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대지진설'로 불안한 일본

[유영수 기자의 좌충우돌 일본정착기]일본, 중국 쓰촨성 대지진에 불안감 고조…인터넷은 대지진 예언 천국

참혹한 중국 쓰촨 대지진이 일어난 지 일주일이 됐습니다. 엄청난 사상자와 피해를 낸 이번 지진에 대해 일본은 어느 때보다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언론사마다 대규모 취재진을 파견해 매시간 대지진 관련 속보를 내 보내고,지진 전문가를 초대해 이번 지진의 특징과 피해가 커진 원인 등을 다양하게 분석하는 등 비중 있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일주일이 지났지만,밤 늦은 시간에도 현지를 생방송으로 연결하는 등 여전히 관심이 식지 않은 모습입니다.

이런 쓰촨 대지진에 대한 일본의 보도를 접하면서 제가 받은 인상은, 일본이 이번 지진을 결코 ‘남의 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중국이 아니라,마치 일본의 어느 지방에서 일어난 지진인 것처럼 다루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평소 외신을 다룰 때 지나칠 만큼 차분하던 뉴스 기사의 톤도 흔들리는 것 같고,정보 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도 어느 때와 달리 ‘튀는 것’을 자제하고 진지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 같았습니다. 무엇인가 금기시되고 있지 않는가라는 느낌까지 들었습니다. 역시 일본인에게 지진의 의미는 남다르구나라고 생각하게 되더군요. 

                         

실제 일본인들이 이렇게 지진에 대해서 갖는 느낌,즉 불안과 공포는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이라고 합니다. 우리처럼 막연한 관념이 아니라, 교통사고처럼 언제든지 일상에서 닥칠  수 있는 일로 여긴다는 것이죠. 일본에서 오래 살지 않으면 쉽게 느낄 수 없는,아니 어쩌면 일본인이 아니면 느끼기 어려운 뿌리깊은 공포라고 합니다. 단지 “1년 지진횟수 만6천번으로 전세계 지진의 10%가 집중되고,이틀에 한번 꼴로 진도 2도 이상의 지진이 일어나는 나라”라는 통계상의 수치를 알았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그런 감정이 아니라고 합니다. 진도 7 이상의 강진이 최근 백년동안 60회나 발생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어렴풋이 수긍이 가기도 합니다만…

지진 불안감으로 '대지진 주기설', 잇단 '대지진 예언' 쏟아져

특히 이런 불안감이 응축돼서 나타나는 것이 이른바 ‘대지진 주기설’입니다.과거 문헌 분석을 해 보면 대지진이 일정한 기간을 두고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데,이를 통해 앞으로 일어날 대지진의 시기도 예측할 수 있다는 가설입니다.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도쿄 대지진설’로,70년 또는 80년의 주기로 도쿄가 위치한 관동 지역에 대지진이 발생한다는 설입니다.이 설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지난 1923년 9월에 관동 대지진이 있었던 점을 들어, 조만간 대지진이 도쿄를 엄습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그리고 시기가 늦춰지면 늦춰질수록 에너지가 축적되기 때문에,더 큰 지진이 올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이 가설을 비롯해 갖가지 대지진 학설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지난 2005년에는 수도권 지역에 거대지진이 일어날 것이라는 불안감이 최고조에 달했다고 합니다. 거대지진의 전조로 여겨지는 심해어의 어획 급증 등 심상치 않은 현상들에 대해 주요 언론들이 일제히 경고하고 나선 데다,정부조차 30년 이내에 수도권에서 대지진이 일어날 가능성이 70%를 넘는다고 공식 발표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그 해 실제 리히터 규모 6.0의 지진이 수도권을 강습하면서 사람들이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고 합니다.당시 서점가의 베스트셀러가 ‘지진 발생 시 살아서 귀가하는 지도책’이었고,방재용품 판매가 부쩍 늘었을 정도라고 하니,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실 겁니다.

인터넷, 대지진 예언 천국

이런 불안감은 또 일본을 ‘대지진 예언 천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예언자를 자처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해 각종 대지진 예언을 쏟아 내고 있는 것이죠.이들의 예언은 아주 구체적인데,단지 올해 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정도가 아니고 언제 어느 지역에 어느 정도 리히터 규모의 대지진이 있을 것이라는 식입니다.이중 예언이 가장 몰리는 달은 9월인데,관동 대지진이 발생한 달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대지진 예언이 가장 인기를 누리는 곳은 인터넷입니다. 근접하게 맞춘 일부 예언자가 순식간에 스타가 되고,확인되지 않은 정보들은 빠른 속도로 확산됩니다.이번 쓰촨 대지진의 경우도 한 예언이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일본의 커뮤니티 사이트인 ‘니찬네루(2ちゃんねる)’게시판에 지진 발생 당일 새벽 한 예언자가 ‘중국에 매그니튜드 7.2~7.8의 지진 발생,큰 피해’라고 짤막하게 예언했는데,장소와 시간-12시간 차이-뿐만 아니라 지진의 규모도 실제와 근접해 일본 네티즌들을 경악시켰다고 합니다.이 예언자는 이 사이트에서 ‘지상에 강림한 신’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여러 '가설'에도 불구, '과학 분석' 신뢰…지진 조기경보 시스템

물론 대부분 일본인들이 이런 설과 예언에 휘둘리는 것은 아닙니다.지진 분야에서만큼은 일본이 세계 최고라는 자부심 속에 지진 연구소의 과학적인 분석을 신뢰합니다.실제 일본의 지진관련 인력과 시설은 독보적인 위상을 갖고 있습니다. 상당수 대학에 지진학과와 지진연구소가 설치돼 수많은 인력이 활발한 지진 연구 활동을 하고 있으며,갖가지 첨단시설로 지진을 다각도로 예측하고 분석하는 곳이 일본입니다. 여기에 내진설계 기술과 신속한 방재시스템까지 포함하면,지진 분야만큼은 일본에게 한 수 접어줄 수 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 10년 동안 수백만 달러를 들여 완공해,지난해 10월부터 가동되고 있는 ‘지진 조기경보 시스템’입니다. 미묘한 진동의 차이를 통해 진도 5이상의 결과가 예측되면 긴급 대피를 유도하는 속보 시스템으로,첨단 장치가 총동원됐다고 합니다. 아직은 시스템이 불안해 최근 세 차례의 중급 지진 발생당시 모두 예측에 실패하기는 했지만,‘사실상 세계 최초의 지진예보 시스템’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일본은 더 나아가 지진 발생 이 예상되는 해저에 수백대의 지진계를 설치해,속보가 아닌 실제 지진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 개발을 20년 이내에 구축한다는 계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체험하지 못했던 비교적 큰 규모의 지진을 최근 두 어 차례 직접 겪으면서 ‘지진이 이런 느낌이구나’라고 막연히 떠올린 적이 있습니다.잠깐의 짧은 시간이었지만,너무 급작스러워서 어찌 해볼 수 없다는 낭패감 같은 것이었습니다.

과학적인 방법이든 허무맹랑한 방법이든,어떻게 해서라도 지진을 예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일본, 그 필사의 노력에는 오랜 세월 무의식을 통해 전해 내려 온 깊은 수렁 같은 불안과 공포가 묻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사진=유영수 기자)

※본 기사는 SBS의 편집방향과 무관하며 모든 책임은 정보 제공자에 있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