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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윈의 시각에서 바라본 현대인의 질병

변이, 적자생존, 세대유전으로 요약할 수 있는 진화론은 현대 학문에서 미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정치, 경제, 사회뿐만 아니라 스포츠, 종교, 철학에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은 200년간 세계적 스타로 군림해온 다윈이 탄생한 날이었다.

이날을 맞아 진화론적 시각에서 현대인의 질병에 대해 짚어보자고 윗분들이 결정하셨다.

기자들은 이런 걸 '총 맞는다'고 표현한다. 하지만 유쾌한 총이었다.


진화의학의 대가로 알려진 렌돌프 네세(Randolph Nesse)는 미시간 의과 대학 정신과 교수다.

정신과 의사답게 진화와 여러 정신질환들에 관한 연구를 많이 했는데, 그 중에서도 진화와 중독(약물)에 관한 내용은 흥미롭다.

이번 기사에서는 책 두 권에 걸쳐 망라 되어 있는 질환 들 중 현대인의 대표적인 질병이라 할 수 있는 세가지만 뽑아냈다.

감염성 질환만큼은 꼭 넣고 싶었는데, 1분 30초라는 시간제약은 어쩔 수 없었다.


비만

수 천년 전 인간은 식량과 물을 얻기 위해 매일 33km를 걸어야 했다.

이 들 중에는 우연한 변이에 의해 지방조직을 체내에 잘 저장시키는 유전자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기후가 건조해지고, 날씨가 추워진다. 풀이 잘 자라지 않고, 풀을 먹고 자라는 동물들도 수가 줄었다. 이 가혹한 환경은 지방을 저장시키는 유전자를 갖지 못한 사람을 도태시킨다. 따라서 그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 즉 적자가 생존하고, 그들의 형질이 수 천년 간 세대 유전된다.

그런데, 최근 100년 사이에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이들은 이전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음식을 섭취한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왕이나 몇몇 귀족에게만 보이던 뚱뚱한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보인다.

현대의학은 그간 생존의 필수 조건이었던 그 유전자의 이름을 비만 유전자라고 명명했다.


심혈관 질환

심장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을 관상 동맥이라 한다.

관상동맥이 콜레스테롤 성분으로 이루어진 혈전에 막히게 되면 심근경색 등의 치명적 질병이 발생한다.

"3~5mm에 불과한 좁은 혈관이 조금 더 넓었다면 해마다 300만 명이 목숨을 잃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들의 안타까움은 심혈관 질환의 치명성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관상동맥의 크기는 발생학적으로 심장의 크기와 비례한다. 심장이 큰 사람은 관상동맥도 크다.

심장이 몸집에 비해 크면, 심장 내 고여있는 혈액량이 늘게 된다. 이러면 피가 허파에서 심장(좌심방)으로 들어갈 때 저항을 많이 받게 되는데, 이는 폐고혈압을 유발해, 폐의 울혈성 경향을 증가 시키고, 폐활량의 저하를 유발한다.

즉, 몸집에 비해 큰 심장은 사냥활동을 하는데 방해요소가 될 뿐만 아니라, 섬유질이 풍부한 옛날의 음식으로는 좁은 관상동맥이 막히는 경우를 생각하기 어려웠다.


아토피와 천식

모든 동물들은 외부 병균에 대한 방어체계를 갖고 있다. 이를 면역체계라 하는데 재미있게도 척추동물, 그것도 턱관절이 잘 발달 된 동물일수록 정밀한 면역체계를 갖고 있다.

턱관절로 다양한 음식을 먹는 동물이 다양한 외부 병균들과 접하게 되고, 그러면서 다양한 면역체계를 발달시킨다는 가설로 이를 설명한다.

이는 인간의 면역체계 또한 외부 환경에 대응해 진화해왔다는 단서를 제공하기도 한다.

인간은 오랜 동안 주혈흡충이란 기생충에 시달려 왔고, 기도의 점막을 파고 드는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도 노출 돼왔다.

현재 우리나라 어린이 열 명 중 세 명이나 앓고 있다는 아토피와 천식은 주혈흡충, 호흡기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로부터 몸을 보호하던 면역체계가 과잉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화의학자들은 진화의 방향이나 그 옳고 그름에 대해 섣부른 판단을 경계한다.

즉, 현대 환경의 빠른 변화보다 인간의 진화속도가 늦어 현대인의 병이 초래됐다는 생각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더군다나 환경의 변화가 자연친화적이지 않은 나쁜 변화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말도 덧붙인다.

이는 빠르지 않은 인간 진화 속도에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현대의학의 위험성을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예를 들어, 알코올 중독을 야기하는 유전자가 있는 경우를 유전자적 결손(genetic defect) 있다고 함부로 판단해 이를 치료하고자 하는 시도는 개인의 질병 개선에는 도움이 될 지라도 만년 후에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랜돌프 니세 교수는 "어떤 질환에 취약한 유전자 염기 서열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을 현시점에서 genetic defect라 할 수 있겠는가?"라고 했고...

연세의대 해부학 이혜연 교수는 "카오스 이론처럼, 인간 진화 속도를 조절하려고 하는 한 번의 작은 시도가 향후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것"이라 했다.

 

[편집자주] '따뜻한 감성의 의학전문기자' 조동찬 기자는 의사의 길을 뒤로 한 채 2008년부터 기자로 전문언론인에 도전하고 있는 SBS 보도국의 새식구입니다. 언론계에서 찾기 힘든 의대 출신으로 신경외과 전문의까지 마친 그가 보여줄 알찬 의학정보와 병원의 숨겨진 세계를 기대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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