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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술병에는 왜 칼로리 표시가 없을까?

상반기부터 주류 영양성분 표시 의무화

[취재파일] 술병에는 왜 칼로리 표시가 없을까?

'라이트' 맥주의 배신…칼로리는 비밀?

하루의 피로를 한 잔 술에 떨쳐내야만 할 것 같은 퇴근길. 조금이나마 양심의 가책을 덜어보려 택한 건 칼로리가 33% 낮다는 '라이트'(Light) 맥주였습니다. 차라리 안 마시면 몰라도 기왕 마신다면 다이어트에 도움이 되면 좋으니까….그렇게 마신 맥주가 모르긴 몰라도 수백 캔은 될 것 같습니다. 차곡차곡 늘어나는 뱃살은 그저 나이 때문인 줄 알았지, 내 사랑 라이트 맥주를 의심해보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요, 라이트 맥주 열량도 그다지 가볍지 않답니다. 배신감이 몰려옵니다.

100ml당 30㎉ 이하인 주류에는 '라이트'라는 명칭을 쓸 수 있습니다. 작은 캔 맥주 용량은 355㎖ 정도. 대표적인 라이트 맥주인 카스 라이트의 열량은 100㎖당 27㎉, 500ml 한 캔에 135㎉ 정도로 추정됩니다. 일반 맥주 (500㎖ 기준 236㎉)보다는 열량이 낮지만, 콜라 한 캔(500㎖ 기준 150㎉)과 맞먹습니다. '라이트'라기엔 꽤 열량이 높죠.

다른 술은 어떨까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소주(360㎖)와 막걸리(750㎖)는 각각 408㎉, 372㎉입니다. 간단히 한 잔씩 식사에 곁들이기만 해도 대략 밥 한 공기씩을 더 먹는 셈입니다. 당류 등 첨가물이 들어간 술은 열량이 더 높습니다. 도수가 높은 고량주는 100㎖가 276㎉, 위스키는 237㎉, 보드카는 295㎉였습니다.
 

식약처 "업계 자율에 맡겨"…5년 흐른 지금은?

문제는 눈 씻고 찾아봐도 열량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고열량인데 왜 표시하지 않는 걸까요. 2017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주류 자율영양표시를 위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주류 업계에 권고했지만 영양성분을 고지하는 곳은 없었습니다. 주류업계 입장에선 굳이 칼로리를 표시해서 얻을 이익이 없다고 판단했겠지요. 왜 업계 자율에 맡겼는지 식약처에 물었습니다. 식약처 관계자는 "2017년 당시에도 주류 영양성분 표시가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검토했지만 외국에서 주류 영양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가 없었고, 또 주류 업계 의견도 반영해서 당시에는 가이드라인만 배포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렇게 5년이라는 시간이 또 흐른 겁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칼을 빼들었습니다. 이르면 상반기, 늦어도 올해 가을부터는 국내에서 판매되는 모든 주류에 칼로리를 비롯한 영양성분을 찾아볼 수 있도록 관련 고시를 개정합니다. 각종 사건사고와 성인병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도 술에 대한 소비자 알권리가 지나치게 위축되어있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열량뿐만 아니라 당과 콜레스테롤 등의 영양성분 표시도 함께 검토한다네요.

물론 "누가 술 마실 때 열량 따지냐, 도수 따지지."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열량 비교도 좋지만 두 잔 마실 걸 한 잔으로 줄이는 게 건강에 도움이 되겠지요. 다이어트를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은 없겠지만, 그 칼로리가 비밀에 부쳐져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이제 술 사러 갈 때, 포장지에 적힌 영양성분 확인하는 분들이 많아질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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