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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부동의 시청률 1위 앵커를 하루아침에 해고한 미국 방송사

By 브라이언 스텔터 (뉴욕타임스 칼럼)

스프 NYT (뉴욕타임스) (사진=게티이미지코리아)
 

*브라이언 스텔터는 뉴욕타임스와 CNN에서 언론 담당 기자로 일했다. 책 “거짓말하는 방송국(Network of Lies.)” 출간을 앞두고 있다.
 

지난주 폭스 뉴스(Fox News)의 터커 칼슨(Tucker Carlson)과 CNN의 돈 레몬(Don Lemon)이 나란히, 급작스레 해고됐다. 두 간판 앵커의 해고는 수년째 내가 씨름해 온 생각을 더 공고히 굳혀줬다.

시청자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길 기회도 없이 해고되는 바람에 그의 고별 방송이 된 지난 4월 21일 자 뉴스 “터커 칼슨 투나잇”은 260만 명이 시청했다. 터커 칼슨 뉴스를 보려고 미국 동부시각 저녁 8시에 미국 성인 인구의 1%가 TV 앞에 앉았다는 말이다. 1%는 그렇게 크지 않은 숫자로 보이지만, 칼슨의 해고 사실이 알려진 월요일, 이 소식은 곧바로 톱뉴스가 됐다. 케이블 뉴스의 영향력을 정확히 가늠하려면 시청률이 아니라 그 너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 평판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

이는 내가 9년 가까이 CNN에서 일하며 몸소 배운 교훈이기도 하다. 나는 CNN에서 주중 미디어 비평 프로그램 앵커로 일했다. 폭스 뉴스와 터커 칼슨의 급진화, 우경화는 내가 진행하던 프로그램의 단골 소재였다. 8시만 되면 어김없이 TV 앞에 앉아 터커 칼슨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분명 칼슨의 충성스러운 팬이지만, 칼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시청률 집계에 포함되는) 뉴스 시청자 말고도 훨씬 더 많다. 집 대신 동네 식당에서나 바, 아니면 공항 대합실에서 틀어놓은 폭스 뉴스를 보는 사람, TV 대신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으로 터커 칼슨을 보는 사람, 아니면 라디오나 팟캐스트에서 칼슨의 주장을 인용한 이야기를 듣는 사람까지 다 더하면, 터커 칼슨의 시청자는 수천만 명에 이른다.

이 숫자에 다시 폭스 뉴스의 앵커, 뉴스쇼 진행자들을 곱해보면, 루퍼트 머독이 구축한 미디어 제국의 영향력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어렴풋이나마 그려볼 수 있다. 시청률 집계 기관 닐슨(Nielsen)에는 누적 시청자(cumulative viewership)라는 지표가 있다. 많은 사람에게 여전히 생소한 이 수치는 바로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프로그램을 보는 모든 시청자를 더한 것이다. 누적 시청자를 보면, 폭스 뉴스의 올 1/4분기 누적 시청자는 6,300만 명이었다. 폭스 뉴스 경영진은 이 지표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을 것이다. 같은 기간, CNN의 누적 시청자는 6,800만 명으로 폭스 뉴스보다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터커 칼슨이나 돈 레몬 같은 유명 뉴스 진행자의 진짜 영향력을 살펴보기에는 누적 시청자 지표도 부족하다.
 
내가 케이블 뉴스의 종말이 머지않았다는 일각의 예측을 일축할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몇 가지 숫자를 가지고 간단한 계산만 해봐도 알 수 있다. 최근에 다소 줄었다는 CNN의 영업이익이 올해  9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폭스 뉴스의 영업이익은 보통 CNN의 두 배다. 대세가 된 스트리밍 서비스가 제공하는 끝없는 콘텐츠와 험난한 경쟁을 벌이겠지만, 사람들이 리모컨을 들고 ‘오늘은 다른 것 다 제쳐놓고 뉴스에서 무슨 얘기하는지 들어봐야 하는 날’이라고 생각하는 날이 1년에 20~30일만 있어도 케이블 뉴스는 충분히 이익을 내며 방송국을 운영할 수 있다.

