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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리포트] '시진핑 인민영수 시대'…앞으로 10년 중국은?

정치 개혁 이뤄질 거라던 집권 초기 예상은 빗나가

"시진핑은 개혁파"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 집권 초기인 지난 2013년 1월 뉴욕타임스에 실린 칼럼의 제목입니다. 영문 제목은 'Looking for a Jump-Start in China'였지만 중국어 제목이 '시진핑은 개혁파'였습니다. 수십 년 동안 중국을 연구한 유명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당시 시진핑 중국 공산당 총서기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이 칼럼이 나오고 두 달 뒤인 2013년 3월 시진핑 총서기는 공식적으로 중국 국가 주석의 자리를 맡게 됩니다.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이 칼럼에서 '마오쩌둥의 시신이 천안문 광장에서 옮겨지고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류사오보가 석방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마오쩌둥 전 주석의 시신은 영구보존 처리돼 천안문 광장에 자리한 마오 주석 기념당에 안치돼 있는데 '개혁파'인 시 주석 시대에는 장소를 옮길 거라는 전망이었습니다. 또 중국 민주화의 상징인 인권운동가 류사오보는 수감 중이라 노벨평화상 시상식에 참석하지도 못했는데, 시 주석 임기 동안에는 석방될 것이라 예상한 겁니다. 시 주석 시대의 중국에서는 정치, 경제 부문의 개혁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평가했기 때문입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니콜라스 크리스토프는 시진핑 주석을 개혁파로 칭한 첫 번째 근거로 '개혁의 피'를 들었습니다. 시 주석의 부친 시중쉰 전 광둥성 당 서기가 선전 경제특구를 창안한 인물로 중국 경제개혁의 선구자였고, 1989년의 천안문 사태도 공개적으로 규탄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시 주석이 자녀를 미국으로 유학 보낸 최초의 중국 지도자라는 점, 당 총서기가 된 뒤 첫 번째 행보가 개혁개방의 상징 덩샤오핑의 남방지역 방문(남순강화)을 재현했다는 점도 근거로 들었습니다. 또 교육 수준이 높고 실용적인 중산층이 부상하고 있는 만큼 타이완과 한국 같이 민주화된 이웃나라들보다 중국이 계속 뒤처질 수는 없을 거라며 정치적 민주화 가능성도 높게 봤습니다. 전임자 후진타오 주석에서 시진핑 주석으로 권력이 이양되는 과정에 있던 시기에 나온 이 칼럼은 서구세계는 물론이고 중국 내에서도 큰 관심을 끌었습니다. 10년 만에 새 지도자를 맞은 중국이라는 나라가 어느 방향으로 바뀌어 갈지 그만큼 관심이 높았기 때문입니다. '개혁개방이 더 가속화될 것'이라는 예상의 근거는 충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10년 전 이 칼럼이 자신 있게 내세웠던 두 가지 예상은 모두 빗나갔습니다. 시 주석 집권 10년이 지난 지금 마오쩌둥 시신은 여전히 천안문 광장을 지키고 있는 것은 물론, 류사오보의 석방도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류사오보는 노벨상 수상 후에도 계속 수감 상태에 있다가 간암 말기 진단을 받은 지난 2017년 5월에야 가석방됐는데 가족들은 해외에서 치료받기를 원했지만 허용되지 않았고 결국 2017년 7월 숨졌습니다.
 

"더 개혁, 개방된 중국"...지난 10년 빗나간 예상


이 칼럼만 시 주석 집권 초기 '정치, 경제적으로 더 개혁개방된 중국'을 예상했던 것은 아닙니다. 로이터,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같은 다른 언론들도 비슷한 예측을 내놨고 중국 내부에서도 같은 반응이었습니다. 홍콩 언론 출신인 장지에핑은 최근 SNS 매체에 공개된 대담에서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언론이 개혁과 개방이 더 높은 수준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인터뷰했습니다". 시 주석의 아버지 시중쉰 전 광둥성 당서기가 마오쩌둥 당시 문화 대혁명으로 실각하자 시 주석 본인도 어린 시절에 16년에 걸친 고생을 했다는 이력이 주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따라서 문화 대혁명의 폐해를 직접 겪은 5세대 지도자인 시 주석은 민의를 보다 많이 받들고 경제성장에 따라 팽배해진 정치 개혁 욕구를 적절히 수용하는 쪽으로 변화를 일으킬 것으로 예상됐던 겁니다. 장지에핑은 "당시 모든 사람들이 시 주석을 개혁파라고 말했는데 아니라는 사람은 후더화 (개혁파로 불린 후야오방 전 총서기의 아들) 단 한 사람"이었다고 회고했습니다. 2013년까지만 해도 언론자유와 정치개혁에 대한 기대가 높았고 중국 내 자유주의자들이 목소리도 컸지만 그 이후 상황은 반대로 전개됐습니다. 장지에핑은 지난 2015년 일어난 양쯔강 여객선 침몰 사고를 대표적으로 꼽았습니다. 양쯔강 여객선 둥팡즈싱호가 강한 회오리바람을 맞아 침몰하면서 승객 456명 가운데 생존자는 14명에 불과했고 중국 정부 공식 집계로 442명이 사망·실종됐습니다. 엄청난 비극이 벌어졌지만 해외 매체는 물론 중국 국내 매체의 취재는 철저히 차단됐고 취재진의 현장 접근 자체가 불허됐는데, 이때를 기점으로 내외신 언론 통제가 극심해졌다는 겁니다. 2011년 원저우 고속열차 충돌 참사(사상자 240여 명) 때만 해도 언론 통제가 있긴 했지만 참사 이면의 구조적 부조리가 파헤쳐질 SNS 공간이 있었는데 이제는 "어떤 사건이든 당사자가 1명이거나 100명이거나 2,000명이거나에 상관없이 통제될 수 있게 됐다"는 겁니다.
 

