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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는 끝났다? 우리는 아직 거리에 있다"

아직 그들은 거리에 있다
※ '코로나 비하인드'는 코로나19 취재 최전선에서 뛰고 있는 SBS 보도본부 생활문화부 박수진 기자의 취재기입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기사에는 담지 못했던 박 기자의 취재물과 생각들을 독자들께 풀어놨습니다. 그동안 '코로나 비하인드'를 사랑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편집자 주]

이별은 예고가 있어도, 또 없어도 느닷없습니다. 부고(訃告)는 더 그렇습니다. 이제 당신과 내가 같은 하늘 아래 살지 않게 됐다는 이별 통보. 그런 통보가 전해질 때면 관계의 깊이와 무관하게 잠시 숨이 멎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합니다.

"어머니는 2주 전에 돌아가셨어요." 돌이켜보면 몇 번의 예고가 있었습니다. 민지 씨를 처음 만났던 3월 초 청와대 분수대 앞. 그녀의 어머니는 코로나에 감염돼 석 달째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인 코로나 위중증 환자였습니다. 다음 날, 어머니가 입원 중인 병원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도 '이번 주를 넘기기 어렵다'는 의사의 말을 이미 몇 번이나 들었던 상황이었습니다. "쾌차하셨으면 좋겠다." 취재를 마치고 그녀와 헤어질 때 이런 인사를 남겼습니다.

3주 후.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앞. 코로나 피해와 관련한 다른 기자회견을 취재 중이었는데, 사회자의 이 말이 귀에 들어왔습니다. "코로나 중환자 피해를 입은 가족이 오늘 직접 나와 발언을 해주기로 하셨는데, 오늘 아침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연락이 와서 못 오셨다."

왠지 그녀의 이야기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혹시 어머니 위독하세요?" 민지 씨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 아침에 임종 면회 오라고 해서 병원에 왔어요. 대기 중이에요." 심장이 덜컥였습니다. 힘내라는 말 외에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습니다. 다행히 그날, 민지 씨의 어머니는 고비를 넘겼습니다. "지난 석 달 중 가장 지옥 같은 날이었어요." 지옥은 그렇게 지나갔을 거라고 믿었습니다.

두 달이 흐른 지난 17일.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용산에서 코로나 위중증 피해 환자 보호자 모임이 새 정부를 향한 요구안을 발표한다는 내용의 문자가 도착했습니다. 발신인은 민지 씨였습니다. "잘 지내세요? 어머님은 좀 어떠신지 모르겠네요." 반가움에 보낸 문자에 돌아온 답은 2주 늦은 어머니의 부고였습니다.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엄마는 떠났고, 딸은 거리에 남았다

지난 3월, 민지 씨의 사연을 통해 코로나 위중증 환자와 그 가족들이 처한 어려움을 기사로 전한 바 있습니다. 정부가 정한 확진자 격리 기간이 해제된 이후에도 여전히 코로나 감염에 따른 폐렴 등의 질환으로 중증 치료를 받고 있지만, 격리가 해제됐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관련기사: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 중환자 가족으로 산다는 것)
코로나 비하인드_중환자
처음 만났을 당시 민지 씨가 보여준 진료비 영수증엔 4천 2백만 원이 찍혀 있었습니다. 석 달간 청구된 진료비 2억여 원 중 민지 씨가 오롯이 부담해야 할 돈이었습니다. 그 이후 어머니가 사망한 4월 29일 전까지 치료는 이어졌고, 병원에 내야 할 돈은 더 늘었습니다. 5천만 원 한도인 실비 보험은 이미 다 소진했고, 대출을 받아 낸 진료비를 갚는 일은 어머니가 떠난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민지 씨 어머니의 사망진단서에 적힌 직접 사인(死因)은 폐렴. 이 폐렴을 유발한 원인은 '코로나19 감염'이라고 적혀있습니다. 하지만 민지 씨의 어머니는 코로나 사망자 통계에 포함되지 않습니다. 격리 해제 후 사망했기 때문입니다. 민지 씨와 같은 상황에 놓인 코로나 위중증 피해 환자 가족들이 적지 않습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민지씨 어머니 사망진단서
지난 3월 기자회견을 했고, SBS를 비롯해 여러 언론에 기사도 나왔습니다. 하지만 아직 바뀐 건 없습니다. "격리 해제는 완치가 아니다"라는 위중증 환자 가족들의 호소는 계속되고 있지만 이전 정부도 또 지금 정부도 가족들이 반길만한 답을 해주진 않고 있습니다. 돌파구를 찾으려면, 현재 격리 기간에만 진료비 등을 지원하도록 돼있는 감염병예방법을 다시 들여다보는 작업이 필요한데 '함께 방법을 찾아보자'고 손을 내민 국회의원도 없었습니다. 새 정부가 내세운 '코로나 100일 로드맵'에도 이 같은 내용은 포함돼있지 않습니다. 여전히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코로나19 유행 상황이 사람들의 관심에서 조금씩 멀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는 끝났다? 우리는 아직 거리에 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지만 민지 씨가 여전히 거리에 남아있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민지 씨는 다른 중환자 가족들과 함께 지난 1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습니다. 건강권실현을위한행동하는간호사회,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일부 단체가 힘을 보탰습니다.