어쩌면 케이블 뉴스 채널의 영향력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커졌다고 할 수 있다. 분명 이념적으로 양극화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사실을 두고도 사실상 정반대 이야기를 하는 CNN과 폭스 뉴스가 돈을 버는 방식은 똑같다. 대개 케이블 사업자가 내는 구독료와 광고 수입이다. 케이블 채널 편성표를 보면, 대개 폭스와 CNN은 한데 묶여 있다. 나는 혼자서 두 채널을 동시에 틀어놓거나 실시간 시청률 표를 겹쳐 놓고 보면서 마치 두 뉴스 채널이 동일한 시청자를 두고 경쟁하는 상황을 그려보곤 한다. 물론 사실은 전혀 다르다. 심지어 칼슨과 레몬이 비슷한 이유(업무 환경을 악화하는 비위를 저지른 혐의)로 해고됐지만, 사실 두 앵커는 서로 다른 평행우주에 몸담고 있던 거나 마찬가지다.

폭스 뉴스에도 엄연히 보도국과 기자, 편집인이 있지만, 이 방송국은 사실상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즐겨보는 정치 예능 프로그램에 특화된, 공화당의 기관지 역할을 한다. 폭스에서 ‘불편부당한 뉴스’나 ‘팩트’는 중요한 덕목에 끼지 못한다. 폭스 뉴스 기자들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폭스 뉴스 기자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그들은 칼슨이 시도 때도 없이 방송에 내보내는 음모론이나 편향적인 주장을 소개하는 데 밀려 팩트를 전달하는 뉴스 시간이 자꾸 줄어드는 일, 아무런 근거 없는 거짓말을 바로잡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는 현실을 안타까워한다.) 반면 CNN은 뉴스를 취재하고 검증해 전달하는 보도국의 기본적인 기능을 여전히 갖춘 방송국이다. 폭스 뉴스보다 훨씬 더 큰 비용이 들고 수익이 안 나는데도 전 세계에 지국을 두고 특파원과 기자를 보내 뉴스를 전하는 게 그 증거다.

이 차이는 아주 크다. CNN 간판 뉴스 앵커 중 한 명인 돈 레몬은 유명인이 됐다. 폭스 뉴스의 메인 뉴스를 진행하는 터커 칼슨은 선출되지 않은 공화당의 실질적인 권력자가 됐다. 하원의장 케빈 매카시는 터커 칼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터커 칼슨에게 칭찬받기 위해 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지경이다. 극우 웹사이트, 소셜미디어들이 매일 밤 터커 칼슨이 무슨 말을 할지 애타게 기다리고, 뉴스가 나오는 즉시 이를 열심히 확대, 재생산했다. 이러한 권력은 정확히 측정하기 어렵다. 다만 케이블 뉴스의 진짜 영향력을 가늠할 때 빼놓아선 안 되는 오늘날의 특징이다.

터커 칼슨은 늘 선과 악의 구도로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매일 음모론이나 외국인, 소수자, 약자를 향한 혐오로 가득한 단어를 골라 선동적인 주장을 설파했다. 매일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함으로써 그는 절대적인 권력을 얻었다. 칼슨을 따르는 팬들은 그의 말에 세뇌됐고, 진실에 눈을 감고 귀를 닫아버렸다. 레이건 행정부와 조지 부시 행정부에서 일했던 브루스 바틀렛은 머독이 만들어 낸 방송 기계가 ‘세뇌 작전’을 벌인다고 비판했다. 돈 레몬도 폭스는 더는 뉴스 채널이 아니라며, ‘폭스 선전국’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투표 기계 제조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즈(Dominion Voting Systems)와 폭스 뉴스의 소송 과정에서 세상에 알려진 사실들을 보면, 바틀렛과 레몬의 지적이 크게 틀리지 않아 보인다. 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에 양측은 언론사 명예훼손 소송 사상 가장 비싼 7억 8,750만 달러에 사건을 종결하기로 합의했는데, 이 합의금에도 씁쓸한 역설이 있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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