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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 성범죄 저지르고 장기기증, 여성단체 기부 '꼼수 반성'

산업화하는 '가해자 반성'

뉴스스프링반성한다는 말이 자주 등장하는 장소가 있다면 법정이 그중 하나일 겁니다. 형사 사건, 특히 성범죄 피의자 공판에서 반성 여부는 주요 양형 기준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피의자가 재판부 눈을 속여 감형을 받는다면 어떨까요?

현실에선 감형을 위한 가짜 반성이 판을 치고, 이런 방법을 알려주는 인터넷 카페까지 성행하고 있었습니다. 가해자가 피해자 단체에 기부하고, 장기기증 서약서를 냅니다. 변호사들은 감형 방법을 알려주고, 가해자들끼리는 인터넷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일종의 '가해자 산업'이 만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데?

4년 전 직장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한 A씨. 1심 법원은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는데, 형량보다 A씨를 더 힘들게 한 건 판결문에 적혀있는 양형사유였습니다. 가해자에게 사과받은 적이 없는데, 판결문엔 "피고인이 자신의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있다"고 적힌 겁니다.

검찰이 항소한 뒤에는 더 황당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해자가 반성문과 탄원서 같은 통상적 서류 외에 성희롱 예방교육 이수증과 자원봉사 확인서, 심지어는 장기기증 서약서까지 총 5가지 양형 참고 자료를 제출한 겁니다. 장기기증 서약은 1심 선고 한 달 뒤에 이뤄졌고, 성명과 서명 칸엔 각각 다른 이름이 적혀있는 엉터리였습니다.

이런 자료를 받은 2심 재판부 역시 "추행의 정도가 무겁다"면서도 "법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반성한다는 점"을 들어 항소를 기각했습니다. A씨는 "가해자가 (반성문에서) 계속 재판장에게만 죄송하다고 하고 있다"며 "이게 어떻게 피해자에 대한 진심으로의 반성이냐"고 분통을 터트렸습니다.
 

좀 더 설명하면

뉴스스프링A씨는 가해자가 활용한 이러한 '꼼수 반성' 방법이 온라인에서 활발히 공유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가입자 10만명이 넘는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 보니, 성범죄 가해자들이 감형에 도움 되는 자료를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자원봉사 확인서, 장기기증 서약서처럼 A씨 가해자가 제출한 자료뿐 아니라 기부증서 등 11개에 달하는 양형 참고 자료를 준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특히 피해자 여성단체에 기부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가 지난 2017년, 소속 7개 단체의 기부자 신원을 확인해보니 기부금 전달 의사를 밝힌 사람 가운데 87명이 성범죄 가해자로 드러났습니다. 변호인이 가해자 명의로 기부하는 등 대리 기부도 많았습니다. 성범죄 가해자들이 있는 인터넷 카페에도 현금 기부를 통해 1심 유죄 판결을 2심에서 무죄로 뒤집었다는 무용담이 올라와 있었습니다.
 

한 걸음 더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성범죄 피고인 중 70.9%가 '진지한 반성'을 이유로 감형 받았습니다. 판결문에도 이런 사례가 빈번하게 등장했습니다. 지난 2019년 불법 촬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한 공무원은 사회복지기관에 정기 후원금을 낸 점이 참작돼 2심에서 벌금형으로 감형되기도 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대부분 사회봉사 단체 등 공익적 성격의 기관에서 제출받게 되는데, 기관들은 난감하다는 입장입니다. 성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영수증만 요구하는 성범죄 피의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된 한 교육기관은 "결국 프로그램 자체를 폐강했다"고 밝혔습니다. 장기기증 서약 기관에선 "어떤 목적으로 등록했는지 일일이 다 물어보기 어렵다"며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당신이 알아야 할 것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정의한 '진지한 반성'은 이렇습니다.

'범행을 인정한 구체적 경위, 피해 회복 또는 재범 방지를 위한 자발적 노력 여부 등을 조사, 판단한 결과 피고인이 자신의 범행에 대하여 진심으로 뉘우치고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진심을 객관화해 판단하기 어려운 만큼 이러한 꼼수들이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검찰, 법원, 정치권까지 함께 고민해야 할 사안으로 보입니다. 공소 유지 역할을 맡은 검찰은 피고인과 조력자들이 만든 감형 자료의 진위를 1차로 가려줘야겠고, 재판부도 거짓 반성인지 아닌지 제대로 확인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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