재택 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해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위중증 피해로 이어진 과거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고, 또 그 결과 이어진 수천만 원의 치료비 폭탄을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해결책을 새 정부에 촉구했습니다. 방역당국이 현재 추진 중인 '확진자 격리 의무 해제'로 확진자에 대한 정부 지원 자체가 끊길 경우 문제가 더 악화될 수 있단 우려도 내놨습니다.

위중증 피해 가족들은 최근 정부가 내놓은 '고위험군 패스트트랙'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다고 했습니다. 고위험군 환자의 경우 하루 안에 진단부터 처방, 치료까지 이뤄질 수 있도록 한다는 대책으로 정부는 6월 중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가족들은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2만 명이 넘게 죽어서야 나온 대책"이라며 정부의 뒤늦은 대응을 원망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갚아야 할 치료비는 있지만 더 이상 부담이 커지진 않을텐데..그런데도 여전히 기자회견을 하러 거리에 나오는 이유가 있을까요?" 민지 씨에게 물었습니다.

"어머니 유품 정리를 하면서, 재택치료를 했던 초기 대응부터 잘못됐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가 골든타임이었는데 그걸 놓친 거죠. 격리 위주의 '감염병 관리'에 집중하느라 정작 아픈 사람을 제대로 치료하는 걸 정부가 놓친 거죠. 감염병은 또 나올 거고, 이런 상황이 다시 반복되면 안 되잖아요. 여전히 수천만 원씩 치료비를 감당하는 환자 가족들의 어려움을 해결해야 하는 현실적 과제도 있고요. 어머니는 돌아가셨지만, 이런 상황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코로나 비하인드 5편

백신 피해자 가족, 그들은 여전히 전국을 떠돈다

"이번 주 토요일은 양산으로 갑니다." 매주 수요일쯤 알람처럼 카톡이 울립니다. 주말 집회 장소를 알리는 연락입니다. 매주 연락을 주는 분은 코로나19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 이승희 사무국장. 2021년 4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 후 사지마비 증상이 나타났던 간호조무사의 남편이기도 합니다. (▶관련기사: [코로나 비하인드] 접종 후 사지마비 간호조무사, 그 후 9개월)

처음엔 매주 토요일 서울에서 열리는 촛불집회가 전부였는데, 이후 광화문에 천막분향소를 설치했고, 집회와 시위의 범위도 전국으로 넓어졌습니다. 2주 전 주말엔 토요일은 서울에서 백신 피해자 추모집회를, 일요일엔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가 있는 양산으로 향하기도 했습니다.

