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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한국행 번복한 금고지기…김성태의 '아킬레스건'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쌍방울 그룹 비리 의혹이 계속 붙어 다닙니다. 최근 이 대표가 한 유튜브 방송을 통해 "김성태를 본 적도 없다"라며 " (쌍방울과의) 인연이라면 내의를 사 입은 것밖에 없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대표의 주장이 거짓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아닌 걸 아니라고 해명하거나 입증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만약 정말 아니라면 말입니다. 다만, 대장동 개발 특혜 비리 의혹 사건이 한창 불거졌을 때 이 대표가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제1처장을 모른다는 취지로 발언했었던 점에 비춰 보면 이 대표 해명과 주장의 신뢰도에는 의문점이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재명-김성태 직접적 연결 고리 없어"

이재명-김성태

언론이 접할 수 있는 정보가 수사 기관에 비하면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현재까지 드러난 모든 정황을 종합해 볼 때 이재명 대표와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간에는 서로 직접적인 연결 고리는 없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만약 정말 그 연결 고리가 될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면 앞으로, 언젠가는 드러나겠지만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점에 비춰 보면 두 인물의 직접적인 연계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판단됩니다.

이 대표가 김문기 전 처장을 모른다고 했을 때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본부장은 이 대표를 가리켜 "비겁하다"라고 반응했습니다. "천천히 말려 죽이겠다"라고 까지 격한 모습도 보였습니다. 반면, '김성태를 모른다'라는 이 대표의 주장에 대해 아직 팩트로 반박하는 사람이 등장하거나 반박할 만한 정황 증거를 내세우는 사람은 현재까지는 없습니다. 김 전 회장은 자신의 측근들에게 이재명 대표와 인연이 없다는 입장을 수 차례 밝혔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사 기관도 이재명과 김성태가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재명 대표와 김성태 전 회장의 '인물 대 인물 관계'는 수사 본류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최서원(옛 이름 최순실) 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고는 있지만, 엄밀히 아는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삼성 회삿돈이 최 씨 또는 최 씨 측으로 흘러 들어갔습니다. 결국 김성태라는 인물이 인수한 쌍방울 그룹의 자금 흐름이 핵심입니다. 수사팀은 전환사채(CB)의 수상한 흐름과 그 종착지를 규명하는 데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김성태, 먼저 판도라 상자 열지 않을 것"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긴급 여권 발급 수일 내 귀국 예정

결국 '이재명-쌍방울(김성태)' 이슈가 계속 붙어 다니는 이유는 쌍방울 그룹의 수상한 자금 흐름에 해답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게 이재명 대표가 2018년 경기도지사 시절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을 당시, 쌍방울 그룹 측이 이 대표의 변호인 A 씨에게 거액의 수임료를 전달했다는 이른바 '변호사비 대납 의혹' 입니다.

쌍방울 측 자금이 A 씨에게 정말 흘러 들어갔을까요. A 씨를 상대로 이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사건 관련 변호사 비용으로 받은 대가를 직접 물어봤습니다. A 씨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대표로부터 부가세 포함해서 1,210만 원을 받았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면서 "쌍방울이 내 수임료를 왜 내주느냐"라고 반문했습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다소 일반적이지 않고 상식적이지 않은 변호사 수임료"라고 평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이러한 '비상식적인 변호사 수임료'라는 의문점과 '쌍방울의 수상한 자금 흐름'이 남긴 의문점이 맞물려 의혹이 불거졌습니다.

1,210만 원이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A 씨 동료 변호사들이 유사한 사건을 맡았을 때 받는 수임료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금액입니다. A 씨는 취재진에게 "변호사 생활을 하다 보면 정치인과 연예인은 (수임료를) 짜게 주는 편이다"라며 이 대표를 두둔하는 취지의 해명도 덧붙였습니다.

