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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한테도 무시당하나! 굶주린 카이로의 들개떼에 '울컥'

[특파원 시리즈] 이민주 특파원의 앗쌀람! 카이로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카이로 생활에서 적잖이 신경쓰이는 부분은 도대체 겁이라고는 없는 들개들입니다.

 

주로 늦은 밤이나 이른 새벽에 떼를 지어 출몰하는데 사람을 무서워하기는 커녕 오히려 무리지어 위협을 가하기 일쑤입니다.

      

지난주에는 이른 새벽에 잠이 깨 밀린 일을 마무리하기 위해 혼자 차를 몰고 사무실이 있는 건물앞에 도착해 주차를 하려는 순간 들개 10여 마리가 한꺼번에 달려들어 차를 포위하더니 사납게 짖어대는 게 아니겠습니까.

어찌해야 하나... 경적을 울려 놀라게 한 다음 사무실 건물 안으로 부리나케 달려갈까...

한 마리쯤 다치게 하더라도 차로 개떼에게 돌진해 위력시위에 나선 뒤 당당하게 걸어가야 하나...

아니면 그대로 꽁무니를 빼야 하나...

짧은 시간에 가능할 법한 시나리오를 모두 떠올려 봤지만 결론은 '삼십육계'였습니다.

원래 덩치에 비해 겁도 많거니와 얼마 전 사무실 후배에게 들은 들개떼의 만행이 불현듯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후배가 해준 얘기인즉슨, 들개떼가 심하게 굶주린 때는 이른 아침 산책길에 나선 사람들을 마구 공격해 물어 뜯는 일이 종종 있고, 몇 달 전엔가는 골프장에서 샷을 준비하고 있던 모 대사관 직원을 뒤에서 갑자기 물어 중상을 입힌 일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릴 없이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오려니 맹수급도 아닌 겨우 개떼에게 쫓겨 도망친 신세가 조금은 부끄럽게도 생각됐지만 변변한 막대기 하나 없고 주변에 도움을 청할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었노라고 스스로를 몇 번이나 위로했습니다.

저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들개들이 요즘은 이집트의 식량난 영향으로 먹을 게 없어서인지 해 있는 동안에도 심심치 않게 나타납니다.

특이한 것은 개들도 보는 눈이 있는지 현지인들에겐 얌전하게 구는 반면 외국인들만 봤다 하면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듯 눈알을 부라리며 금방이라도 잡아먹을 듯 으르렁댑니다.

      

못난 아들 뒷바라지 하랴 카이로까지 따라오신 어머니의 유일한 취미가 선선한 이른 아침에 동네를 도는 산책인데 혹시나 들개들에게 해꼬지나 당하시지 않을까 불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재미는 덜 하겠지만 안전한 피트니스 센터를 권유해 드려야 할까 봅니다.

그나저나 저 역시 아침뉴스용 리포트를 만들려면 이곳 시각으로 밤 10시나 11시에 사무실에 들러야 하는데 혹시 들개떼의 습격을 받지나 않을까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닙니다.

  [편집자주] 한국 언론을 대표하는 종군기자 가운데 한사람인 이민주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스포츠,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쳐 2008년 7월부터는 이집트 카이로 특파원으로 활약 중입니다. 오랜 중동지역 취재경험과 연수 경력으로 2001년 아프간전 당시에는 미항모 키티호크 동승취재, 2003년 이라크전 때는 바그다드 현지취재로 이름을 날리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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