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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콜드플레이가 500만 그루의 나무를 심은 이유

[커튼콜+]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아티스트의 자세


먼저 '가을'을 노래한 시 한 수 읽어보겠습니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농부들의 기쁨은 사라져 간다.
수확이 줄어들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더 이상 춤추지도, 노래하지도 않는다.
걱정에 찬 농부들의 마음은
바쿠스의 술로도 위안이 되지 않는다.
그들은 안절부절못하며 편치 않은 잠으로 물러간다.

침울해진 농부들은 침묵으로 노래를 끝내고
찌는 듯한 공기는 어떤 위로도 안식도 주지 않는다.
언젠가는 휴식의 시간이었던 계절이 바뀌고
강력한 태풍이 다가오며 불확실함만이 커진다.
고요한 잠은 이제 먼 옛날의 이야기,
대신 태풍의 경고와 불안한 기대가 이 밤을 채운다….

 

2050년, 우울한 가을

스프 커튼콜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가을을 풍성한 수확의 계절이 아니라, 어둡고 음울한 계절로 그렸습니다. 이 시는 2050년 대전의 가을을 노래한 시입니다. 도대체 이 시를 쓴 이는 누구일까요? ChatGPT-4입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ChatGPT-4와 카이스트 연구팀이라고 해야겠네요.

사실 '원본'이 된 시는 따로 있습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클래식으로 손꼽히는 비발디의 '사계' 중 가을에 붙어있는 소네트입니다. 비발디의 '사계'는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묘사한 네 곡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 곡마다 작가를 알 수 없는(비발디가 직접 썼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짧은 소네트(시)를 붙여 곡의 내용을 설명합니다. 원래의 시는 이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춤과 노래로 풍요로운 수확의 즐거움을 축하한다.
술과 더불어 충분히 즐기고, 마을 사람들이 잠이 들면서 축제는 끝난다.

사람들의 춤이 끝나고 노래도 그친 뒤의 조용하고 싱그러운 가을밤,
즐거운 하루를 보낸 마을 사람들은 깊은 단잠에 빠져 있다….


카이스트 연구팀은 ChatGPT-4에 원래의 시와 함께 2050년의 대전 기후변화 예측 데이터를 입력하고 2050년 대전의 가을을 노래하는 시를 새롭게 쓰도록 했습니다. 이 시는 ChatGPT-4가 한 번에 쫙 읊어낸 게 아니라, 연구팀의 피드백을 통해 수정하고, 다시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 오랜 과정을 거쳐 완성됐는데요, 이 시는 '사계 2050-대전'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1725년 발표된 비발디의 '사계'는 친숙한 클래식 곡이죠. 이탈리아의 자연과 사계절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네 곡으로 구성돼 있고, 각 곡은 세 악장씩으로 이뤄져 있는 바이올린 협주곡입니다. 그런데 작곡가 비발디가 만약 현대인이고, 이 시대의 '사계'를 작곡했다면 어떤 모습이 됐을까요?
 

마샬 제도의 '사계 2050', 침묵을 연주하다

스프 커튼콜+
'사계 2050' 프로젝트 (해외에서는 불확실한 사계 Uncertain Four Seasons 프로젝트로 불립니다)는 이런 생각에서 출발했습니다. 기후 변화 데이터를 반영해 새롭게 편곡한 '사계'를 연주하며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자는 취지로 2021년에 디자인 기업 아카(AKQA)가 전 세계 예술가, 과학자들과 함께 시작한 글로벌 프로젝트입니다. (▶ 사계 2050 - 서울 버전 소개 영상 보러 가기)

2050년의 기후 예측 데이터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제공하는 기후변화 시나리오 중에서, 온실가스 배출이 줄지 않고 현재 추세대로 계속되는 상황을 가정한 시나리오를 적용해 산출합니다. 이렇게 나온 기후 데이터들을 입력하면 음악적인 요소들로 변환시켜 주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인공 지능이 비발디의 원곡을 편곡하도록 하는 겁니다. 하지만 100퍼센트 AI 편곡이라 할 수는 없고, 작곡가의 선택과 집중, 수정 작업이 개입됩니다.

