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늦었습니다. 2008년 7월 1일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이집트 수도 카이로에 지국을 열고 초대특파원으로 부임했습니다. 앞으로 3년동안 중동과 아프리카의 이런 저런 소식들을 우리의 시각으로 전해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민주 카이로 특파원
이집트 카이로에서의 생활은 마치 시계를 거꾸로 30년쯤 돌린 서울의 70년대를 연상케 합니다. 서울에서 마감시간에 쫓기는 기자노릇 하느라 특히 시간과의 싸움에 익숙해져 있던 제게 이곳의 하루하루는 마치 슬로우 모션으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정착하기까지 거주 비자나 프레스카드 등 만들어야 할 증명서가 제법 많았는데 어느 것 하나 손쉽게 이뤄지는 게 없어 카이로에 도착한 지 3주가 됐는데도 아직 떼야 할 서류가 남아 있습니다.
일례로, 특파원으로 활동하려면 이집트 프레스센터가 발급하는 프레스카드를 받아야 하는데 지난 4월 중순 지국 개설 준비 차 카이로에 머물 때 미리 신청했지만 6월 20일이 지나서야 손에 쥘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영상취재를 위해서는 별도의 취재허가서를 받아야 하는데 촬영장소와 일시, 인터뷰 대상, 취재목적 등을 자세히 적어 제출하면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 지나 허가서를 내줍니다.
시의성 있는 아이템을 발 빠르게 보도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게 현실입니다. 7월 1일 지국을 정식 개소한 저는 이 취재허가증이 아직도 나오지 않아 첫 리포트를 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방송 및 편집 장비를 한국으로부터 들여올 때도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닙니다. 통관 관리들이 보기에 낯선 장비들은 일일이 관계기관 (통신위원회, 프레스센터...)의 반입허가증을 별도로 요구해 이를 해결하느라 40도 땡볕 아래 씩씩거리며 카이로 시내를 헤매야 했습니다.
허가증 하나 받는데도 웬 절차가 그리도 많고 복잡한 지 그냥 맡겨놓고 기다리고 있다가는 사나흘이 훌쩍 지나가기 십상이었습니다.
차량 등록의 경우도 전문 브로커를 동원해 속성으로 했는데도 이 창구, 저 창구를 왔다 갔다 하기를 수차례 거듭한 끝에 반나절이 걸려서야 겨우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5년 전 요르단 연수시절에도 요르단대학교에서 재학증명서 떼는데 다섯 개의 도장 받느라 닷새가 꼬박 걸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우리의 시각에서 보면 납득하기 어렵고 직접 겪으면 울화가 치밀 긴 하지만 도무지 급할 게 없는 게 이네들의 정서인데다 한편으론 그 많은 도장 찍는 자리가 결국 높은 실업률 속에 그나마 일자리를 늘리는 역할을 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정신건강을 위해서도 이방인이 이해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없을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