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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소수를 위한 특별함 아닌 모두의 평범함을 위해"

차이 메우는 기술들…'유리장벽 키오스크' 해결은 과제

시각장애인 유경숙 씨는 5년 넘게 함께 일해 온 동료의 얼굴을 시각보조기구 '릴루미노'를 쓰고 처음 바라봤습니다. 이 기구는 스마트 안경과 앱을 활용해 저시력 장애인의 잔존 시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사물 인식률을 높일 수 있도록 돕습니다. 삼성전자가 7년 동안 연구 개발했는데, 이제 시범적으로 보급하는 단계라고 하네요. '빛을 다시 돌려준다'는 뜻의 릴루미노를 쓰고 경숙 씨가 동료의 표정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순간, 함께 있는 이들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처음 동료의 얼굴을 보게 된 유경숙 씨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너무 놀라고 감동스러웠죠. '저 사람의 얼굴이 저렇게 생겼구나'를 알게 되니까,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나오더라고요. 굉장히 가슴이 설렜어요." 아직까지 릴루미노는 모두 30대가 보급된 정도지만, 유 씨는 이 기술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 더 많은 이들이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설치된 '장벽 없는 키오스크'…'특별함 아닌 최소한의 평범함'

장애인 사용 가능한 키오스크
연간 330만 명이 찾는 국립중앙박물관에는 지난달부터 '장벽 없는 키오스크'가 설치됐습니다. 음성, 터치, 점자키패드, 자동 높낮이 기능이 탑재됐는데, 박물관이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수어 인식' 기능입니다.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는 청각장애인에겐 한글 자막은 제2외국어와 다름없어서 수어 통역이 없으면 제대로 된 정보 습득이 그동안 어려웠습니다. 박물관은 수어 데이터를 수년간 축적해 키오스크에서도 추천 동선과 전시를 안내받을 수 있도록 했습니다. 장애인 관람객뿐 아니라 비장애인 관람객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는 설계 당시부터 애초에 장애인 관람객을 염두에 두고 만들었다는 겁니다. 박물관은 이를 '별도로 분류되는 특별함이 아니라, 최소한의 평범함으로 박물관 곳곳을 자유롭게 누릴 수 있는 기술적 도전'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여전히 이동 자체가 투쟁…키오스크는 또 다른 유리장벽


반가운 변화들이 곳곳에 있지만, 아직까진 갈 길이 멉니다. 여전히 장애인들의 이동 자체가 투쟁인 한국의 현실을 고려할 때, 키오스크는 힘겨운 이동 다음 마주하는 또 하나의 유리장벽이었습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가 전국 1,002곳의 무인정보단말기를 모니터링했더니, 여전히 대부분의 키오스크 기기가 다양한 장애유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제작되어 활용되고 있었습니다. 키오스크 보급률은 빠르게 높아지고 있지만, 장애인이나 고령층의 접근권은 여전히 요원한 겁니다. 기본적인 높낮이 조절이나 시각편의 장치가 없는 기기가 많았고, 기기가 작동하지 않을 경우 연락할 방법 자체가 없다는 응답은 66%나 됐습니다.

심현지 충주장애인자립생활센터장은 이렇게 말합니다. "늘 다수의 의견이 합리화되는 방향으로 선택되면, 상대적으로 소수인 아동, 장애인, 노약자 같은 계층은 배제될 수밖에 없는 거죠. 기계를 애초에 차별적으로 만든 다음 '너희가 맞춰서 사용하라'는 식이 아니라 외국처럼 개발 단계에서 다양한 몸에 대한 의견이 반영되었으면 합니다."

내년부터 공공기관 '차별 없는 키오스크' 의무화…민간 확산은 과제

장애인 키오스크

개정된 장애인차별법에 따라 내년부터 키오스크에 대한 장애인 접근성 보장이 의무화됩니다. 일단 공공기관부터 적용되고, 민간 부문에는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적용됩니다. 바닥면적 50㎡ 미만인 소규모 시설엔 예외 조항이 있어서 우려의 목소리도 큽니다. 기계값 부담이 큰 만큼 소상공인들이 '차별 없는 키오스크'를 선택할 수 있는 지원책도 마련될 필요가 있습니다. 아무쪼록 '어느 한 편으론 소수자'인 우리 모두를 위해, 차이를 메우는 살가운 기술이 곳곳에 더 많아지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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