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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동창고 폭발사고의 재구성

 * 발화와 폭발 사이

이번 냉동창고 폭발 사고의 희생자는 40명이나 됩니다.

목격자의 진술이 조금씩 나오면서 피해가 이렇게 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생각하게 됩니다.

가장 중요한 점은 불이 처음 붙은 시각과 폭발이 일어난 시각 사이에 '시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엔 워낙 큰 폭발이었기 때문에 빠져나올 여유조차 없었을 거야. 이렇게 넘겨버리기 쉽습니다.

자그마한 사실의 조각들을 끌어모아 화재 당시의 전체적인 상황을 맞춰들어가는 꽤 복잡한 퍼즐에 도전해야 합니다.

목격자는 위의 화재 평면도상 13번 창고의 천장 모퉁이에서 불을 발견하고 16번 창고 앞으로 뛰어가 119에 신고했다고 말했습니다.

불은 처음에 가로 세로 1미터 쯤의 작은 공간에만 머물렀다는 게 목격자의 증언입니다.

불은 붙자마자 일용직노동자에 의해 발견됐습니다.

목격자도 불이 그만큼 작았기 때문에 창고 밖으로 뛰어나가지 않고 16번 창고 앞까지만 대피한 뒤 119에 신고한 것입니다.

목격자는 신고 전화를 끊자마자 순식간에 번지기 시작하는 불을 봤고, 깜짝 놀라 100미터를 넘게 뛰어가 그림 아래쪽 출입구로 빠져나왔습니다.

그리고 곧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불을 처음 발견하고, 119에 신고하고, 불이 번지고, 100미터를 넘게 뛰어간 뒤에 뒤늦게 일어난 것이 폭발 현상입니다.

수많은 인명을 살릴 수 있었던 그 시차는 얼마나 될까요.


 * 죽은 소방장비들

발화와 폭발 사이의 시차 자체를 줄이긴 힘들었을 것입니다.

초기 진화에 실패했다면 불의 확산은 자연 현상이니까요.

창고 내벽의 마감재로 쓴 우레탄은 라이터를 갖다대도 불이 쉽게 붙지 않지만, 일단 온도의 임계점을 넘어 발화되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건물을 집어삼킵니다.

문제는 발화 사실을 창고 안에 있던 다른 일용직노동자들에게 얼마나 빨리 알릴 수 있느냐입니다.

부상자 가운데 하나인 44살 임 모 씨의 남편은 미처 대피하지 못하고 숨졌는데, 다른 노동자들에게 불이 난 사실을 알리기 위해 뛰어다니다가 자신이 대피할 시간을 놓치고 말았습니다.

기본 중의 기본인 자동화재경보기는 뭘 하고 있었던 걸까요.

폭발 전에 가까스로 창고를 탈출한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상벨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죽어 있었던 겁니다. 스프링클러와 방화셔터는 더 심각합니다.

KOREA2000 직원은 경찰 조사에서 자동방화셔터문을 자동에서 수동으로 바꿔놨다고 실토했습니다.

게다가 스프링클러와 연결된 펌프 밸브를 잠가서 작동되지 않게 했다고 털어놨습니다.

동파 사고 하나 막자고 밸브 잠갔다가 최악의 참사를 불러왔습니다.

폭발의 파괴력으로 옥내 소화전과 스프링클러가 모두 망가져 작동하지 않았다던 소방당국의 초기 판단은 틀린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화재 현장 바로 옆에 있는 창고를 확인해봤더니 마찬가지였습니다.

역시 KOREA2000 이 시행-시공하고 제 식구인 KOREA2000 건축사사무소에서 소방시설 감리를 맡은, 북 치고 장구 친 창고입니다.

고온을 감지해 경종을 울리는 'P형 수신기'는 꺼져 있었습니다.

1997년에 만들어진 소화기는 내부 가스 압력이 다 떨어져 먼지만 수북이 쌓였습니다.

