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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은 언제나 시작일 수밖에 『이제 그것을 보았어』[북적북적]

끝은 언제나 시작일 수밖에 『이제 그것을 보았어』[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364 :  끝은 언제나 시작일 수밖에 『이제 그것을 보았어』
 
마지막 문장은 끝까지 읽은 사람만 그 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광활한 세계다. 작품을 정직하게 완주한 사람만이 마지막 한마디의 무게를 정확히 가늠할 수 있다.
-『이제 그것을 보았어』 中
   
자, 떠올려보자. 기억에 남는 마지막 문장을. (생각처럼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을 감고 떠올리면 좀 더 나으려나.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

지금껏 읽은 그 수많은 책의 마지막 문장들은 다 어디로 갔나. 언제 이렇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갔단 말인가. 첫 문장에 홀딱 반해 밤낮으로 읽으며 엔딩에 도착했던 그 이야기들의 마지막이 그저 두루뭉술한 이미지로만 남았다고? 나는 그저 결말을 알아내느라 급했을 뿐, 마지막 문장의 의미를 차분히 맛보는 데에는 소홀한 독자였다는 것을 이 책 『이제 그것을 보았어』를 읽으면서야 알게 되었다. 
 
이번 주 <북적북적>에서 소개하고 맛보기로 읽어드리는 책은 『이제 그것을 보았어 (박혜진 지음, 난다 펴냄)』이다. 부제는 ‘박혜진의 엔딩 노트’. ‘이제 그것을 보았어’라는 제목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고개를 갸웃하겠지만, 부제를 보면 짐작이 되기도 한다. 이 책은 ‘엔딩’에 대한 이야기다. 52작품의 엔딩- 마지막 문장에 대한 글을 모았다.

그런데 ‘엔딩’이라고? 그렇다면 스포일러 아닌가? 어떤 책에 대해 말할 때, 엔딩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세상엔 ‘책에 대한 책’이 수없이 많지만, 결말은 성역처럼 남겨놓고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엔딩을, 마지막 문장을 대놓고 공개하며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것은 그러므로 대단한 내공을 요구한다. 『이제 그것을 보았어』는 여기 실린 작품을 아직 읽지 않은 독자가 앞으로 그 책을 보면서 느낄 재미를 해치지 않으면서, 매우 읽어보고 싶게 한다. 또 이미 읽었던 독자에게는 ‘내가 진짜 이걸 읽었던가’ 새로운 눈으로 다시 생각해보게 만든다.

그건 아마 이 책을 쓴 작가가 박혜진 님이라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박혜진 작가는 문학편집자이자 문학평론가다. 민음사에서 12년째 문학편집자로 일하고 있고, 8년째 평론가로 활동하면서 2018년 젊은 평론가상, 2022년 현대문학상 평론부문을 수상했다.  
저자는 이 책의 머리말인 ‘인트로’에서 이렇게 썼다.
 
누구에게나 끝이 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자신의 끝을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는 미지의 끝을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에 소설을 읽는 게 아닐까. ..(중략).. 소설의 끝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근시의 인간에게 잠깐만 허락되는 신의 눈이다. ..(중략).. 소설이 인생 수업이라면 소설의 마지막 순간들을 수집한 이 노트는 타의에 끌려다니지 않기 위한 끝내기 기술이다.
-『이제 그것을 보았어』 中 

책 제목인 ‘이제 그것을 보았어’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등대로’의 마지막 문장이다. 이 책에는  ‘등대로 (버지니아 울프)’, ‘세일즈맨의 죽음 (아서 밀러)’, ‘이방인 (알베르 카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괴테)’, ‘날개 (이상)’, ‘리어왕’ (셰익스피어)처럼 대체로 많은 분들이 읽었을 작품은 물론이고 ‘내가 말하고 있잖아 (정용준)’, ‘고독사 워크숍(박지영)’처럼 최근 나온 소설들, 그리고 ‘설국 (가와바타 야스나리)’처럼 강렬한 첫 문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작품까지 52편의 엔딩 노트가 담겨 있다. 여기엔 ‘3월의 눈 (배삼식)’ 같은 희곡, 영화 ‘와일드’, 화가인 샤갈의 마지막 작품까지 책이 아닌 다른 장르의 작품도 포함돼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내가 그러모은 마지막 문장들은 맞이한 끝, 환대받은 끝, 끝나지 않는 끝, 부활하는 끝이다. 끝은 변화의 일부이고 변화는 끝을 통해서만 자신을 드러낸다.“고 썼다. 그리고 “작품의 마지막은 작가에게 끝인 동시에 독자에게 새로운 시작이다. 작품이 독자에게로 넘어오는 사이에 ‘끝’이 있다.”고.

이 많은 ‘끝’ 중에서 오늘 중에서 오늘 팟캐스트 ‘북적북적’에서는 게일 콜드웰의 『어느 날 뒤바뀐 삶, 설명서는 없음』이라는 책의 엔딩노트를 읽어드린다. 이 책에 실린 52편의 글 중 52번째- 마지막 글이다. 저자는 이 글에서 우리가 읽은 것들은 어딘가로 사라지지 않고 언젠가 우리에게 다시 말을 걸어올 것이라고, 고통의 순간을 변화의 순간으로 바라보게 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끔 왜 문학을 읽어야 하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살다 보니,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도 명확했다. 아플 때 약을 먹는 것만큼이나 분명해서 설명할 필요조차 못 느낄 만큼. 문학이 아니라면 우리는 누구에게서도 어디에서도 이만큼 구체적으로 인생을 배울 수 없다. ..(중략).. 자신의 비극과 마주한 기록은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에게 자신의 상처를 견딜 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해 준다. 견딜 수 없는 일을 견딜 만한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건 끝에서 변화를 읽고 의미를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략) 
변화라고 생각하면 끝은 언제나 시작일 수밖에 없다. 
-『이제 그것을 보았어』 中

『이제 그것을 보았어』에는 박혜진 작가의 인간에 대한 긍정적인 믿음과 희망이 책 전반에 걸쳐 녹아 있다. 박혜진 작가가 북토크 영상에서 ‘나는 작가들이 작품의 엔딩에 희망의 단서를 넣어주는 것에 중독돼 있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중독이라 할 만큼 그가 애정을 갖고 모은 희망의 단서들은, 이번 책을 통해 우리 독자들에게도 잘 전해졌다.

2022년도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달력도 새해도 자연의 시간 위에 인간이 그은 경계에 불과하다. 그래도 성심껏 하나의 경계를 또 통과해 가는 요즘이야말로 이 책 『이제 그것을 보았어』를 읽기 좋은 때가 아닐까. 끝과 시작이 만나는 12월과 1월에 ‘시작으로서의 끝’을 말하는 책을 읽는다니, 우리의 독서 추억에 이렇게 의미 있는 기억이 또 있을까.  
 
*낭독을 허락해주신 출판사 ‘난다’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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