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친구가 술자리에서 검진 결과지를 보여주며 물었습니다. "이 수치가 높게 나왔는데 나 설마 암은 아니겠지? 너무 무서워." 확인해보니 감마 지티피(r-GTP)라는 혈액검사 수치가 약간 올라가 있었습니다. 더불어 "간에 독성이 있는 알코올이나 약물 등이 간세포를 파괴할 때나 결석, 암 등으로 담관이 막힐 때 상승할 수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저는 다른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술을 안 마시면 내려갈 거니까 걱정 마. 이제부터는 술을 끊자."고 웃으며 말했지만 암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과 공포가 친구 입장에서는 얼마나 컸을지 이해가 가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보다 직접적인 단어로 더욱 긴장감을 주는 검사 항목이 있는데요. 바로 종양표지자, 암표지자라고도 불리는 검사입니다. 나도 모르게 종합검진 항목에 들어가 있거나 직접 선택해서 검사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극단적으로는 다른 검사는 받지 않고 종양 표지자만을 검사해달라고 하는 분이 있기도 합니다. 또 명칭이 이렇다 보니 결과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많이 불안해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합니다.
종양표지자는 무엇?
현재 수백 종류가 넘는 종양표지자가 알려져 있는데 단백질, 호르몬, 효소, 수용체, 유전자까지 그 종류가 다양하고 최근 종양 진단에서 화두가 되고 있는 액체 생검 같은 것들도 넓은 의미에서 종양표지자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종양표지자가 되기 위해서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① 특정한 하나의 암에 대해 높은 특이도(specificity, 질병이 실제로 없을 때 검사 결과에서도 질병이 없다고 나오는 비율)를 갖고, ② 증상에 의한 암 진단보다 종양표지자 상승이 치료 결과를 바꿀 정도로 의미 있게 빨라야 하며, ③ 높은 민감도(sensitivity, 질병이 실제로 있을 때 검사 결과에서도 질병이 있다고 나오는 비율)를 가져야 합니다. 그 외에도 비용이 저렴하여 대중적인 선별 검사로 활용할 수 있다면 더 이상적이겠지만 이런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이상적인 종양표지자는 사실 존재하지 않습니다.
종합 검진에서 흔하게 포함되는 종양표지자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선별검사'는 증상이 없을 때 병을 조기에 발견할 목적으로 시행합니다. 우리가 건강 검진을 받는 목적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 혈청 종양표지자의 역할은 암을 진단할 때 보조적인 도구로서 또는 암을 치료하는 과정을 모니터링할 때, 치료 후 예후를 예측하는 데 있습니다. 아래 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선별 검사로서 역할이 있는 종양표지자는 전립선암에서 PSA와 간세포암에서의 AFP 정도입니다.
이것은 대부분의 종양표지자들이 특이도가 높지 않기 때문인데 위의 표에서 볼 수 있듯이 암이 아닌 다른 질환이나 상황에서도 종양표지자가 올라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증상도 없는데 암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선별검사 목적으로 종양표지자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 해석에 주의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앞에서도 언급한 사례처럼 종양표지자의 유용성에 대해 일반인들이 잘못 이해하여 과신하는 경우 암선별검사에 대한 필수 검사를 받지 않는 경우도 생길 수 있습니다.
검사에 한계가 있다
미국 질병예방특별위원회(USPSTF: 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에서는 2012년 PSA 검사는 전립선암 사망률 감소에 미치는 효과는 작거나 없기 때문에 권고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하지만 학계에서 검사의 필요성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었는데, 결국 6년 후에는 의사와 상의한 뒤 득과 실을 스스로 판단하도록 지침이 변경되었습니다. 그럼에도 70세 이후에는 여전히 PSA 검사를 권고하지 않는다는 조항은 유지되었습니다(Screening for Prostate Cancer: US Preventive Services Task Force Recommendation Statement).
국내 많은 검진 기관들에서 종양표지자 검사를 선별 검사로 널리 시행하고 있는데, 종양표지자 검사의 목적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54%에서 의심되는 종양을 선별하기 위해 혹은 발견된 종양의 기원을 알아내기 위해 종양표지자 검사를 시행하며 32%에서만 기존 종양의 추적검사를 위해 시행한다고 합니다. (Tumor markers in the laboratory: closing the guideline-practice gap)
암 환자가 줄었다고?.. 조기검진의 중요성
조기 발견이 늦어지면 치료가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국가암검진사업 대상인 위암, 대장암, 폐암, 간암, 유방암, 자궁경부암은 조기 발견을 통해 발견할 수 있고 실제로 5년 생존율도 미국, 영국보다도 대체로 높은 걸로 나타났습니다. 국가 암 검진은 미루지 말고 잘 챙겨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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