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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가해자의 서사? "우리는 실은 이쪽과 더 가깝지 않니"라는 질문 [스프]

[주즐레] '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마를 보았다

김지혜 주즐레 썸네일 
(SBS 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영화의 첫 장면은 에두아르 마네의 명화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떠오른다. 청명한 하늘 아래, 푸른 잔디밭에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는 한 가족이 있다. OST로 요한 트라우스 2세의 '비엔나 숲 속의 이야기'가 흐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그러나 '풀밭 위의 점심식사'가 단편적 감상을 넘어선 해석을 불러일으켰던 것처럼 목가적인 이 장면에도 보이지 않은 이면이 존재한다.

스프 주즐레 존 오브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1940년대, 아우슈비츠 수용소 옆 관사에 살던 독일 장교 루돌프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영화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남편과 다정한 아내, 토끼 같은 자식들이 아름답게 가꾸어진 집에서 살아가는 일상을 조명한다. 

'쉰들러 리스트', '인생은 아름다워', '쇼아', '피아니스트', '하얀 리본', '사울의 아들' 등 홀로코스트를 소재로 한 영화는 많았다. 가장 최근작이라 할 수 있는 '사울의 아들'이 아우슈비츠에서 벌어진 만행을 피해자의 시선으로 다룬 영화라면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가해자의 관점으로 그렸다.

영국 작가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을 기반으로 하지만 원작의 삼각관계 설정을 빼고 회스 가족 중심의 각색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로 거듭났다.

회스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친위대 중령이자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절멸수용소의 책임자였던 실존 인물이다. 제목인 '존 오브 인터레스트'(독일어로는 'Interessengebiet')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반경 40m 안의 주변 지역을 뜻한다.

영화는 시·청각이 어우러진 종합 예술이다.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 혹은 무엇을 보여주지 않을 것인가는 감독의 선택이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관찰과 배제의 대비를 통해 메시지를 강화한다. 보여주는 것과 보여주지 않는 것의 경계는 명확하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회스의 사택과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공존하지만 전자는 보여주고, 후자는 보여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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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담장 안쪽에 위치한 회스의 사택과 가족의 일상을 관찰하듯 담는다. 대부분의 장면은 와이드 렌즈를 사용해 광각으로 담았다. 의도적인 거리 두기다. 회스 가족의 일상을 담기 위해 촬영 공간에 여러 대의 카메라를 숨겨놓은 뒤, 긴 테이크를 이어가는 방식의 촬영을 진행했다. 그 결과 헤트비히가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루돌프는 소각로 기술자들과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수용소의 나치 친위대 장교들이 마당에 모여들고, 가정부들이 분주히 왔다 갔다 하는 모든 상황을 동시에 촬영됐다. 클로즈업은 인물이 아닌 꽃과 나무 등 사물에 집중돼 있다. 

영화가 그리는 회스는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이 아니라 가족을 사랑하고 자신의 일에 열정적인 평범한 사람이다. 회스의 아내 헤트비히도 집의 안과 밖을 예쁘게 꾸미고 아이들을 사랑하는 평범한 주부로 등장한다. 야만의 세계로부터 차단된 채 살아가는 아이들은 천진난만하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을 뒷받침하는 설정과 인물묘사다. 악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타인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는 주장을 회스 가족을 통해 구체화한다.

담장 너머의 공간은 분명 존재하나 의도적으로 배제됐다. 하늘로 치솟은 굴뚝에서 끊임없이 연기가 피어오르는 광경만이 보여진다. 미지의 공간에 대한 불길한 의심은 아우성과 총성, 기계음이라는 께름칙한 청각적 사운드가 쌓이며 점차 확신으로 변한다.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굉음보다 공포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하는 회스의 가족들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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