A 씨는 사건 수임료 등 명목으로 현금이 아닌 전환사채(CB)로 20억 원 넘는 대가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거짓말이 과도하게 부풀려진 것"이라며 강하게 부인했습니다. 무성한 의혹과 의구심에도 불구하고 'A 씨가 1,210만 원만 받았을 리 없다', 즉 '쌍방울 측으로부터 1,210만 원 외 금전적 대가를 추가로 받았을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뒷받침할 만한 뚜렷한 증거는 아직 알려진 게 없습니다. 다만, 쌍방울 그룹 측이 A 씨에게 전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자금의 진위 여부에 대해 수원지검 수사팀은 CB가 전달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습니다. 수사팀은 뇌물로 의심되는 자금의 전달 여부를 가려내기 위해서는 김성태 전 회장의 입장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오는 17일이면 수사팀이 김 전 회장의 진술을 직접 들어볼 수 있습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귀국을 결심하며 "밝힐 건 밝히고 아닌 건 아니라고 하겠다"라는 의사를 변호인과 측근들을 통해 귀국 전 언론에 알렸습니다. 김 전 회장은 최근 전북 정읍 출신의 대형 로펌 변호인도 선임하며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이 변호인은 "김성태 전 회장 가족 등의 부탁으로 선임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전 회장 변호인 등의 설명을 들어보면, 김 전 회장이 귀국해도 순순히 말할 가능성은 희박합니다. 법조계 인사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김 전 회장은 우선 이재명 대표와의 연결 고리인 '변호사비 대납 의혹'을 부인할 것으로 예측됩니다. 검찰 수사가 상당 기간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 회장이 의혹을 부인하고 모르쇠 전략으로 일관하면 검찰이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게 상당히 제한적일 수 있는 상황입니다. 검찰이 이번 조사 과정에서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김성태 전 회장을 상대로 정말 딱 떨어지는 '스모킹건'을 내세우지 않는 한, 김 전 회장이 굳이 먼저 판도라의 상자를 열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법조계의 대체적인 전망입니다.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의 경우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안부수 전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졌고 김성태 전 회장이 이들 2명과 공범으로 공소장에 적시됐기 때문에 어느 정도 혐의 입증이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수사 과정에서 쌍방울 그룹과 관계 회사들의 거래 정지 등을 막기 위해서라도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나 횡령·배임 등 혐의에 대해서도 일부 인정할 가능성이 큽니다.

결국, 쌍방울 그룹 관련 각종 의혹의 실체를 밝히려면 그룹 자금 흐름을 잘 아는 '금고지기'의 진술을 듣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의혹 풀 핵심' 금고지기는 한국행을 왜 번복했나

김성태 조력자

이 금고지기의 공식 직함은 알려진 대로 쌍방울 그룹 재경총괄본부장 김 모 씨입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과 김 씨의 관계에 대해 "김 전 회장이 김 씨에게 내밀한 업무를 맡겼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둘 중 한 명만 죽을 수는 없는 사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김 씨는 대북 송금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등과 관련된 자금 전달 작업에 관여된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관여가 아니라 설계에 적극 가담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던 김 씨가 김 전 회장과 비슷한 시기 해외로 도주했는데, 김성태 전 회장보다 먼저 경찰에 붙잡혔습니다. 김 씨는 지난해 12월 초 태국 경찰들에 체포돼 파타야 구치소에 미결수로 구금돼 있습니다. 불법 체류가 아니라고 주장하며 국내 송환을 거부하는 재판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한 달 만에 김성태 전 회장이 붙잡혔습니다.

눈여겨볼 만한 대목은 김 전 회장이 붙잡힌 뒤 관련 소식을 접했던 김 씨의 입장이 바뀌고, 또 바뀌는 점입니다. 한 달가량 국내 송환 거부 재판에 임하던 김 씨는 김 전 회장 체포 소식을 접한 뒤 한국 귀국을 결심했던 것으로 취재 결과 확인됐습니다. 한국 당국과 태국 당국 모두 이러한 사실을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국 귀국을 결심했던 김 씨가 단 며칠 만인 그제(13일), 한국 귀국 의사를 돌연 번복했습니다. 김 씨의 심리적 요인이 아닌, 외부적 영향이 있었던 것으로 수사 당국에서는 파악하고 있습니다. 김 씨가 내적 요인이 아닌 외부적 영향으로 인해 귀국 의사를 번복했다는 건 이번 국면에서 의미가 있는 사실입니다. 김 씨가 한국 내 김 씨의 지인 또는 김 씨를 돕겠다는 세력의 설득에 최초 응했다가 누군가로부터 협박을 받아서 한국행을 번복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김 씨는 현시점을 기준으로 겉으로는 '귀국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으로 다시 돌아갔습니다. 한국 검‧경 입장에서는 나름 공들인 작업이 수포로 돌아간 셈입니다. 김 전 회장만 송환해 조사하는 것도 물론 의미가 있지만, 목표했던 바에 비하면 '아쉬운, 반쪽짜리 송환이 아니겠느냐'라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습니다.