'인민영수 시대' 앞으로 10년…권위주의 강화와 타이완 침공?


중국 국영방송인 CCTV는 시진핑 주석에게 '인민영수(人民领袖)'라는 호칭을 부여한 연속 기사를 최근 게재하고 있습니다. '영수'라는 말은 '지도자, 우두머리'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도 많이 쓰지는 않지만 '여야 영수회담'처럼 정치권에서 종종 쓰이는 단어입니다. 시 주석 이전에 중국 공산당 역사상 공인된 '영수'는 '위대한 영수' 혹은 '대영수' 호칭을 받은 마오쩌둥 한 사람뿐으로 덩샤오핑도 영수로 불린 적은 없었습니다. '인민영수'는 시 주석을 위해서 관영매체가 고안한 특별 호칭인 셈입니다. 이런 만큼 5년마다 열리는 가장 큰 정치행사인 당 대회(10월 16일 개막)를 앞두고, 시 주석의 3연임을 의심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집권 10년에 5년을 더한 15년뿐만 아니라, 10년을 더한 20년 집권이나 더 오랜 기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예상이 훨씬 많습니다. 그만큼 현재 권력기반이 탄탄하고 경쟁자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시 주석 3연임 이후 전망의 첫 번째는 '권위주의적 통제'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시각입니다. "시진핑 신시대 중국 특색 사회주의라는 통치 철학을 시진핑 사상으로 명문화하고 마오쩌둥 사상과 같은 수준으로 격상할 것"(홍콩 신문 명보) 같은 예상이 '권위주의 통제 강화' 전망을 뒷받침합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시장 자율성보다는 부패 척결과 관리 감독을 내세우며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습니다. 개혁개방보다 이른바 '공동부유'를 내세우며 민간기업의 사실상 국유화를 의미하는 '국진민퇴' 경향이 더 가속화될 수 있다는 전망입니다. 국방안보 측면에서는 '타이완 침공 가능성'이 자주 거론됩니다. 윌리엄 번스 미국 CIA 국장이 "시 주석이 2027년까지 타이완 공격 준비를 끝낼 것을 군에 지시했다"라고 주장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2027년이 주목되는 이유는 앞으로 5년 뒤 중국 공산당 21차 당대회가 예정돼 있기 때문입니다. 올해 20차 당대회에서 3연임을 공식화하고 나면 5년 뒤인 2027년는 4연임을 결정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권위주의 통제 강화'를 주로 전망하는 서구 언론들은 중국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논조가 강합니다. 블룸버그통신이 "지난 10년 동안 중국 사회·경제적 자유 희생됐다"라고 평가한 것이나 영국 파이낸셜타임스가 "권력 부패로 향후 10년은 지난 10년보다 더 나빠질 것"이라고 논평한 것이 대표적입니다.
 

'피크 차이나' 경제가 문제…더 유연해지는 중국?


정반대의 전망도 있습니다. '3연임'이라는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결됐으니 경제성장에 정책방향이 맞춰지면서 더 유연한 개혁개방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예상이 그것입니다.

이런 예상의 배경에는 이른바 '피크 차이나(Peak China)' 논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1970년대 후반 개혁개방 이래 거의 50년간 초고속 경제성장을 지속해 온 중국도 이제 성장의 한계에 직면했다는 겁니다. 경제성장률이 이미 정점을 찍고 내려가고 있고 경기둔화 국면에 들어선 만큼 강경 일변도의 대외정책을 고수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습니다. 정치권력 문제보다 훨씬 더 민감한 '먹고 사는 문제'에 대중의 불만이 누적되면 더 큰 위기를 부를 수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습니다. 따라서 3연임 확정 후에는 엄격한 제로 코로나 방역 정책을 완화하고, 미중 관계도 개선해 떨어지는 경제성장률 끌어올리기에 집중하지 않겠냐는 예상입니다.

정영태 취재파일

20차 당 대회 이후 미중 정상회담 주목


흥미로운 것은 10년 전과는 정반대의 상황이라는 점입니다. 현재는 '더 권위주의적 중국' 전망이 훨씬 많습니다. 하지만 시 주석 집권 초기 10년 전에는 '더 개혁개방된 중국' 전망이 압도적이었습니다. 다수의 전망이 과거 행보를 주요 근거로 하고 있다는 점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습니다. 다만 10년 전에는 시 주석의 부친과 성장 배경, 지방에서의 경력 등 과거 이력을 배경으로 '더 개혁개방된 중국'을 전망했는데, 지금은 시 주석 집권 지난 10년을 바탕으로 '더 권위주의적 중국'을 전망하고 있다는 점이 달라진 점입니다.

어느 전망이 맞을지 단기간에 판가름 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일단 10월 16일 개막하는 중국 20차 당 대회 결과를 지켜보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당 대회 이후 예상되는 미중 정상회담이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거라는 게 외교가의 전망입니다. 다음 달인 11월 15~16일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18~19일에는 태국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예정돼 있습니다. 주최 측인 인도네시아와 태국은 시 주석이 회의에 참석할 것이라고 밝혔고,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G20에는 참석하지만 APEC에는 참석하지 않을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현재 상황대로라면 미중 정상은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처음으로 화상 대화가 아닌 대면 회담을 가질 가능성 있고, 시 주석 3연임 이후 중국 대내외 정책 향방을 보다 분명히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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