이런 소화기는 어릴 때 배운대로 소화기를 흔들어주고, 안전핀을 뽑고, 노즐을 불을 향해 들이댄 뒤, 손잡이를 꽉 움켜쥐면, 분말이 쫙 나가는 게 아니라 피이이이익-- 하고 골골거립니다.

'안전불감증'이란 말도 어울리지 않고, 그냥 아무 개념이 없는 겁니다.

결국 발화와 대피 사이의 시차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폭발의 화염을 피하지 못하고 모두 희생됐습니다.



 * 13번엔 작업이 없었다

초기 발화 지점에 대한 목격자들의 얘기는 일치합니다.

13번 창고 출입구에서 봤을 때 천장 왼쪽 모퉁이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대체 누가 거기서 뭘 했기에 불이 났을까요.

앞서 언급한 부상자 임 씨는 당시 13번 창고 천장에서 불이 나는 건 봤지만, 창고 안에 사람도 없었고 아무 작업도 없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그의 기억이 불확실할 수도 있으니까, 당시 창고 안에서 벌어진 작업들을 종류별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화재 당일 경기도 소방본부장은 창고 안에서 1.냉동기 설치작업 2.전기공사 작업 3.배관 보온작업 4.에어컨 설치작업 등 4팀이 일했다고 밝혔습니다.

지금까지는 창고에 가득 차 있던 유증기에 용접 등으로 인한 불꽃이 튀면서 불이 시작됐다는 게 소방당국의 설명이었는데. 4가지 작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작업 도중에 불이 날 만한 가능성이 있는지, 서울에 있는 한 냉동창고 시공업체와 통화하면서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통화 내용 전문을 올립니다.



 * 용접 작업은 안 한 듯

(기자) 13번 냉동실 창고 앞에서 배관 보온공사 하고 있었다던데, 무슨 공사인가요?

(시공업체) 냉매가 들어가는 배관이요. 찬 물건이나 뜨거운 물건이 지나가면 외부와 접촉되면 이게 열이 변하죠. 파이프 속을 지나는 물체의 온도를 지속하도록 밖에 스티로폼이나 우레탄으로 감싸는 거예요.

(기자) 감싸는 재료는 보통 뭘 쓰죠?

(시공업체) 파이프면 스티로폼으로 하고 있습니다.

(기자) 파이프가 천장으로 지나가나요?

(시공업체) 대부분 천장으로 지나가요. 지게차 이동에 걸리지 않도록.

(기자) 그럼 배관 보온공사 할 때 불꽃 튈 일 없겠네요?

(시공업체) 보온공사는 용접 작업이 다 끝나고 테이프 다 감은 상태에서 하는 거기 때문에,

용접하고 상관 없습니다.

(기자) 당시 냉매를 주입하던 날이었는데. 냉매는 프레온 쓰죠? 폭발 위험성은 없다면서요?

(시공업체) 프레온은 폭발성 없어요. 가연성도 없는데. 만일 이 기체가 열하고 닿았을 때 폭스겐 가스가 발생해요. 폭스겐은 상당히 독가스죠. 독일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 학살할 때 쓰던 가스예요.

(기자) 그럼 냉매 주입 작업도 화재 원인이라고 보긴 힘들겠네요?

(시공업체) 발화 원인이 될 수 없죠. 냉매 넣으면서 다른 데서 발화돼서, 냉매 넣는 도중에 냉매가 다른 데로 흘러서 열하고 닿았을 때 폭스겐이 나오는 거니까요. 거기에 질식해서 죽는 거지, 폭발하는 건 없습니다.

(기자) 주입하는 건 액체 냉매인가요?

(시공업체) 액상이에요.

(기자) 창고 중앙기계실에서 냉매를 각각 냉동창고로 공급하는 시스템인가요?

(시공업체) 대부분이 그렇죠. 기계실에서 큰 하이레시바라고 해서, 냉매를 모아두는 탱크가 있어요. 거기서 각 냉장실로 냉매를 보내는 거죠.

