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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제 연기인생 2막이 열리는 것 같아요"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주연 혜경 역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감독 임순례, 제작 MK픽처스)의 개봉을 앞둔 김정은의 얼굴이 밝아보였다.

일말의 불안감은 시사회 이후 쏟아지는 칭찬에 조금씩 자신감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우생순'은 배우 김정은에게 '사랑니'에 이은 '어떤' 시도다.

그의 대표작인 영화 '가문의 영광', 드라마 '파리의 연인'은 다분히 상업적 장르다.

그런 그가 2005년 정지우 감독의 '사랑니'에 출연하면서 뭔가 깊어지고 싶고 변화하고 싶다는 욕구를 은연중 드러냈다.

임순례 감독과의 작업은 그래서 그에겐 의미가 있다.

1996년 MBC 공채 탤런트로 연기자가 돼 스타의 인기를 영위했던 그가 연기 인생 10년, 나이 서른을 넘기며 "이제 제 연기의 2막이 열리는 것 같다"고 말한다.

◇발성법부터 다시 익히게 한 핸드볼 영화

'우생순'에서 김정은은 감독대행 출신 선수 김혜경 역을 맡았다.

핸드볼 올림픽 금메달의 주역으로 일본 프로팀 감독으로 활동하다 고국의 부름을 받고 왔다.

그러나 '이혼녀'라는 꼬리표를 못내 못미더워하고 '그래도 남자가 낫지'라는 속내를 가진 협회 간부들의 결정으로 감독대행에서 쫓겨나지만 금메달에 대한 욕심(영화를 보면 절실한 이유가 아주 재미있게 표현된다)으로 선수로서 합류한다.

옛 연인이자 감독으로 부임한 안승필과 사사건건 부딪치면서도 후배들을 다독이고 격려하며 미숙(문소리 분)과 함께 큰언니로서 역할을 해낸다.

감독 때나 선수 때나 혜경은 소리를 잘 지른다.

당연히 그럴 수밖에. 그런데 김정은은 나긋나긋하고 본인 표현대로라면 '말에 웃음을 잼발라 놓은 것처럼' 여성스럽고 밝은 목소리가 트레이드 마크. 그러니 안승필에게든, 선수들에게든, 자기 자신에게든 날 선 목소리로 지르는 발성법은 맞지 않았다.

'우생순'에서 발성의 변화가 눈에 확 띄더라는 말에 그간의 과정을 길게 설명해줬다.

"바로 옆집에 사시는 최형인 교수님(한양대 연극영화과)이 이 영화에 출연한다는 걸 알고 '너 도대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얼른 책 갖구 와'라고 먼저 말씀하셨어요. 느닷없이 대본을 쓱 내미는 게 죄송하고 책임감도 없어 보여 망설였는데 교수님이 먼저 말씀해주셔서 어찌나 고마웠던지. 저보고 '넌 얼굴과 상체에만 기가 있다'고 하시며 기를 아래로 발끝까지 끌어내는 작업을 해보자고 하시더군요. 허리 굽혀 소리지르는 기 체조 등 처음 해보는 방법으로 연습했습니다. 이제 연기를 달리하는 방법을 배운 것 같아요."

배우 조련사로 유명한 최형인 교수는 혜경의 엄마로 우정출연까지 자처해 그의 든든한 우군이 됐다.

◇"내게 손을 내민 곳에 나도 손을 뻗었다"

도대체 왜 선택했느냐고 물었다. 빠듯한 제작비에 단독 주연도 아닌 영화. 그런데 무엇이 그를 주저없이 선택하게 했을까.

"제겐 로망 같은 감독님들이 몇 분 계세요. 임순례 감독님도 그중 한 분이시죠. '와이키키 브라더스' '세 친구'로 영화인들과 영화팬들에게 뜨거운 감동을 전해준 분이지만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했죠. 임순례, 문소리라는 이름과 김정은은 왠지 맞지 않을 것 같지만 그분들이 관객과의 소통을 위해 제게 손을 내밀었는데 전 붕붕 뜬 것에서만 벗어나기 위해 뭔가 변화가 필요해 마침 그 쪽을 향해 서 있었고, 저 역시 그분들에게 손을 뻗고 있었던 겁니다. 잘하면 모두에게 정말 좋은 일이잖아요."

사실 상업영화 배우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는 김정은의 합류만으로도 '우생순'은 임순례 감독 작품에 낯선 핸드볼 영화이지만 대중에게 상업영화로 다가가는 데 어떠한 설명도 필요하지 않았다.

"'사랑니' 때 처음 그런 시도를 해보았고, 그땐 솔직히 많은 분들이 알아주지 않으셨지만 가능성이 보인다는 평을 들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우생순' 출연으로 한번 더 노력하는 모습을 보인 거고, 이제는 좀 더 많은 분들에게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영화에, 드라마에, 배우에게, 가수에게 때론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때론 가혹한 채찍을 가하는 대중의 가치를 누구보다 아는 그이기에 작품성을 인정받음과 동시에 흥행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전 어려워서 보기 힘든 예술영화보다는 잘 만든 대중영화가 훨씬 더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야 힘이 나잖아요. (문)소리 씨가 드라마에 출연하면서 대중과 훨씬 더 친근감을 느꼈듯이 저 같은 배우가 임 감독님 작품에 출연하면 관객이 좋아하지 않을까요?"

◇'임순례의 힘'을 느끼다

'우생순'은 어찌 보면 루저(looser)들의 이야기다.

오로지 4년에 한 번 열리는 올림픽이 열릴 때만 메달 색깔에 관심을 보일 뿐 변변한 실업팀도 없을 정도로 비인기 종목인 핸드볼에, 금메달이 아닌 은메달을 따낸 선수들을 그린 영화.

그렇지만 영화는 이 때문에 한없이 무겁지도, 끝없이 교훈적이지도 않다.

심각한 순간에 웃음이 터져나온다.

안승필 감독이 혜경, 미숙 등 노장선수들을 밀어내려는 심각한 장면에서 그들이 정란(김지영)의 보약을 훔쳐 먹고 시치미를 떼는 모습이라니.

이런 설정과 이런 장면은 감독 임순례가 어떤 생각을 하며 사는 사람인지 짐작하게 한다.

"혜경이 감독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팀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설명되는 장면이 있습니다. 12년 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고 찍은 사진을 보는 장면인데, 전 이 한 장면으로 혜경의 심정을 표현해야 해 여러 연기를 여러 커트로 찍었어요. 그런데 혜경에겐 너무 심각한 그 장면에서 시사회 관객들이 웃으시더라구요. 순간 당황했는데, '아 이게 바로 임순례의 힘이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임순례 감독 영화의 특징에 대해 "눈물은 나는데 웃고 있는 기이한 현상, 그렇지만 그게 일상적인 일이며 그 감정을 끄집어내는 데 탁월하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셔도 어느 순간엔 고스톱 치고, 밥 먹고 웃잖아요. 우리네 삶이라는 게 그저 눈물만 나지도, 한없이 웃을 수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이제부터 우리 웃길 거거든, 이젠 울릴 거야, 이러지 않고 그 감정을 고루 섞어 내보입니다."

배우 김정은은 이렇게 차츰 깊어지고 넓어지고 있었다.

"내가 갖고 있는 장점만 계속 내보이면 대중이 지겨워하기 전에 나 스스로 먼저 지겨워할 것"이라고 말하는 김정은의 연기 인생 2막이 기대된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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