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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SBS 주차장에도 오물풍선…북한산 '려명' 꽁초도

북한 대남 오물풍선 낙하 0215

1일 밤 10시쯤 야근을 서는 당직 근무를 하던 중 불청객을 만났습니다. 그렇습니다. 북한이 날려 보낸 이른바 대남 오물풍선입니다. SBS 목동 사옥 주차장에서 갑자기 '퍽'하는 소리가 크게 났다는 사내 제보를 듣고 현장을 확인하러 나갔습니다. 합동참모본부에서 불과 1시간 전쯤 북한이 사흘 만에 대남 오물풍선을 다시 살포하기 시작했다고 공지한 상황이었습니다. 서울과 경기 일대에서 오물 풍선의 흔적이 발견되고 있는 와중이었습니다.

주차장에는 북한이 날려 보낸 흰색 대형 풍선은 없었고, 30cm 정도 너비의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습니다. 풍선은 날아가고 쓰레기만 투척된 것으로 보였습니다. 내용물이 너저분하게 흐트러져 있어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내용물들은 말 그대로 쓰레기였습니다. 

사각형 모양으로 잘린 흰 종이와 박스를 뜯어 놓은 듯한 골판지 종이 조각, 실 뭉텅이와 천 조각, 찌그러진 플라스틱 병 등입니다. 풍선에 날려 보내기 위해서였는지 대체로 무게가 그리 많이 나가지는 않는 것들을 모아 놓은 듯 보였습니다. 좀 더 살펴보니 '38번 앞'이라고 적혀 있는 종이 조각, 담배 꽁초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담배꽁초에는 '려명'이라는 글자가 찍혀 있었는데, 북한에는 실제로 '려명'이라는 이름을 가진 담배 제품이 있습니다. 주로 간부들이 많이 애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양에도 '려명' 명칭을 딴 거리가 존재하는데, 결국 이 꽁초가 북한발 쓰레기임을 확인해주는 단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지난달 28~29일 북한이 날려 보낸 오물 풍선이 경남까지 날라갔다고 하니 서울 목동 사옥 주차장에 떨어진 것은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 인근에서 또 다른 쓰레기 더미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북한 대남 오물풍선 낙하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를 처음 예고한 것은 지난달 26일 김강일 국방성 부상 명의로 나온 담화였습니다. 김 부상은 "수많은 휴지장과 오물짝들이 곧 한국 국경지역과 종심 지역에서 살포 될 것이며 이를 수거하는데 얼마만한 공력이 드는가를 직접 체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후 실제로 풍선을 날려 보냈고, 29일에는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조만간 다시 또 살포하겠다는 뜻을 드러냈습니다. 김여정은 "우리가 저들이 늘상 하던 일을 좀 해보았는데 왜 불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야단을 떠는지 모를 일"이라며 "진정어린 '성의의 선물'로 정히 여기고 계속 계속 주워 담야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계속을 두 번이나 힘주어 말 한 것은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려 한 것일까요. 김여정은 일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에 "몇 십배로 건 당 대응할 것임을 분명히 한다"고도 덧붙였습니다. 민간이 별도의 활동을 할 수 없는 북한에서는 당연한 말이겠지만 북한의 대남 오물 전단 살포는 북한 당국과 군부의 지휘 아래 이뤄지고 있습니다. 자른 종이를 모으고, 플라스틱 병의 포장을 뜯고 찌그러 뜨리고, 실 뭉치를 모아 한 뭉텅이로 만들고, 이를 다시 풍선에 묶는 작업들은 주로 북한의 군인들이 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SBS에 떨어진 쓰레기는 회사 경비팀의 신고로 경찰과 소방에 의해 1차로 접수됐습니다. 폴리스 라인이 쳐졌고, 관할 경찰서의 경찰관과 소방차, 소방관들이 출동했습니다. 이후 경찰과 소방이 군부대 수거를 상의하는 현장을 지켜볼 수 있었습니다. 대남오물 풍선에 현재까지는 유독성 물질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남북 간 체제 경쟁은 사실상 끝난 상황에서 북한 역시 이번에는 대남 전단을 날려 보내지 않았습니다.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북한 역시 잘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일 겁니다.

북한의 지금 대응은 말그대로 우리를 귀찮고 성가시고 피로하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김여정은 "오물짝을 주으면서 그것이 얼마나 기분 더럽고 피곤한가를 체험"하게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성가시고 피곤한 일입니다. 공권력이 낭비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것은 분명합니다. 국제사회에서 이미 하나의 국가로 존재하는 북한이 자신들의 공권력을 동원해 다른 나라(북한의 주장대로 라면 적대적 관계의 2국가 관계)로 '쓰레기'를 날려 보내는 현상은 북한 스스로의 위신을 깎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는 점입니다. 한 때는 정상국가를 지향하고 있다는 평가를 전문가들에게 받았던 북한이 '퇴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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