(기자) 그럼 각 냉동창고에는 그럼 뭐가 달려있나요?

(시공업체) 유입클라라고 해서 에어컨에 찬바람요. 그런 게 있어서 그쪽으로 냉매가 들어가서 증발하면?로. 창고 안에 유입클라가 달린 거예요. 창고마다 달려 있어요.

(기자) 에어컨 설치팀도 당시 안에 있었다는데요?

(시공업체) 에어컨은 사람을 상대로 한 거죠. 용량이 작아요. 냉장고 안은 대형입니다. 에어컨은 냉장고 속엔 못 집어넣죠.

(기자) 그럼 짐작가는 화인이 있나요?

(시공업체) 뭐라고 말씀 못 드리겠습니다.

(기자) 불 난 창고 안에서는 용접기 발견 안 됐다는데요?

(시공업체) 우리가 봤을 때 이게 시운전, 냉매 주입단계라고 했거든요. 용접 작업이 다 끝나서 아까 말한 배관 보온작업하면서. 냉매를 주입하는 거거든요. 거의 맨 끝 단계예요. 그 단계에서는 용접할 데가 없어요. 용접기가 있다면 그동안 썼던 게 있었을 거예요.

(기자) 유증기가 폭발할 수도 있나요?

(시공업체) 그 얘기 자꾸 나오는데. 유증기는 우레탄에서 자꾸 나온다고 하는데. 그건 유증기 발생 안 해요.

(기자) 전혀 안 나와요? 얘기가 다 다르던데?

(시공업체) 우레탄 속에 넣는 조화제라고 있거든요. 옛날엔 거기 신나, 벤젠, 톨루엔 섞어서 인화성 높았죠. 요즘엔 냉매 아니면 물을 섞거든. 연소성 없는 걸 섞어요. 그렇기 때문에 뿌옇게 나오는 건 그 속에 유증기가 아니고, 뿌리는 과정에서 물하고 가루 같은 게 날리는 거예요. 우레탄 자체에서 유증기가 나온다는 건 이해 안 됩니다.

(기자) 발포 작업할 때 말이죠?

(시공업체) 우레탄은 불 붙기가 어려워요. 일부러 라이터를 갖다 대도 잘 안 타. 쭈그러들지. 하지만 만일 이게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어요. 무섭게 확산됩니다. 순식간에.

(기자) 그럼 예전엔 유증기 나왔나요?

(시공업체) 그때 신나나 톨루엔 인화성 강한 물질 섞으면, 페인트 굳은 거 신나로 섞으면 잘 섞이잖아요. 지금은 그걸 못 쓰게 돼 있어요. 법적으로. 우레탄이 AA 있고 BA 있습니다.

(기자) 그건 뭐죠?

(시공업체) 하나는 부풀리는 폴리온이 있고, 다른 하나는 경화시키는 액이 있어요. 우레탄 발포작업할 때 이 둘을 섞거든요. 이걸 섞을 때 잘 섞이라고 물보다는 신나가 잘 돼거든. 그거 지금 쓰면 큰일나요.

(기자) 언제부터 못 쓰나요?

(시공업체) 한참 됐죠. 우레탄 스프레이로 해서 뿌리는 건 시일이 오랜 동안 써먹질 않았어요. 그런 위험성 있었기 때문에. 자동차 범퍼라든지 그 속이 그런 거 만들 때나 썼지.

(기자) 냉매는 예전에 암모니아 썼잖아요?

(시공업체) 지금도 쓰지. 폭발성 있고 독성도 있죠.

(기자) 그럼 이번엔 뭐 썼나요?

(시공업체) 거기는 프레온으로 알고 있어요. 냉동공사 크게 하나 일어나면 거의 전부 다 알아요.

(기자) 프레온이 확실한 거예요?