사계 2050은 지금까지 6개 대륙 14개 도시에서 공연됐는데요, 각 지역마다 기후 예측 데이터가 약간씩 다르기 때문에 편곡도 조금씩 다르지만, 원래보다 음울하고 어두운 느낌으로 바뀐다는 점은 같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형태는 마샬 제도 버전입니다. 태평양 중부 섬나라 마샬 제도 버전의 '사계 2050'에는 침묵이 '연주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2050년 이 나라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겨 없어지게 되니까요. (▶ 사계 2050-마샬 제도 버전 들으러 가기 (침묵 연주는 26분 20초부터))
 

인간과 AI 협업으로 그린 2050 대전의 사계

스프 커튼콜+
사계 2050은 한국에선 서울의 데이터를 반영해 해외 연구팀이 편곡한 버전으로 2021년 처음 공연됐는데요, 9월 22일 카이스트가 참여해 새롭게 편곡한 사계 2050-대전 버전이 새롭게 공개됐습니다. 이번 대전 버전은 가장 최신의 기후변화 예측 시나리오를 적용해 나온 데이터를 활용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2050년 대전에서는 1년 중 절반에 가까운 161. 5일 동안 여름이 지속됩니다. 일 최고기온은 현재의 37.1도에서 39.5도로 높아지고, 폭염 일수도 28.9일에서 47. 5일로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측됐습니다.

카이스트 문화기술대학원 연구팀(방하연, 김용현, 남궁민상, 작곡가 장지현)은 기온, 강수량, 대기 정체, 폭염 및 한파, 계절 길이 등 직접적인 기후 요소 예측값과 함께 종 다양성, 동식물 서식지, 농산물 생산량, 해충 활동 범위, 불쾌지수 등 다양한 데이터들을 음정이나 템포 등 음악적 요소로 변환시키는 알고리즘을 직접 만들어 편곡 작업에 활용했습니다. 역시 100퍼센트 AI 편곡이 아니라 작곡가들도 참여해 인간과 인공지능의 협업으로 완성되었습니다.

이번 대전 버전은 앞서 소개한 ChatGPT-4가 재창작한 소네트를 새로운 음원과 영상을 만드는 데 활용한 것이 특징인데요, 텍스트를 입력하면 이에 맞는 오디오 파일을 생성해 내는 인공지능 모델 뮤직젠(MusicGen)으로 새로운 음원을 만들어 내고, 이를 곡에 삽입해 오케스트라와 전자 음향이 중첩된 복잡한 소리로 기후변화로 인한 혼란스러운 느낌을 더했습니다. 또 소네트의 느낌을 구현하는 영상을 생성해 공연의 배경 화면으로 썼습니다.

이렇게 새로 쓰인 곡에서는 생물 다양성이 감소해 봄의 새소리를 표현한 부분이 줄었고, 기후변화로 길어진 여름은 원곡보다 길이를 늘여 훨씬 느린 호흡으로 진행됩니다. 다만 폭풍우를 표현한 악장은 훨씬 강렬하고 급박한 느낌으로 편곡됐습니다. 가을은 뮤직젠으로 생성한 전자 음원을 삽입해 기후 위기로 인한 혼란과 불안을 더 실감 나게 표현합니다. 겨울은 짧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곡의 길이를 줄이는 동시에, 옥타브를 빠르고 급격하게 넘나드는 편곡으로 잦은 빈도로 반복되는 극심한 추위를 묘사했습니다.

▶ 비발디 사계 원곡 버전


▶ 사계 2050-대전 버전
 

지구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 지금 행동해야!

저는 서울 버전 초연도 봤습니다만, 이번 대전 버전에서 더욱 실감 나게 기후 위기의 위험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ChatGPT-4가 다시 쓴 소네트만 봐도 2050년의 사계를 상상할 수 있었는데,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곡의 느낌도 딱 그랬습니다. '사계 2050-대전'은 불안과 혼란, 우울함으로 가득한 현대음악처럼 들렸는데요, 음악으로 쓰인 '기후 위기 보고서'를 듣는 느낌이라고 할까요. 이 보고서는 그 어떤 숫자보다도 더 직접적으로 위기의 '감각'을 일깨웠습니다.

스프 커튼콜+
공연은 먼저 '사계 2050' 대전 버전을 연주하고 나서 비발디의 원곡 '사계'를 연주했는데요, '사계 2050' 한국 초연 때부터 예술감독을 쭉 해온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씨는 '사계 2050으로 우울해진 마음을 추스르고 가시라고' 비발디의 원곡을 나중에 연주한다며 웃었습니다.

