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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든 세 번 웃었습니다!"…원작자 측도 놀랄 정도로 웃게 만든 이 연극 [스프]

[커튼콜+] 연극 <웃음의 대학> - "무거운 철근도 가벼운 척"

웃음의 대학 웃음의 대학 
'웃음의 대학' 들어보셨나요? 무슨 대학이냐고요? '웃음의 대학'은 학교가 아니라 극단 이름입니다. 같은 이름의 연극에 등장하는 극단 이름이죠. 오늘은 연극 '웃음의 대학'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연극 '웃음의 대학'이 2015년 공연 이후 9년 만에 돌아와 공연되고 있거든요.

이 연극의 등장인물은 단 두 명입니다. 전시 상황이라는 이유로 웃음을 선사하는 희극 작품을 없애려는 냉정한 검열관, 그리고 어떻게든 관객을 웃기고 싶은 극단 '웃음의 대학' 전속 작가입니다. 작가는 공연 허가를 받기 위해 검열관 사무실에 날마다 찾아오고, 허가를 내주지 않으려는 검열관은 계속 무리한 수정 요구를 합니다. 이런 식이죠.

"내일 아침까지 이 작품의 설정을 '로미오와 줄리엣'이 아니라 '햄릿'으로 바꿔주시기 바랍니다."
"대본에 '천황 폐하 만세'를 세 번 넣어주십시오."

아니, 도대체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그런데도 포기를 모르는 작가는 검열관의 요구에 따라 대본을 고치고 또 고칩니다. 이 과정에서 공연 대본은 기상천외한 재미를 새롭게 더해가고, 검열관도 어느새 작가와 함께 더 재미있는 대본을 만들기 위한 작업에 열중하게 됩니다.

'쓸데없이 남의 인생을 대신 사는 연극'은 본 적이 없고, 공연을 아예 모조리 금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웃지 않으면 용기가 안 생기는 사람은 패배자'라고 여기며, 스스로도 '한 번도 웃은 적이 없다'던 검열관이 점점 변화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게 이 연극의 묘미입니다.
 
웃음의 대학 
'웃음의 대학'의 작가는 영화 '웰컴 미스터 맥도날드' 등 영화와 드라마 감독으로도 알려진 일본의 유명 극작가 미타니 고키입니다. 미타니 고키는 연극 '웃음의 대학' 외에도 '너와 함께라면' '술과 눈물과 지킬앤하이드', 뮤지컬 '오케피', 영화 '매직 아워' '멋진 악몽' 등 '고키 표 코미디'로 한국에도 팬이 많습니다.

'웃음의 대학'은 1996년 일본 초연 이후 각종 연극상을 휩쓸었고, 한국에서는 2008년 초연 이후 2015년 공연까지, 관객 35만 명이 본 화제작입니다. 송영창, 황정민이 초연 멤버였고, 이후에도 실력파 배우들이 여럿 거쳐갔죠. 이번 공연은 검열관 역에 배우 송승환, 서현철, 작가 역에 주민진과 신주협이 출연하고 있습니다.

송승환은 59년 경력 배우이자 '난타' 제작자로 잘 알려져 있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개폐막식 감독을 맡았던 그는 올림픽이 끝나고, 황반변성과 망막색소변성증으로 시각장애 4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상대 배우의 형체만 흐릿하게 보일 뿐, 눈 코 입이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시력이 약해졌지만, 지금도 연극 무대에 서고 있습니다. 대본은 음성으로 듣고 외우고, 상대 배우와 주고받는 연기나 동선은 철저한 리허설로 소화합니다. 그는 대본을 보고 먼저 제작사에 연락했을 정도로 검열관 역을 하고 싶었다고 하는데요, 코미디 연기도 굉장히 잘 어울립니다.

서현철은 2015년 공연에서도 검열관 역을 맡았었고, '너와 함께라면' 등 미타니 고키의 다른 작품에도 출연했던 베테랑 배우입니다. 라디오스타 같은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재치 있는 입담으로 유명세를 얻기도 했는데요,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에도 출연해 흥미진진한 연극 이야기를 풀어놓고 갔습니다. (*커튼콜 서현철 편 팟캐스트( 골라듣는뉴스룸 커튼콜)는 6월 3일, 유튜브 영상( 김수현 문화전문기자의 커튼콜)은 6월 5일 공개될 예정입니다.)
 