(시공업체) 서울 시내에서는 암모니아 전혀 못 쓰고. 서울 근교에서도 암모니아 제약이 많고. 코리아2000 같은 건 프레온을 써요.

(기자) 그럼 대체 어떻게 폭발한 거죠?

(시공업체) 나도 모르겠네. 포리올 같은 거 있잖아요. 그런 건 한번 연소해서 불 붙으면 폭발 위험도 있어요.

(기자) 우레탄 성분 말인가요?

(시공업체) 네. 유증기는 없지만 폭발성이 있어요. 인화점이 230도 정도 돼죠.

(기자) 고체 상태에서 폭발하는 건가요?

(시공업체) 원액은 액체죠. 이번에 (지하에 보관돼 있는 우레탄 폼 연료) 200리터라고 한 거. 그 주위에 온도가 높아져서 팽창되면 드럼통이 찢어지지요. 인화성 있으니까 폭발하는 겁니다.

(기자) 처음부터 폭발한 건지, 불이 나서 폭발한 건지가 문제네요?

(시공업체) 그 자체가 폭발한 건 아닐 거라고 보는데. 아는 사람들은 다 그렇게 생각할 거예요. 우레탄 연료 그 자체가 폭발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에요. 불이 나면서 주위 온도가 높아지면서 그게 팽창되면서 폭발한 걸 거예요.

(기자) 그럼 처음부터 폭발하려면 유증기나 암모니아인데, 둘 다 가능성 없다는 말이죠?

(시공업체) 그렇지요.

(기자) 당시 창고에 전기공사 팀도 들어가 있었는데, 무슨 작업 하는 거죠?

(시공업체) 1차 전기는 한전에서 주는 전기를 공장에 쓸 수 있게 설치하는 거고. 2차 전기는 인입된 전기를 써먹을 수 있게 냉동장치에 써먹게 하는 겁니다. 동력선 같은 거죠.

(기자) 이번 공사는 2차였겠지요?

(시공업체) 거의 2차 전기죠. 컴프레샤라든지 냉장실 쿨러라든지. 팬이 돌아가야 되거든요. 그 돌리는 동력 같은 거예요.

(기자) 불이 천장에서 난 걸로 보이는데, 거기로 전기선 지나가나요?

(시공업체) 냉장실은 천장으로 지나갈 수도 있죠. 여러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건물 지을 때 콘크리트에 선을 묻어서 콘센트만 나오게 할 수도 있고. 완전히 한 방이 형성됐을 때, 전선관으로 가는 경우도 있고요.

(기자) 전기합선 가능성도 있잖아요?

(시공업체) 누전도 배제 못하죠.

(기자) 어떤 환경에서 누전이 잘 되나요?

(시공업체) 거기는 새 와이어를 깔았으니까 낡아서 누전됐든지 스파크든지 그런 가능성은 별로 없다고 봅니다.

(기자) 천장에서 불이 났으면 어떤 가능성이 가장 크죠?

(시공업체) 천장이면 거의가 누전이죠. 보통 불 나는 게. (냉동창고 만들 때) 천장에서 용접할 리도 없고. 불이 날 수 있는 원인은 전기에서 발생하는 스파크거든요. 그거밖에는 없는 거죠.

(기자) 그 날 에어컨 설치작업도 했다는데, 이 때도 용접하나요?

(시공업체) 안 하죠. 커터기 같은 거 가지고, 볼트 같은 걸로 조여서 배관을 하니까. 그건 용접이 없어요.

(기자) 냉동기 설치작업도 했는데, 냉동기는 에어컨하고 다른 거죠?

(시공업체) 에어컨 속에도 작은 냉동기가 있어요. 반 마력쯤 되는 거. 냉동기는 150에서 600마력까지 있고요.

(기자) 냉동기가 정확히 뭐죠?

