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에드워드 호퍼전'이 개막한 같은 주에 영화 같은 회화가 아니라 회화 같은 영화가 한편 개봉했다. 영화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때로는 호퍼처럼 현대인의 고독, 특히 이민자들의 고독이 느껴지는 장면을 포착하고 때로는 한 폭의 동양화 같은 풍경을 펼쳐 보인다.
단순히 미장센이 유려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애초에 "라이스보이 슬립스(Riceboy Sleeps)"에 찍힌 이미지들은 '.mov'같은 동영상 파일 기반이 아니다. 16mm 필름으로 찍었기 때문에 필름이 가진 물성과 회화성을 한껏 드러낸다. 그래서 같은 노을이 져도 사진 같다는 느낌보다는 그림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토론토국제영화제(tiff) 플랫폼상(지아장커 감독의 영화 제목에서 따왔다)과 밴쿠버국제영화제 관객상을 비롯해 세계 곳곳의 영화제 또는 영화상에서 27개의 상을 받았다. 그러나 원래 영화상이란 게 받을만한 영화가 여기저기를 휩쓸게 마련이라 상의 개수에는 크게 솔깃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영화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자마자 '이건 요즘 영화의 질감이 아닌데?'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에 와닿는다. 아마도 진심을 다해서 만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이자 배우인 앤소니 심의 자전적인 이야기다. 8살 때 한국을 떠난 그는 자신이 이방인으로서 겪었던 세월과 진심을 코닥사의 16mm 필름에 담아 전달했다.
4K 시대에 16mm 필름으로 찍은 영상을 보는 것은 처음엔 먼지 낀 유리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내다보는 것처럼 답답하지만, 이내 적응이 되면 이런 방식이 90년대라는 시대 배경과 캐릭터의 내면을 되바라지지 않고 부드럽게, 회화적으로 표현해 내기 적합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입자와 질감의 영화다. 그 질감은 필름의 질감인 동시에 정서적 질감이다. 홍상수 감독은 포커스가 나간 장면으로 가득한 신작 "물안에서"와 관련해 "선명한 이미지에 신물이 났다"고 했다는데, 매끈하고 또렷한 픽셀에 질리면 아날로그 느낌의 입자가 그리울 때가 있는 법이다. 앤소니 심 감독은 관객들에게 과거의 사진 앨범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을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특히 "라이스보이 슬립스"에 나오는 두 번의 익스트림 롱 숏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영화의 딱 중간, 그리고 마지막에 한 번씩 등장하는 두 컷의 이 익스트림 롱숏들은 말 그대로 그림이다.
첫 번째 숏은 암 선고를 받은 뒤 고독하고 막막한 소영의 심정을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서 점과 같이 외로운 한 인간의 모습으로 표현했고, 두 번째 숏은 남편의 산소를 성묘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모자(母子)의 모습을 강원도 산속을 화폭에 담은 동양화 속 인물처럼 그려냈다. 이 컷들을 보면서 느낀 먹먹함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또 소영이 같은 한국계 캐나다인으로서 서로 호감을 갖고 있는 사이먼(감독이 직접 연기)과 위로를 주고받으며 조용히 춤을 추는 장면은 에드워드 호퍼의 "밤의 창(1928)", "여름 밤(1947)", "황혼의 집(1935)" 등을 연상시킨다.
크리스토퍼 루의 카메라는 멈추어서 가만히 지켜보다가 서서히 움직이거나, 인물들의 대화 사이를 느릿느릿, 그러나 적당한 템포로 오간다. 약간은 엿보는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정중동의 카메라 워킹. 이것이 이 영화를 다큐와 픽션이 결합한 영화처럼 느끼게 하는 배경이다.
소영 역의 최승윤 배우도 이 영화의 매력 가운데 하나다. "라이스보이 슬립스"는 그녀의 데뷔작이다. 그의 연기는 프로와 아마추어 사이 어딘가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데(연기를 못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녀가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바로 그 점이 오히려 영화의 진정성을 부각시킨다.
무용수인 그녀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힙하게 느껴질 만한 외모를 갖고 있는데, 낯선 땅에서 억척스럽게 살아가야 하는 처지의 엄마와 힙이라는 단어 사이에 느껴지는 약간의 이질감만큼의 신선함이 영화를 보는 내내 눈에 들어왔다.
최승윤 배우는 이 영화 오디션을 보면서 '장편 극 영화를 끌고 갈만한 경험이 없는데 덜컥 오디션에 붙으면 어떡하지?'하고 걱정했다고 한다. 그녀가 극 영화배우에 초보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내내 댄서로만 활동했던 건 아니다.
"저의 배경은 춤이고, 저는 댄서입니다. 저는 몸을 좀 사용할 줄 알고 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알고 있어요. 예를 들어서, 병들고 늙는 것은 나의 움직임("movement" and "posture")에서 오는 것이지 연기("acting")나 목소리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토론토국제영화제 시사 후 관객과의 대화 영상에서 본 것인데 질문은 들리지 않지만 대답으로 유추해 보건대 '어떻게 청소년 아들을 둔 엄마를, 그리고 10여 년의 세월을 거친 모습을 연기할 수 있었느냐는 질문이 있었던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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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과거를 존중한다. 우리가 온 곳을 모르면 갈 곳도 모를 테니까"
지난해 흑인 여성 최초로 미국 화폐(25센트)에 얼굴이 새겨진 미국의 작가이자 배우, 인권 운동가인 마야 안젤루의 말이다. 영화에서 소영의 아들 동현의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한 말이다. 이 선생님은 이 말을 학생들에게 들려주며 각각 자신들의 가계도(家系圖)를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이제 이 영화의 알파요 오메가를 소개할 시간이 되었다. 영화의 엔딩시퀀스. 고국에 있는 남편의 산소에서 마음속의 회한을 실컷 소리치며 털어낸 소영은 아들 동현에게 딱 한마디를 건넨다. "집에 가자."
모자(母子) 마음속의 그 집은, '홈(Home)'은, 아마도 캐나다일 것이다. '온 곳'을 찾아왔던 모자는 다시 '갈 곳'으로 떠난다. 이 장면은 사실 아이러니하다. 멀리 캐나다에서 한국의 산골까지 온 것은 결국 집을 찾아온 것인데, 소영은 다시 집으로 가자고 말하고 있다. 이런 아이러니가 이 영화의 마지막에 깊이를 부여한다.
사람의 정체성은 어느 하나로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소영과 동현이 뼛속까지 한국 사람도, 뼛속까지 캐나다 사람도 아닌 것처럼, 우리는 온전히 서울 사람도, 온전히 지방 사람도 아니다. 그 역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완전히 X세대도, 완전히 MZ세대도 아니다. 나는 완벽히 이쪽 편도, 완벽히 저쪽 편도 아니다.
우리는 다양한 정체성을 갖고 살아간다. 어떤 사람이든 '입체적'이다. 그걸 무시하면서 싸잡아 정체성을 부여하려는 선명한 시도야 말로 헛되고 헛되고 헛된 것이다.
소설가 박완서 선생을 생전에 인터뷰할 때 선생은 말했다. 자신이 "나목(1970)"으로 늦깎이 데뷔를 할 때 한 심사위원으로부터 "신선하지만 자기 경험을 한 번 써먹고 마는 일회적인 작가가 될 것이다"라는 아픈 말을 들었다고. 하지만 박완서 선생이 '그후로도 오랫동안' 얼마나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남겼는지는 독자 여러분이 더 잘 아실 것이다. 이제 막 두 번째 영화를 연출한 앤소니 심 감독 또한 그와 같이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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