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안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8일째인 5일 전남 무안국제공항 터미널 내 계단에 유가족들이 쓴 편지가 붙어 있다.
오늘(8일)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희생자 179명은 사고 발생 10일 만에 모두 영면에 들었지만, 이들에게 닿지 못한 포스트잇 편지는 무안국제공항 대합실에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뜬 눈으로 며칠간을 지새우던 유가족들은 한 뼘도 안 되는 종이에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들을 빼곡히 적어 내려갔습니다.
대합실에 붙여진 129장의 편지로 유족들이 가장 하고 싶었던 말은 사랑해(84회), 편안히 지내(31회), 행복해(31회), 미안해(22회)였습니다.
철부지 막내딸은 부모처럼 살아가겠다는 새로운 꿈을 꿨고, 남편은 수십 년 곁을 내줬던 아내에게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며 그렇게 마지막 인사를 전했습니다.
남편을 잃은 아내는 "사는 동안 두 다리로 아등바등 오로지 가족과 일밖에 몰랐는데…당신에게 닥친 시련이 너무나 감당이 안 되네. 인사 없이 가서 많이 서운한데. 고생 많았고, 사랑합니다. 많이 사랑했어요"라고 적었습니다.
27년 2개월간 꼭 붙어있었던 아내를 떠나보낸 남편은 "딸 둘 아들 하나 잘 키워 시집장가 보낸 후 죽게 되는 날 꼭 마중 나오시기를 바라네. 그때 저승에서 같이 살게. 사랑해. 꼭 만나자"고 약속했습니다.
무뚝뚝했던 아들은 '사랑한다'는 그 말 한마디 못 해보고 엄마와 누나를 떠나보낸 것을 생각하며 회한에 잠겼습니다.
그는 "꿈에라도 찾아와. 기다리고 있을게. 사랑해"라고 적었습니다.
망고를 사 오라고 부탁했던 막내딸은 "엄마 아빠 망고 안 사 와도 되니까 얼른 와…지금이라도 오면 내가 용서해줄게. 그래! 망고 안 사 와도 반겨줄게! 안돼?"라며 애원했습니다.
그는 "어리광 피울 날 많을 줄 알고 철없는 행동 많이 했는데. 나 평생 철 안 들 거야. 그러니까 엄마 아빠가 따뜻한 햇살로, 시원한 바람으로 내 곁에 오래오래 있어 줘. 나도 엄마 아빠가 가르쳐준 대로 남에게 배려하고 베풀며 살아갈게"라고 약속했습니다.
또 다른 자식은 부모에게 의존만 했던 지난날을 반성하며 변화를 다짐했습니다.
"아빠에게 기대지 않고, 용돈도 주면서 살아가는 모습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하늘에서 아니면 아빠 좋아하던 바다에서 지켜봐 줘. 나 믿음직하게 살아가는 거 보여줄게. 아빠 너무너무 고마워 사랑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던 자녀들도 이제는 꿈속에서 만나기만을 기도해야 합니다.
엄마는 "우리 예쁜 효녀 딸은 가고 없는데 딸이 매달 어김없이 보내는 용돈 입금 문자가 오네…"라며 "사랑한다는 말도 못 해주고 멀리 떠나보내 미안해"라고 인사를 전했습니다.
아빠는 "사랑하는 우리 아들, 며느리. 짧은 기간에 참 많은 행복 주어 정말 고맙다. 정말로 사랑했다"는 말과 함께 마음속으로나마 자식들을 배웅했습니다.
혹여라도 남은 가족이 걱정돼 하늘에서도 편치 않을까 '걱정하지 말라'는 말도 잊지 않았습니다.
사랑을 듬뿍 받았던 조카는 "이모의 소중한 보물을 이제는 저희가 옆에서 챙길게요. 편하게 쉬어도 돼"라고 했고, 손주를 누구보다 사랑했던 장인·장모에게 사위는 "제가 잘 키워낼 거니까 편한 곳에서 지켜봐 주세요"라고 적었습니다.
매일 편지를 쓰러 오겠다는 딸은 "아빠랑 오빠 걱정은 하지 마. 내가 잘 챙길게. 대신 아빠 꿈에 한 번만 와서 데이트 해줘"라고 엄마를 다독이며 "평생 내 엄마로 있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