사실 김 씨의 귀국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앞서 김 씨는 지난해 12월 체포되기 한 달여 전에도 변호인과 조력자들을 통해 한국 수사 당국에 '귀국해서 조사받고 싶다'라는 취지의 의견을 먼저 전달해 오기도 했습니다. 해외 도주 피의자의 이러한 행동은 뭔가 할 말이 있다는 의미겠죠. 아직은 드러나지 않은 무언가를 밝히기 위해, 시그널을 계속 보내오고 있는 것으로 풀이됩니다. 한국 수사 당국은 이 금고지기 김 씨를 면밀히 세심하게 관리해 왔습니다. 수사팀이 금고지기 김 씨와 김 전 회장을 함께 국내에 송환해 퍼즐을 맞춰볼 수 있는 상황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코앞에서 놓쳤고 번번이 무산됐습니다.

금고지기 안 들어오나, 못 들어오나

추석 연휴 끝 붐비는 인천국제공항 (사진=연합뉴스)

이러한 여러 정황을 토대로 보자면 금고지기 김 씨는 안 들어오는 게 아니라 외부적 요인으로 인해 못 들어오고 있다고 보는 게 타당합니다. 김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초, 금고지기 김 씨의 체포 소식에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반응을 보였다고 김 전 회장 측근들이 전했습니다(SBS 김지욱 기자 리포트 1월 14일 ▶ [단독] "금고지기 붙잡히자 불안해했다"). 김 씨 체포 이후 도피 생활을 이어가는 내내 김 전 회장은 불안감에 시달렸습니다. 쌍방울 자금 흐름이나 자금 전달 수법 등이 김 씨의 입을 통해 알려지는 걸 크게 우려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김 전 회장이 김 씨 귀국 관련 소식을 들었다면 이번에도 매우 불안에 떨었을 것이고 김 씨가 먼저 체포됐을 때의 상황보다 불안의 정도는 보다 더 강했을 것으로 판단됩니다. 김 씨에게 외적 압력을 넣은 주체가 김 전 회장 또는 김 전 회장 측인지 여부는 취재 영역에서 확인하기에는 제한적인 부분입니다. 수사의 본류는 아니지만, 수사 기관은 충분히 밝혀낼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적어도 ' 김 전 회장이 심리적으로 흔들리는 금고지기의 한국행을 바라지 않는다'는 점은 김 전 회장 측 인사나 최측근들이면 누구나 다 알 법한 내용입니다. 김 전 회장 입장에서는 수사팀과 협상의 여지가 대폭 줄어들기 때문입니다. 김 전 회장은 검찰 수사팀과의 협상 카드라는 실낱 같은 끈을 놓지 않고 있습니다. 피의자와 검사가 조사실에 마주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장외에서 치열한 수 싸움을 벌이는 모양새입니다. 변호사 업계 얘기를 들어보면, 김 전 회장은 친분이 있는 변호인들을 통해 '수사팀과 협상을 원한다'는 의사를 전달하려 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본인이 어느 선까지 입을 열어야 할지 유불리를 따졌을 겁니다. 김 전 회장이 변호사들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논의하고 수원지검 수사팀에 타진하려고 시도는 해봤지만, 수사팀에 공식적으로 접수된 내용은 없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있어도 있다고 할 수 없을 테지만요.

이런 김 전 회장이 제3자를 통해 김 씨를 상대로 '한국 가면 가만 안 두겠다'라는 의사를 전달했다는 소문이 이제 꽤 공공연하게 떠도는 건 괜히 들리는 말은 아닙니다. 김성태 전 회장 입장에서는 모든 자금 흐름을 설계했던 김 씨가 입을 닫고 있는 게 최선입니다. 김성태 전 회장에게 금고지기 김 모 씨는 가장 '아픈 손가락'이자 '아킬레스건'입니다. 한 때 가까운 사이였지만 이미 강을 건넜고, 멀리하고 싶어도 멀리할 수 없는 사이입니다. 통상 금품을 제공하는 등 리스크가 큰 일을 수행하는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증거를 남기기 마련입니다. 김 씨도 증거를 남겨뒀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성태 전 회장의 국내 송환 소식에 이목이 쏠려 있습니다. 재경지검의 한 검찰 관계자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경우가 종종 있다. 쌍방울 그룹 관련 각종 의혹의 실체를 밝히려는 수사팀 입장에서는 김 씨의 진술도 함께 확보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지 않는 한 김 전 회장이 의미 있는 진술을 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라며 김 전 회장 조사를 두고 쏟아져 나오는 각종 과도한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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