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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2만원 올려줘놓고..

건강한 저도 온 몸이 사시나무처럼 덜덜 떨리고, 콧물이 주르르 흐르는 갑작스런 한파에도 불구하고 어제 오후.

서울 여의도 한복판에 4천 명이 넘는 장애인들이 몰려 나왔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새벽부터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서 오신 분. 혼자서는 몸조차 제대로 가눌 수 없는 아들을 데리고 충청도에서 올라오신 할머니.

신종플루 공포에 백명 이상 모이는 집회도 자제하고 있는 요즘.

왜 면역력도 일반인보다 약한 이 분들이 찬바람을 맞으며 거리로 나오신 걸까요?

네. 그 죽일 놈의 생존권 때문이었습니다.

정부는 내년 7월 장애연금제도의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일할 수 있는 장애인에게는 일자리를 주고, 일할 수 없는 장애인은 나라가 보살피겠다"는 취지인데요.

아프고 소외된 계층을 끌어안겠다는 이야기니 이 얼마나 감격스럽습니까.

오히려 장애인들이 기뻐해야 할 텐데 대규모 시위라니요.

하지만 조금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누구 좋으라고 만든 제도인지 아주 기가 막힙니다.

지금 제도 하에서 중증 장애인은 장애수당까지 포함해 월 13만 원을 받습니다. 만약 장애연금제도가 시행되면 15만1천 원이 되는데요.

딱 보기에는 뭐 2만 원 올랐으니 된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중증 장애인에게는 연금이 지급되지만 경증 장애인은 대상에서 제외가 될 거고요. 중증 장애인 LPG보조제도가 없어지니 당장 교통비 문제에 부딪히게 될 겁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활동 보조 서비스를 신청해 예산이 바닥났다는 이유로 지난 10월 29일부터 활동보조서비스의 신규 신청도 금지됐습니다. (일부 지자체 예산이 남은 곳에서만 받고 있을 뿐입니다.)

시설에서 나와 자립을 해 보려는 장애인들을 위한 초기 정착금  5억 원 (5백만 원 * 1백 명)도 전액 삭감 당했습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에 따라 2011년까지 전체 버스의 31.5%가 저상버스로 채워져야 하지만 구입 예산의 6분의 1만 간신히 배정했을 뿐입니다.

장애를 갖고 싶어서 가진게 아닌데, 지금 대로라면  장애인들은 끼니조차 해결이 어려운 금액으로 겨우겨우 살아가면서 활동보조 서비스 조차 새로 신청해서 받기 어렵고, 시설을 나와 자립하는 건 꿈 속의 이야기가 되고 맙니다.

장애인 단체들의 주장에 따르면 애당초 복지부는 3천2백억 원의 예산안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금액이 국무 회의를 거치면서 1천5백억 원으로 반토막이 났다고 하는데요.

가뜩이나 부족한 예산이 절반이나 깎였으니 그 돈이 절실한 사람들에게는 얼마나 큰 절망으로 와 닿았을 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왜 없는 사람들에게 더 얹어주지는 못할망정. 위태롭게 서 있는 지금의 자리마저 위협하는 걸까요.

왜 늘 부족한 밥 그릇 속의 밥을 덜어내려는 걸까요. 어제 집회에서 눈물이 핑 돈 순간이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여느 단체 같으면 빼곡히 적힌 기자 회견문을 단 몇 분이면 술술 읽어 내려갔을텐데  시각장애인분이 5백 원보다 훨씬 크게 글자를 적어와서 더듬 더듬 읽을 때, 뇌성마비장애가 있으신 분이 의지와는 상관없이 뒤틀리는 몸을 바로 잡으려 애쓰며 구호를 외칠 때,  그게 바로 처절한 절규 그 자체였거든요.

나랏님.

4대강 하지 마시고, 감세 정책 펴지 마시고 한 번만 더 낮고 소외된 곳에 있는 사람들을 살펴 봐주세요. 살아있는 사람들을 죽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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