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취재파일] 에너지바우처도 못 받는 한파 취약계층…연간 5만 가구

줄일 수 있는 사각지대부터 손보는 것이 '촘촘한 복지'

[취재파일] 에너지바우처도 못 받는 한파 취약계층…연간 5만 가구
등유 가격 폭등으로 한 달 생계비 절반 이상을 난방비에 써야 하는 기초생활수급자를 만난 적이 있습니다. 하루 두 끼에서 하루 한 끼로 끼니를 줄여도, 씻고 먹고 잠자기 위한 '물러설 수 없는' 난방 기준선을 위한 비용이 그에게는 너무 높았습니다. 하루 종일 보일러를 뗄 수도 없는 노릇이지만, 얼어붙어서 더 큰 난리를 막으려면 최소 하루 한 번은 보일러를 돌려야 했습니다. 도시가스가 들어오지 않는 농촌 단층 주택에 홀로 거주하는 그의 겨울나기는 사투에 가까워 보였습니다. 그는 차라리 해가 내리쬐는 바깥이 방안보다 따뜻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습니다.

요즘 같은 한파가 더 두려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각종 생활 물가를 비롯해 무섭게 오르는 난방비 부담마저 커진 취약계층입니다. 정부도 손 놓고 있는 건 아닙니다. 2015년부터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전기와 도시가스, 등유나 연탄 구입비용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지급 대상이면서도 한 푼도 지원 받지 못한 가구가 최근 들어 점점 늘고 있다는 겁니다. 왜 그런 걸까요?
 

에너지바우처 사각지대 5만 5천 가구…한파 고스란히 견뎌야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실이 조사한 자료를 보면 바우처 미발급 가구는 19년 2.8만 가구에서 20년 4.7만 가구, 21년 5.5만 가구까지 늘었습니다. 그러니까 매년 5만 가구 정도의 취약 계층이 에너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겁니다. 최근 5년간 전기요금 체납으로 전기가 끊긴 가구 중 11%만 에너지바우처를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도 존재 자체를 모르거나, 서류를 갖출 능력이 부족한 어르신의 경우 신청 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입니다.

사실 충분히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에너지바우처 지급 대상은 우리 복지 시스템 상에서 새로 '발굴'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 명확한 복지 기준에 따라 이미 선정된 대상이라고 봐야 합니다. 생계의료급여 등 수급 가구 중 노인과 장애인, 영유아, 임산부, 소년소녀가정 세대 등으로 비교적 명확하게 설정해 뒀기 때문입니다. 올해 기준으로는 117만 가구가 해당됩니다.

복지부에선 이미 생계급여 지급 등을 위해 이들에 대한 세세한 정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에너지바우처 주무부처인 산자부로 명단을 넘길 때 이름과 주소 정도만 제공할 뿐 노인이나 한부모 가족 등 여부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산자부 역시 그저 문자로 '신청하라'고 독려만 할 뿐입니다. 지난해에 바우처를 신청했던 가구가 올해도 신청했는지 , 혹시 신청하지 않았다면 무슨 변화가 생겼는지 가구 실태조사나 사후 관리는 전혀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바우처 미발급 사유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인지 능력이 떨어지거나 각종 증빙이 어려운 사람들, 또 쪽방촌이나 모텔에 거주하는 경우 공용 가구로 묶여 증빙 절차가 번거로워서 신청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추측할 뿐입니다.
 

'사각지대 해소' 의지 중요…바우처 미발급률 인천 1.29%, 울산 11.1%

정부와 지자체 노력에 따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건 자치단체별 미발급률 통계에서도 드러납니다. 지난해 기준 전국 17개 광역자지단체의 바우처 미발급률을 비교해봤더니 인천시는 1.29%로 전국 최저 수준이었지만 울산의 경우 11.1%로 미발급률이 가장 높았습니다. 각 부처와 지자체가 좀 더 힘을 보탠다면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에너지 복지가 조금이라도 가 닿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근본적으론 대상자가 요구하지 않으면 사회가 도움을 주지 않는 '복지 신청주의'의 한계가 존재합니다. 복지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는 위기 가구가 여전히 많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

(사진=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