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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난(亂)과 쿠데타, 그리고 경찰서장 회의

[취재파일] 난(亂)과 쿠데타, 그리고 경찰서장 회의

저항의 역사

역사 공부를 하다보면 여러 저항 사건을 배웁니다. 그리고 저항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이러한 저항은 집단 주체가 누구냐, 저항 정신이 담겼느냐, 기존 체제가 무너졌느냐 등에 따라 저마다 붙는 이름이 제각각입니다.

어떠한 저항은 난(亂)이 되고, 운동(運動)이 되고, 쿠데타(coup d'Etat)가 되기도 하고, 혁명(Revolution)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때로는 하나의 저항 사건이 역사학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난이라고 불렸다가 나중에 운동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대표적 예가 동학농민운동입니다. 과거에는 동학농민운동이 '동학난'이라고 불렸습니다. 지금도 동학난이라고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하지만, 오늘날에는 동학농민운동이라는 표현이 굳혀졌습니다. 저항 주체자인 농민들은 '나라 일을 돕고 백성을 편안하게 한다'는 보국안민의 뜻을 내세웠습니다. 또 조정을 상대로 폐정 개혁안을 제시해 개혁을 추진했다는 점에서 우발적으로 일어난 난(亂)과는 다소 성격이 다르다고 보는 것입니다.

① 난(亂)

난은 어찌 보면 저항의 역사 속에서 가장 낮은 평가를 받는 경우입니다. 난은 일단 주체가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을 상대로 일으킨 체제 전복 시도입니다. 그리고 체제 전복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에 해당합니다.

또 난으로 평가받는 저항의 것들은 이른바 '저항 정신'이 없다고 보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쉽게 말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반기라는 것입니다. 저항 주체가 특정 이념을 공유하거나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다고 봅니다. 다만 정체(政體) 분열 수준은 매우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책에도 여러 난의 소개되고 있습니다. 황건적의 난, 만적의 난, 망이·망소이의 난, 홍경래의 난, 이인좌의 난 등이 있습니다.

② 운동

운동이라는 이름이 붙는 역사 사건도 많습니다. 운동 역시 피지배 계층이 주체가 됩니다. 운동의 주체는 지배 계층의 부당함을 참지 못하고 저항하는데, 난과 마찬가지로 지배 계층에 대한 전복을 시도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지배 체제가 바뀌었다고 볼 순 없습니다.

난과 다른 점은 저항 주체가 특정한 저항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국사 속에서는 일제 강점기 시절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들, 독재 정권 시절에 민주주의를 위해 싸운 민주투사들이 해당합니다. 오늘날까지도 후손이 본받고 있는 정신들입니다. 그래서 역사에서는 3·1운동이라고 하고, 5·18 민주화운동이라고 합니다.

③ 쿠데타

쿠데타는 '상층부 내 권력탈취 행위'와 유사합니다. 난이나 운동과 다른 점은 저항 주체가 피지배계층이 아닙니다. 이미 지배계층으로 구분되는 집단이 또 다른 지배계층을 향한 권력 탈취 시도입니다.

쿠데타는 기습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소수에 해당하는 사람이 움직입니다. 쿠데타는 권력 전복 시도에 대해서 성공하는 경우도, 실패하는 경우도 모두 쿠데타로 불리고 있습니다. 쿠데타 주체는 보통 특정 저항 정신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쿠데타는 그래서 주로 군사 정권에서 발생하는데, 군사정변이라고도 말합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인들이 주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민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일으킨 저항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대표적으로 전두환의 12·12쿠데타가 있습니다. 지난해 미얀마 군부가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몰아내고 정권을 장악한 행위도 흔히 '미얀마 쿠데타'라고 말합니다.

④ 혁명

혁명은 가장 큰 변화를 불러일으키는 저항입니다. 혁명도 대개 피지배계층이 지배계층을 상대로 일으키는 체제 전복 시도를 말합니다. 혁명 주체 세력은 공통의 저항 정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민중의 지지를 받습니다.

난이나 운동과 다른 점은 체제 전복 시도가 성공한 경우입니다. 피지배계층의 저항으로 지배계층이 스스로 물러난다거나, 아니면 저항 주체들이 무력을 사용하여 지배계층을 쫓아냈을 때를 말합니다. 정체(政體) 분열 수준 매우 심한 단계입니다.

혁명이란 단어가 붙은 역사 사건을 떠올려 볼까요. 국내에서 4·19 혁명으로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 했습니다. 그리고 세계사에서 배운 프랑스 혁명, 영국 혁명, 쿠바 혁명 모두 왕이나 최고 지도자가 혁명 주체 세력에 의해 물러나게 됩니다.
 

경찰서장 회의, 난(亂)이냐?

