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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치료받지 않는 정신질환자,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밤의 해바라기] 5년 간 멈췄던 가족의 삶…가족이 다 떠안는 정신질환자의 인권

스프 밤의 해바라기
그가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을 때 나는 알아보지 못했다. 식당 불빛이 어둡다고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지 못한 적은 없었는데, 그야말로 반쪽이 되어버린 그의 얼굴은 눈썰미 좋은 나를 당황케 했다. 그리고 그것은 그가 현재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겪고 있다는 신호였다.

"저만 그런 게 아니에요. 가족 모두 반쪽이 됐어요. 저희 가족의 삶은 5년 정도 멈췄습니다. 단 한 사람 때문에. 가족 네 명이 진정시켜도 프라이팬을 던질 때면 속수무책이지요. 약만 잘 먹으면 천사 같은 아이였는데…"

그의 동생은 10년 전 조현병을 진단받았다. 진단까지의 과정도 쉽지 않았지만, 치료받게 하는 것은 더 까다로웠다. 환자 스스로는 정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멀리 떨어진 아버지를 수소문해 모셔와 어머니와 함께 입원 수속을 밟아야 했다. 어느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고, 가족이 묵묵히 감내해 냈다.

"입원 치료를 받고 퇴원 후에는 예전 천사 모습으로 되돌아갔어요. 그런데, 집에 와서는 약을 먹지 않으려고 해요. 이게 우리 가족 위기의 시작이었어요."

약을 먹지 않은 이유는 너무 쓰기 때문이다. 밥, 김치찌개, 주스 등 평소 좋아하던 음식에 넣어도 대번에 알아보고 물리친다. 얼마나 쓰길래 저럴까, 한 번은 약을 탄 주스를 혀에 대봤더니 도저히 속여서 먹일 수 없는 정도였다. 병원에서는 의료진의 권위에 눌려 약을 잘 복용했지만 집에서 가족의 힘만으로는 역부족이다. 목마르지 않은 사자에게 물을 먹이는 것처럼 부담스럽고 어려웠다. 복용하는 약의 양이 줄면 시계를 맞춰놓은 것처럼 일주일 후 망상적인 행동이 시작됐다.

"동생이 커피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자신을 감시하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며, 똑똑히 얼굴을 기억해 두었다며 부르르 떨어요. 아차 싶었습니다. 우리 가족이 막지 않으면 제 동생도 뉴스에 나올 수 있겠구나."

문제는 증세가 악화할수록 약을 더 먹지 않으려 하고, 그럴수록 증세는 더 악한 악순환의 고리가 단단하게 얽혀 있다는 것이다. 문을 닫는 소리에도 언니에게 화를 내고, 가스 불을 켜는 소리에도 엄마에게 소리를 지른다. 천사 같은 아이로 되돌리려면 약을 먹여야 하고 그러려면 적어도 병원까지 데리고 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었다.

"가족에게 흉기까지 휘둘렀지만 병원에 데리고 갈 수가 없었어요. 119와 112가 왔을 때 동생은 강제로 입원하지 않기 위한 언행들을 정확히 알고 있거든요. 흉기를 꺼낸 적이 없고, 약을 잘 먹고 있으며 가족들과 말다툼이 있었을 뿐이라고 말합니다.

정부가 마련해 놓은 행정 입원, 응급 입원 등의 대책은 폭력 사고가 실제로 발생해야만 가능한 일이더라고요. 119와 112가 가고 나면 네 명의 가족 모두 각자의 생계를 중단하고 순서를 정해 불침번을 서며 동생을 24시간 감시해야 합니다."
 

독이 된 2017년 정신건강복지법

2017년 정부는 정신질환자의 인권을 높이겠다며 법을 만들었다. 정신건강복지법, 정신질환자를 병원에 강제 입원시키지 않고, 사회에서 치료하겠다는 취지였다. 정신질환자의 가족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서로 짜고 환자를 강제 입원시킨 사례를 들며 이 법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환자가 입원을 원하지 않을 경우 부모 중 1명(부모가 없을 때 직계 가족 1인), 정신과 전문의 1명의 판단으로 치료받게 할 수 있던 것을 각각 2명으로 늘렸다. 정신과 전문의 2명 중에는 국공립병원 소속이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는 황당한 조항도 있었다. 국공립병원 정신과 전문의가 민간병원보다 실력이 뛰어나고 판단이 정확하다는 근거는 여전히 없는데도 예를 들어 세브란스병원에 정신과 응급환자가 생기면 국립의료원이나 서울의료원에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섭외해야 한다.

하지만 정신과 응급 상황은 다른 병원의 의사가 자신이 하던 일을 다 처리한 후 다른 병원으로 이동하는 시간을 줄 만큼 한가하지 않다. 가족 2명을 모이게 하는 것도 정신질환자의 열악한 가족 구조에서는 쉽지 않다. 2019년 진주 안인득 사건은 정신건강복지법의 대표적인 부작용으로 꼽힌다. 안인득은 자신이 사는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불을 피해 나오는 주민에게 흉기를 휘둘러 5명을 숨지게 하고 17명을 다치게 했다.

돌이켜봤더니 범행 전 안인득에게는 심각한 조현병 증세가 나타났고 막을 치료할 기회가 있었다. 이웃 사람들이 어렵게 수소문해서 직계 가족을 찾아 안인득을 병원에 데리고 간 것이다. 하지만 정신건강복지법이 발목을 붙잡았다. 안인득은 입원을 원하지 않았는데 동행한 보호자는 단 1명뿐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안인득의 사례에만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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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 통계를 보면 전국 교정시설 내 정신질환자는 2012년 2천880명, 전체 11.9%였는데, 2019년에는 4천748명, 19.1%로 크게 늘었다. 2017년 전후 10년 동안 대학병원 정신과 보호 병동은 18% 감소했고 정신질환자들이 병원에서 치료받는 기간은 60일에서 41일로, 월평균 응급실 방문 횟수도 12회에서 6회로 크게 줄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해도 2017년 정신건강보건법 이후 정신질환자의 병원 치료는 줄고, 범죄를 저질러 교정시설에 가는 사례가 늘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정신질환자의 인권이 오히려 추락했다는 것인데, 당시 현장의 전문가들은 그것을 예상하고 우려했다. 정신질환자를 사회에서 치료하려면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전혀 준비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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