사실 사계 2050은 '현재와 같은 수준의 탄소 배출이 계속된다면'이라는 가정하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행동에 나서지 않고 이대로 가면' 이렇게 우울한 사계를 맞게 되지만, 지금부터 탄소 배출을 줄여나간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러니 1부에 '사계 2050'을, 2부에 원래의 '사계'를 연주하는 건 '어두운 미래의 예고편에 자포자기하지 말고, 지금이라도 원래의 '사계'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면 된다'는 밝은 희망의 메시지를 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초반에는 굉장히 충격을 많이 받으시는 것 같아요. 비발디의 '사계'라는 음악에 이미 친숙한 상태에서 2050 버전을 들려줬을 때 충격이 크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다양하기 때문에, 일단은 어떤 방식으로든 굉장히 충격적이고 불편한 감상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음악은 미학적이거나 음악의 아름다움을 탐구한다기보다는, 환경이라는 주제를 데이터베이스로 풀어낸 프로젝트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생소하게 느껴질 거예요. 조금 생소하고 불편하더라도 이 생소함이 가져다주는 메시지에 대해,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좀 생각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요.

- 임지영 예술감독/바이올리니스트


스프 커튼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으로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예술감독 임지영 씨 외에도 서울시향의 부악장 웨인 린을 비롯해 국내 주요 교향악단에서 활동 중인 음악가들이 2021년 이후 한국의 사계 2050 프로젝트 오케스트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웨인 린은 '처음 이 음악을 들었을 때 무섭고 슬펐다, 두 아이의 아버지로서 지구의 미래가 걱정스러웠다'고 이 프로젝트에 참가한 이유를 밝힌 바 있습니다.

AI와 인간의 협업으로 새로 쓴 2050년의 '사계'는 기후 위기에 대한 예술계의 대응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기후변화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내용을 담은 공연을 통해, 기후 위기에 대응해 함께 행동하자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후 위기에 대응하는 예술가의 자세에는 또 다른 종류가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할 콜드플레이의 월드투어가 한 사례입니다.
 

콜드플레이가 월드투어를 중단했던 이유

영국의 인기 밴드 콜드플레이는 2021년 발표한 정규 9집 '뮤직 오브 더 스피어스(Music of the Spheres)' 월드투어를 한창 진행 중입니다. 콜드플레이는 공연을 진행하는 방식 자체를 친환경적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콜드플레이의 월드 투어는 2016-2017년 '헤드 풀 오브 드림즈(Head Full of Dreams)' 투어 이후 5년 만에 재개된 겁니다. 콜드플레이가 오랫동안 월드투어를 하지 않은 건 코로나19 때문이라기보다는, 지난 2019년 콜드플레이 스스로 월드투어를 당분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입니다.

콜드플레이는 8집 앨범인 '에브리데이 라이프(Everyday Life)'를 내고 월드투어를 하지 않았습니다. 거액의 공연 수입을 포기한 셈인데요, 왜 그랬을까요? 대규모 공연이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입니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은 2019년 당시 '지속 가능하고 환경에 도움이 되는 공연을 할 방법을 찾을 때까지' 투어를 중단한다고 밝혔습니다.

출처: 콜드플레이 공식 SNS
실제로 팝스타의 대규모 투어는 공연 인력 이동과 화물 운송, 한 번에 수만 명에 이르는 관객의 이동과 집결, 무대 설치와 공연 진행 과정에서 어마어마한 규모의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콜드플레이의 2016~2017년 투어는 직원 109명, 트럭 32대, 운전기사 9명을 대동하고, 5개 대륙을 이동해 540만 명의 관객 앞에서 112번의 공연을 진행했습니다. 이 투어의 *탄소발자국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찾기 힘들지만, 영국의 틴들 기후변화 연구센터에 따르면, 라이브 콘서트는 영국 내에서만 매년 40만 5000톤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 관련 기사 보러 가기)

아일랜드의 인기 록밴드 U2는 2009년 월드투어에서 엄청난 규모의 360도 무대를 선보였는데, 이 무대 이동에만 무려 트럭 120대가 필요했습니다. U2의 투어에서 발생한 탄소량이 화성을 왕복할 때 발생하는 탄소량과 같았다는 환경단체의 주장이 나오기도 했죠. 공연의 완성도와 연출력에 대한 경탄과는 별개로, 대규모 콘서트가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비판 여론이 형성됐습니다. (▶ 관련 기사 보러 가기)

*탄소 발자국(Carbon Footprints) : 제품 및 서비스의 원료 채취, 생산, 수송·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온실가스)가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을 계량적으로 나타낸 지표.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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