지역 경찰서장에 해당하는 총경급 경찰관이 7월 23일(토)에 회의를 열었습니다. 최근 행정안전부 내 경찰국 신선 문제, 그리고 청장 지휘규칙안 제정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입니다. 물론 참석자 전원이 경찰국 신설에 반대했다고 한 만큼 정부의 정책 방침에 대한 반대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모인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습니다.

경찰서장 회의 / 박찬범 취파용

이런 경찰서장 회의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찰의 난, '경란'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경찰서장의 모임이 앞서 말한 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일단 회의에 참석한 총경들이 좁게는 경찰청장 후보자를 퇴진시킬 목적으로 모였다거나, 넓게는 국가 체제를 전복시키려고 모인 게 아니라는 건 자명합니다. 또 이들이 우발적으로 혹은 홧김에 회의를 소집했다고 볼 수 없습니다. 자신이 속한 조직 내에서 반대 목소리를 집단으로 냈다고 하는 걸 난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이번 경찰서장 회의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경찰서장 회의, 쿠데타냐?

주말에 모인 경찰서장을 두고 난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부적절하지만, 쿠데타라고 주장하는 것은 더 말이 되지 않습니다. 쿠데타라는 뜻을 전혀 모르거나 잘못 이해한 경우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경찰 서장들이 현 정권을 무너뜨릴 목적으로 회의를 한 것이 아닙니다. 또한 회의 날짜도 미리 예고하고 각 소속 청에 보고를 했듯이 기습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쿠데타의 성립 요건에 맞는 게 없습니다. 총경은 경찰 조직 내에서 고위 간부에 해당한다고 볼 순 있겠지만, 쿠데타 정의대로 소수의 지배계급이라고 보기엔 그 수가 700명이 넘을 정도로 많습니다.

경찰서장 회의 / 박찬범 취파용

또한 이번 회의는 다른 동료 직원들로부터 지지를 받았습니다. 오히려 회의 당일 날에는 경찰 직장협의회에서 응원을 온다거나, 총경 보다 아래 계급인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격려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이밖에 서장 회의 이후 류삼영 총경을 대기발령 조치하자 오히려 서장 회의를 응원하는 글이 더 늘었다는 점에서 다수의 지지를 받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경찰서장 회의, 분위기는?

7월 23일 당일, 회의가 열리는 경찰 인재개발원 최규식 홀 앞에서 상황을 지켜봤습니다. 회의 시작 전에는 서장 회의를 응원하는 화환이 1층에서부터 줄지었고, 울산청에서는 커피차까지 왔습니다. 곳곳에는 응원한다는 취지의 플랜카드가 걸렸습니다.

경찰서장 회의 / 박찬범 취파용
 

경찰서장 회의, 논의는?

비공개인 만큼 취재진이 회의 내용을 다 알 순 없습니다. 다만, 이들이 회의장에서 본 자료 제목들을 어깨너머로 보고, 회의 참석한 총경을 상대로 취재를 해 간접적으로나마 유추할 수 있었습니다.

당일 총경들은 행안부 경찰제도발전위원회 권고안 발표 직후 일련의 과정들을 날짜 별로 정리해 살펴본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이번 행정안전부 장관 소속 청장 지휘에 관한 규칙안을 살펴본 것 같습니다. 또 경찰국 신설에 대한 여론조사를 실시하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자료를 나눠본 것으로 짐작됩니다.

경찰서장 회의 / 박찬범 취파용

이날 평소 알고 지내던 한 총경을 우연히 만났습니다. 회의가 어땠는지 물었습니다. 류삼영 총경이 회의 전에 기자들 앞에서 말한 것처럼 경찰국 신선을 골자로 한 시행령 개정안, 그리고 청장 지휘규칙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위법적인 부분이 없었는지 살펴봤다고 했습니다. 또 회의 결과를 어떻게 정리하고 전달하는 게 효과적일지 그 방법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고 합니다.
 

"경찰 수뇌부에 힘을 실어주려면"

한 가지 기억에 남은 부분은 이날 참석한 총경들이 경찰 수뇌부에게 어떻게 하면 힘을 실어줄지에 대한 의견도 교환했다는 것입니다. 이들 또한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 등 수뇌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실을 일부 공감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이날 회의가 단순히 누군가를 방해할 목적으로 열린 게 아니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도 경찰국 신설에 대한 우려를 표하면서도, 수뇌부가 행안부 등 윗선에 자기 목소리를 제대로 낼 수 있도록 어떻게 분위기를 만들어줄지 고민했다는 것입니다.

경찰서장 회의 / 박찬범 취파용

이러한 사정을 알고서도 경찰서장 회의를 난 혹은 쿠데타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어느 사회나 집단이나 반대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하고, 용인해줘야 합니다. 다른 목소리를 냈다는 이유로 온갖 규정을 끌고 들어온 뒤 복무규정 위반이라면서 입을 막으려는 행위는 치졸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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