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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1부대와 교류하며 실험" 일본 비밀병기 연구소

일부 시민들, '노보리토 연구소 실체 복원을 위한 시민회' 결성해 추적

<앵커>

현대 일본엔 그래도 지성과 양심이 살아있습니다. 군국주의 과거를 뉘우치는 자기성찰이 구체화됐습니다. 

평화교육 역사 자료관으로 다시 태어난 군국주의 일본의 비밀병기연구소를 김현철 특파원이 다녀왔습니다.

<기자>

중일 전쟁이 한창이던 1939년, 일본군은 제9 육군 기술연구소를 창설합니다.

일명 노보리토 연구소.

이 기술연구소는 신무기 개발은 기본이고 비정규전 수행을 위한 화학.생물학 무기도 서슴치 않고 만들어 냈습니다.

한창 때는 100여 동의 건물에서 천명 이상의 연구원이 근무하기도 했습니다.

[오쿠보(81)/노보리토 연구소 전직 연구원 :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입니다. 미안합니다.]

풍선 폭탄은 이 연구소가 만든 가장 대표적인 무기입니다.

소이탄을 매단 거대한 풍선을 미국 본토로 띄워 보내 공원에서 쉬고 있던 시민들을 공격했습니다.

노보리토 연구소는 인체실험으로 악명높은 만주 731부대와 인적교류를 하며 온갖 추악한 일들을 자행했습니다.

[야마다 아키라/메이지대학 교수 : 이곳의 연구 인력이 731부대로 가서 실험을 하기도 하고, 반대로 731부대에서 오기도 했습니다.]

요인 암살용 독약 무기를 개발하는가 하면 중국 경제를 교란하기 위해 위조지폐도 찍어냈습니다.

[야마다 아키라/메이지대학 교수 : 당시 45억엔 어치의 위조지폐를 만들어 30억엔 정도를 시중에 유통시켰습니다.]

이런 추악한 공로로 노보리토 연구소는 일본의 전범인 도조 히데키로 부터 표창까지 받았습니다.

패전과 함께 이 연구소와 관련된 자료는 모두 서둘러 폐기됐기 때문에 하마터면 노보리토 연구소의 존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과 학생들은 '노보리토 연구소 실체 복원을 위한 시민회'를 결성해 추적에 나섰고, 오랜 시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연구소의 실체는 끝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야마다 아키라/메이지대학 교수 : 일본이 이런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일부러 남겨 놓지 않으면 나중에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없이 틈만 나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일본이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용서받지 못할 행위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반성하는 이들은 일본의 균형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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