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직장에서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는 '직장 내 괴롭힘 금지법'이 시행된 지 5년을 맞았습니다.
이 법은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 선배들의 괴롭힘을 견디다 못해 숨졌던 신입 간호사 '태움' 사건, 그리고 웹하드 업체 회장이 전 직원을 무차별 폭행한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그럼 5년 동안, 우리 사회는 좀 달라졌는지, 이 법에 한계는 없는지 한 신용평가 회사에서 벌어진 사건을 통해 짚어봤습니다.
먼저 정성진 기자가 보도합니다.
<기자>
지난해 9월 이 신용평가회사에서는 '처절한 반성'을 주제로 워크숍이 열렸습니다.
[반성하는 부분들 위주로 말씀드리면….]
[마케팅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반성하고 있습니다.]
준비 과정에서 한 여직원은 유산했고, 직원 50여 명 앞에서 발표를 앞두고는 결국, 실신했다고 합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 자괴감을 느낀 분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실제로 악몽에 시달리는 분들도 계시고, 정신과에 가셔서 약을 타드시는 분도 계시고….]
익명 게시판에는 공개적인 반성 강요는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비판이 쏟아졌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괴롭힘으로 인정하는 대신, 조직 문화 개선과 사내 문제의 외부 유출 통제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논란이 가라앉지 않자 지난해 12월 노조는 공식 조사를 요청했는데, 노무법인 선임에만 3개월이 걸렸습니다.
법에는 사용자가 '지체 없이' 사실 확인을 해야 한다는 규정뿐, 사건 처리 기한은 없습니다.
그 사이 사측은 화해를 제안했는데,
[A 인사임원 : (노조)위원장님을 직장 내 괴롭힘으로 신고를 누군가 또 했어요. (저하고) 둘이서 손잡고 다 설득해서 화해시키고 끝내고, 그게 아니면 전부 다 법대로….]
압력으로 느끼기에 충분했습니다.
[오화균/C 신용평가회사 노조위원장 : 일종의 협박으로 느꼈습니다. 늑장 대처를 통해서 조사 자체를 형해화하는….]
워크숍 후 10달 만에 회사가 선임한 노무법인은 괴롭힘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지만, 조사 과정이 공정했는지, 판단 근거는 무엇인지, 직원들은 알 수가 없습니다.
법 시행 5년, 근로자의 인격권 보장에 한 발 나아갔다는 평가 이면에 처리의 신속성과 조사의 객관성 등을 담보하지 못하며 피해자들의 울타리가 되는데 한계를 드러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 : 1년 동안 질질 끌면서 제대로 조사가 되는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인데, 사실 매일 두려움 속에 살고 있죠.]
(영상편집 : 전민규, VJ : 정한욱, 디자인 : 박천웅·조성웅)
▶ '부당해고' 복직하자 생긴 일…피해자 "신고 말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