(시공업체) 하나의 압축기예요. 컴프레샤. 기계실부터 시작할까요. 레시바 탱크, 거기서 프레온이 파이프로 죽 통해서 냉장실로 가면. 팽창밴이라고 있어요. 액 상태가 팽창밴을 지나면서 좁은 구멍을 통과하면서 확 퍼져 가스화가 돼요. 이 가스가 증발하면서 냉기를 발산하는 거죠. 그래서 이 냉기를 팬으로 불어서 냉장고 내 찬바람이 쫙 퍼지는 냉장고가 되는 건데. 증발된 가스를 다시 회수를 해서 그걸 압축을 시켜서 액 상태로 다시 만드는 거예요. 그게 냉동기입니다. 증발해서 팽창된 가스를 압축시켜서 고압가스로 만드는 기계입니다.

(기자) 이거는 하나인가요?

(시공업체) 창고마다 있는 것도 있어요. 작은 게 들어가죠.

(기자) 창고마다 설치하면 어디다 달죠?

(시공업체) 창고마다 하면 대부분 밖에다 하는데. 이천 같은 경우는 기계실에 들어가 있을 거예요. 대형은 그 안에다 설치하니까. 기계실에 하나로 크게.

(기자) 그럼 냉동기 설치작업도 불하고 관련 없겠네요?

(시공업체) 관련 없죠. 아무 상관 없습니다.

 

즉, 4가지 작업 모두 용접이 필요하지 않다는 얘기입니다.

용접 불꽃이 튀면서 발화했을 가능성은 낮다는 것이죠. 이같은 내용을 보도한 다음날 경찰도 화재 당일 노동자들이 용접기를 쓰지 않았다고 내부보고서를 작성했습니다.

경찰이 현장감식을 벌인 결과, 하도급업체 유성ENG의 산소통 2개와 LPG가스통 2개가 발견된 곳은 현장사무실 앞입니다.

보통 쇠파이프를 자르거나 냉매가 흐르는 배관을 연결할 때 쓰는 것인데, 이 통에 연결된 용접선과 토치(불꽃이 나는 끝부분)가 용접기 운반용 수레에 감긴채 발견된 것입니다.

사무실 앞 복도에서도 산소 4통, LPG 1통, 프레온가스 1통이 실린 1톤 짜리 화물차량이 전소된 채 발견됐지만, 화재 당일엔 쓰이지 않았습니다.

전문 시공업체의 설명대로 냉동창고 공사는 거의 마지막 단계였기 때문에 '용접할 데가 없고', 만약 용접기가 발견됐다면 그동안 썼던 용접기를 그대로 방치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용접기 불꽃 얘기는 이제 쏙 들어갔습니다.



 * 유력한 단서

확실하게 밝혀진 건 아직 아무 것도 없습니다. 1.발화의 원인도 2.폭발의 원인도 3.두 현상의 시차까지 애매합니다. 저희는 그제 불을 처음 발견한 채 모씨를 만났습니다.

채 씨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오면, "불이 그 때 의아하게 봤던 게, 불 자체가 불이 타면 우레탄 폼이 휘발성이 강하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어디서 불이 붙었으면 자리부터 타고 봐야 하는데, 불이 붙어 있는 상태에서 왼쪽으로 흘러가요. 장작에 불을 붙이기 위해 휘발유라든가 석유라든가 부어놓고 불을 붙이잖아요. 나무는 안 타고 기름만 타려고 나가잖아요, 그런 식으로 나가더라구요. 파란 불꽃을 내면서. 불길이 13번 방에서 나가더라구요. 파란불 자체가 나풀나풀하면서 나가더라구요."

촛불의 심지가 타지 않듯, 파란 불길이 나풀나풀 번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타기 시작한 건 어떤 '기체'라는 얘기입니다.