웃음의 대학 
'웃음의 대학'은 정말 재미있는 코미디이지만, 진지하게 생각할 만한 대목도 많습니다. 배경은 1940년대 일본 도쿄 연극의 중심지였던 아사쿠사입니다. 아사쿠사에서 활동했던 키우야 사카에라는 작가가 '웃음의 대학' 속 작가의 직접적인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키우야 사카에는 당시 일본의 '희극왕'이라고 불린 에노모토 켄이치가 만든 극단 '에노켄' 전속 작가로 활동하며 탄탄한 극본으로 '에노켄'의 인기를 뒷받침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35살의 나이에 군에 징집돼 중국 허베이성 전투에서 총상을 입고 사망했습니다.

인간의 웃음조차 검열하려 했던 시대, 제국주의 국가의 전쟁에 동원되는 개인의 비극이 웃음 뒤편에 서려 있습니다. 이 공연 연출을 맡은 표상아는 '웃음의 대학'이 '인류의 근대사에서 가장 끔찍한 결과를 낳았던 전체주의를 웃음으로 겨냥하며 골계미를 드러낸다'고 말했습니다. 이 연극은 '무거운 철근을 가벼운 척 들고', 구조적 아이러니와 패러독스를 만들어냅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을 놓지 않습니다. 연출가의 말을 좀 더 들어볼까요.

"결국 국가주의를 지키고 믿는 것 또한 인간이고, 그런 인간도 자신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삶을 돌아보는 인간으로 변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이 일을 연극과 웃음이 얼마나 잘 해내는지에 대한 믿음이 이 대본에 구석구석 심겨 있다. 이 어려운 이야기를 무척 의연하고 태연하게 해낸다."

저는 웃음의 힘을 보여주는 이 작품이 한편으로는 연극에 대한 연극, 연극에 대한 찬사로도 느껴졌습니다. 작가와 검열관은 대립하는 위치에 있지만, 함께 연극을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작가는 어떻게 대본에 열정을 쏟을 수 있는지, 연극 따위는 필요 없다던 검열관이 어떻게 더 재미있는 연극을 만들기 위해 몰입하게 되는지, 국가권력의 집행자인 검열관이 어떻게 반대편에 서 있는 작가와 인간적인 교류를 하게 되는지, 이게 모두 연극의 가치, 더 나아가서는 공연예술의 가치를 보여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한참 웃다가도 찡해졌던 게 이 때문이었나 봅니다.
 
뮤지컬 '일 테노레 (IL TENORE)' 
연극을 보면서 불현듯 창작 뮤지컬 '일 테노레'도 생각났습니다. ('일 테노레' 스프 칼럼 보기) 두 작품은 캐릭터도 한국인과 일본인, 공간적 배경도 경성과 도쿄로 다른데, 왜 그랬을까요. 곰곰 생각해 보니 시대적 배경이 비슷했고, '검열' '공연' '예술가'라는 공통의 키워드가 있더라고요.

두 작품 모두 공연예술을 '검열'하려는 일본 제국주의 권력에 맞서, 검열을 어떻게든 뚫고 공연을 올리려는 사람들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무대 위에 '작고 완벽한 세상'을 창조하고, 이를 통해 현실을 다시 바라보게 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게 하고,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공연예술의 힘을 보여줍니다.

저는 또 우디 앨런 감독의 영화 '브로드웨이를 쏴라'도 연상하게 되었어요. 블랙 코미디인 이 영화에는 암흑가 보스의 애인인 여배우 경호원으로 투입됐다가, 연극 만드는 일에 푹 빠져 자신의 원래 직무를 잊는 깡패 치치라는 인물이 등장합니다. 자신의 아이디어가 들어간 연극에 애착을 갖게 된 치치는 좋은 연극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증오하게 되죠. '웃음의 대학'의 검열관과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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