전국을 떠도는 거리에서의 삶이 쉬울 리 없습니다. 백신 접종 후 이상반응으로 피해를 입기 전까진 이들의 삶도 평일은 일터에서, 주말은 가족과 함께 여유를 즐기는 지극히 평범한 모습이었습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는 끝났다? 우리는 아직 거리에 있다"

광화문 청계광장에 천막 분향소를 처음 만들 때 불던 겨울 칼바람은 사라졌고, 이제 한여름 무더위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누구도 이들에게 '거리에 나가라'고 등 떠민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기한 없는 투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 마음은 어떤 것일까요. 이승희 국장을 통해 전해 받은, 백신 접종 후 남편을 잃은 아내의 글에서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치료받고 나올 수 있다는 희망이라도 있어 그나마도 부럽네요. 하루아침에 말 한마디 없이 떠나보낸 분들은 지옥이 따로 없어요. 웃는 것도 미안하고 먹는 것도 죄스럽고 입는 것도 사치 같고 자는 것 또한 고통입니다. 작년 12월 19일 이후 방에서 편하게 잠 한번 안 잤어요. 매일 거실에서 쪽잠 자요. 편하게 잠들면 제가 해준 게 없어 더 미안하고 죄짓는 것 같아서요."

백신피해자가족협의회는 새 정부 출범에 큰 기대를 걸었습니다. 지난 정부에서 백신 부작용에 대한 인과성 인정 범위가 소극적으로 인정됐고, 피해 보상을 받기도 어려웠다고 주장하며 새 정부가 좀 더 폭넓게 인과관계를 인정하고 피해보상도 적극적으로 해달라고 요구해왔습니다. 구체적으로는 ▲백신 부작용 치료비 선 지급-후 정산 ▲백신 부작용 치료 전담병원 지정 ▲백신피해자특별법 제정 ▲이상반응 피해조사 심의 내용 투명한 공개 등입니다.

윤석열 정부의 대선 당시 대표 공약에도 '백신 부작용 피해 회복 국가책임제'가 포함돼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바뀐 건 없습니다. 새 정부는 출범 100일 안에 백신 이상반응 피해 관련해 심의절차를 간소화하고, 이의신청 기회를 확대하고, 피해보상센터를 설치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가시화된 건 없습니다. 지난 26일 질병관리청은 관련 질의에 "심의 절차 단축을 위해 노력 중이며, 이의 신청 기회 확대를 추진 중이다. 피해보상센터 설치는 관계부처 협의 중에 있다"는 모호한 답변만 내놨습니다. 가족들이 바라고 있는 '백신피해자특별법 제정'도 대선 과정에서 여야 대선후보가 모두 힘주어 말했던 내용이지만, 대선이 지나고 또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지금의 국회에선 이 문제를 우선적으로 논의할 여유나 의지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코로나 비하인드] "코로나는 끝났다? 우리는 아직 거리에 있다"

'코로나 피해'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

여전히 매일 수만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지만 예전과 같은 두려움이나 관심은 줄어든 게 사실입니다. 2년여의 '비정상적 체제'가 하나씩 정상화되고 있고,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익숙해진 탓도 있습니다. 코로나 소식이 뉴스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줄고 있습니다. 매일 톱뉴스로 코로나 소식을 전하던 게 불과 몇 달 전까지 일인데, 요즘은 리포트 한 개로 갈음이 될 때도 많은 게 사실입니다.

1월부터 매주 연재해온 <코로나 비하인드>도 이번 편으로 마무리를 합니다. 약 5개월 동안 20편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과 나눠왔습니다. 마지막이지만, 아직 거리에 남아 해결되지 못한 과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의 목소리를 다시 한번 담아내고 싶었습니다. 여전히 남아 있는 과제를 외면하고 지나간다면 또다시 같은 피해를 반복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코로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또 다른 종류의 감염병이 언제 우리의 삶을 흔들지 알 수 없으니까요.

그동안 <코로나 비하인드>에 다양한 제보와 애정을 보내주신 독자들께 감사 인사드립니다.

(취재 : 박수진, PD : 김도균, 일러스트 : 김정연, 제작 : D콘텐츠기획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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