 * 발화 기체의 정체는

위에서 취재한 업체 직원은 1.요즘 우레탄에서는 유증기가 나오지 않고 2.냉매로 쓰이는 프레온도 폭발성이나 가연성이 없으며 3.폭발성 있는 암모니아는 요즘 냉매로 쓰지 못한다고 말했습니다. 경찰이 화공과 교수에게 자문한 바도 마찬가지어서, 우레탄 발포작업을 마치고 열흘이 지나도, 생성된 유증기는 천장 우레탄이나 주변 자재에 흡수된다고 합니다. 다만, 우레탄 공사 현장에서 젊은 사람이 뛰는 속도만큼 화염을 이동시킬 수 있는 물질은 "유증기 말고는 없고", 또 날씨가 건조하거나 유증기의 농도가 높을 경우에는 자연에서 발생하는 정전기만으로도 발화가 가능하다면서, 유증기 쪽에 조심스럽게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이 난 2007년 1월 7일 경기도 이천 기상관측소의 데이터를 확인해보면, 아침부터 서울과 경기도 일대에 무척 짙은 안개가 꼈고, 오후 1시 현재 상대습도가 95%에 달했다는 점에서 '건조한 날씨에서 정전기로 일어난 불'이라는 추정도 튼튼해 보이진 않습니다. 전기 누전이나 스파크의 가능성도 짚어볼 수 있지만 불이 난 창고에 '새 배선'이 깔렸다는 점으로 미뤄 역시 가능성은 낮습니다.

프레온 냉매도 화재의 책임을 덮어쓰지 못합니다. 경찰 실험 결과, 프레온은 스파크가 튀거나 라이터로 불을 붙여도 폭발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프레온은 또 폭발하지 않더라도, 불이 붙어 발열하는 순간 단지 검정색 연기만 남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목격자의 말대로 "파란불 자체가 나풀나풀"거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폭발 원인도 아직까지 미상인데, 18번 냉동실에는 폭발하지 않은, 200리터 짜리 우레탄 원료(B형) 15드럼이 있었습니다.

폭발할 수 있는 것은 용접에 쓰이는 LPG가스통과 우레탄 연료 등인데, 화재 당시 창고 어디에 얼마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기적적으로 살아나온 생존자도 가로 세로 100미터가 넘는 대형 창고에서 다른 하청업체 직원이 어디서 무슨 작업을 하는지까지 일일이 기억하지는 못합니다.



 * 참사의 재구성

13번 냉동실 천장 구석에서 처음 불이 시작됐습니다.

내부 마감재인 우레탄은 타지 않고 '어떤 가스'만 파란 불꽃을 내며 연소했습니다.

목격자가 수십 미터를 피해 119에 신고했습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우레탄에 불이 붙었고 무서운 속도로 창고를 집어삼켰습니다.

불이 활활 타오르면서 유독가스가 퍼졌습니다.

불은 창고 어딘가에 보관돼 있던 폭발성 강한 '어떤 물질'까지 확산됐습니다.

열을 받아 팽창하기 시작했고 곧 폭발했습니다.

처음 불이 나고 폭발이 일어나기까지 '몇 분' 정도가 걸렸습니다. 40명을 살릴 수 있었던 시간.

비상벨은 죽었고 스프링클러의 밸브는 잠겨있었습니다.

일용직 노동자들은 불이 난 줄도 몰랐고, 달아나지도 못했고, 초기진화도 못했습니다.

어떤 망자는 앉아서 작업을 하는 모습 그대로... 숨져 있었다고 합니다.

정전기든, 전기 스파크든 생길 수 있습니다. 자연 현상을 막지 못합니다. 발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40명이 숨지는 참사는 인간의 힘으로 충분히 막을 수 있고, 또 막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소방법이 있고 건축법이 있고, 지켜야 하는 섬세한 규정들이 있습니다.

임야의 용도를 바꿔 돈이 되는 창고를 지은 뒤 임대한다는, 이 분야에서 기가 막힌 수완을 발휘해 고속성장해 왔다는 KOREA2000.

관련 법규정에 통달해 전문적으로 돈만 벌 줄 알았지, 공사 현장의 안전과 사람 목숨에 대한 관심은 제로였습니다.

이들에 대한 사법처리가 불가피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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