 이후 단 한 건도 추가 위성발사를 수주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보도가 어떤 방향으로 이뤄질지에 무척이나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일본 KYT(가고시마 요미우리 텔레비전) 방송의 한 기자도 저를 찾아와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질문과 함께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의 입지는 어떤지, 발사 성공 가능성은 얼마로 보는지, 등 여러가지 질문을 잇따라 받았습니다. 발사가 끝난 직후에도 KYT 기자가 저를 찾아와 '방금 발사를 본 소감이 어떠냐'고 물었습니다. 만약 발사 성공을 눈앞에서 보지 않았다면 "성공은 축하한다. 하지만, 한국도 일본을 곧 따라잡을 것이다"라고 애국심 한껏 섞어 답변했을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그 50년의 격차를 직접 목격한 상황에서는 "정말로 대단하다. 감동받았다"라고 말해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 기자는 고개를 조금 갸웃거리면서도 만족한 표정으로 돌아갔습니다. 참 씁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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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주강국 한국'은 이제 막 시작이다

몇 년 전, 우리는 우주인을 한 명 배출했다고 '우주강국 한국'을 외쳤습니다. '대한민국 우주에 서다'라고도 했습니다. 인공위성 기술은 세계 5~6위권이고, 따라서 이제 발사체 기술만 배우면 러시아, 일본에 손 벌리지 않아도 된다는 희망 가득한 관측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행히 이번에 발사한 아리랑 3호는 모두 정상적으로 작동했고, 앞으로 큰 문제가 없다면 오는 9월부터는 정상 운용에 들어가 예상 수명 4년, 어쩌면 그 이상의 기간 동안 한반도의 상공을 정밀하게 관측할 계획입니다.

특히 아리랑 3호에는 0.7급 고해상도 광학 카메라가 탑재돼 있습니다. 아리랑 3호는 민간위성으로는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 서브미터(sub-meter)급 위성이 됩니다. 이 부분은 자랑해도 좋습니다. 또 올 하반기 SAR 레이더가 탑재된 아리랑 위성 5호가 발사되고, 과학기술 위성 3호, 또 3번째 나로호에 들어가는 나로과학위성, 2014년으로 예정된 아리랑 3A호... 후속 위성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성공한다면 확실히 '우주위성 강국'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정작 '우주강국 한국'은 이제부터 막 시작입니다. 우주로 가는 핵심 기술인 발사체 액체엔진 기술이 이제 막 연구에 첫 발을 뗀 상탭니다. 2018년까지 75톤급 액체 엔진을 개발해 이를 4개 묶어 300톤급 추력을 내는 한국형 발사체를 2020~2021년까지 개발한다는 것이 항공우주연구원의 계획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아직 제대로 된 엔진 발사시험장조차 하나 없습니다. 나로우주센터의 면적은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 비해 그리 작지 않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JAXA(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의 장비와 연구시설은 훨씬 잘 갖춰져 있습니다.

항우연은 올해부터 그 시험장을 고흥을 비롯한 전국 9곳에 순서대로 지어나갈 계획입니다. 여기에는 예산이 약 3000억원 이상 들어갑니다. 당장 올해부터 1500억원의 투자가 이뤄져야 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 예산 확보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사실 2008년부터 시작하겠다던 한국형 발사체 사업입니다. 그런데 4년 뒤인 올해도 당장 시험장 지을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생겼습니다.

* 한국형 발사체 사업, 첫 발부터 '삐걱'하지 않도록

발사가 끝나고 성공 교신 소식까지 전해진 다음, 멀리서 동이 터 오던 새벽 5시쯤. 6시 모닝와이드 기사를 읽어 한국으로 송출하고 주위를 돌아보니 밤을 샌 기자들 모두가 졸린 표정입니다.

이 때, 멀리서 머뭇거리던 그 KYT 기자가 또 다시 저를 찾아와 '한 번만 더' 인터뷰를 부탁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한국과 일본의 우주개발 현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말은 공손했지만 속내는 '이렇게 성공한 발사를 보니 한국이 일본에 비해 얼마나 뒤쳐져 있는 것 같으냐'는 것이겠지요.

이번만큼은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이 지금은 비록 우주기술에서만큼은 일본과 큰 격차가 있지만, 서로 협력해 나가는 한편으로 기술개발을 빨리 이뤄나간다면 언젠가는 격차가 좁혀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이것이 3박 4일간 일본 다네가시마에서 발사를 취재하고 온 제 솔직한 심경입니다. 한국이 갖고 있는 주요 기술 가운데 세계 수준과 가장 격차가 크다는 우주항공분야. 언젠가는 우리 취재진이 일본 취재진들 앞에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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