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SDF 다이어리] 나의 문어 선생님과 피터 싱어

타자의 고통에 공감하고 있나요?

관련 이미지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을 보고 말았습니다. 안주로 아껴둔 문어 다리가 아직 냉동실에 많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당분간 문어를 먹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다큐멘터리 <나의 문어 선생님>은 '사람과 문어의 따뜻한 정서적 교감', '우정'에 대한 얘기입니다. 사람과 문어의 우정이라니… ('SDF다이어리ep.85 : 연말엔 이 콘텐츠 어떠세요?'에서 추천하기도 했던 콘텐츠입니다.)

관련 이미지

슬럼프에 빠진 감독이자 다이버 크레이그 포스터가 고향인 남아프리카의 바닷속에서 한 문어를 만납니다. 1년 동안 매일 '그'를 관찰한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 문어는 집요한 전략가입니다. 먹이 타깃으로 삼은 게가 잽싸게 바위틈에 숨자, 숨죽여 기다립니다. 온몸의 색과 질감, 형태를 외부 환경과 동일하게 바꿔 위장한 채. 목표물이 방심하고 모습을 드러내자 몸을 그물 마냥 활짝 펴 덮칩니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문어는 강아지나 고양이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감독이 자신을 헤치지 않는 '괜찮은 종'이라는 걸 알게 된 걸까요. 문어는 감독에 팔을 뻗어 탐색합니다. 호기심 많은 문어는 카메라도 궁금합니다. 그렇게 감독과 문어의 교감의 농도가 짙어집니다. 포식자 파자마 상어에 공격을 받아 문어를 다리가 뜯겨 나가는 순간, 감독 크레이그 포스터도, 보는 사람도 안타까움에 미간이 찌푸려집니다. 수일 동안 안식처에서 회복하려 안간힘을 쓰는 문어의 눈이 줌인될 때 그 고통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마침내 바위틈에서 나온 문어. 뜯겨 나간 다리 자리에서 가늘지만 새 다리가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애썼구나.'

***

관련 이미지

피터 싱어의 '왜 비건인가(WHY VEGAN?)'도 '동물의 고통'에 대한 얘기입니다. 프린스턴대학교 교수인 피터 싱어는 지난해 SBS D포럼의 연사로 함께 해주셨죠. 싱어 교수는 197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동물 해방'을 주창해왔습니다. ( 지난해 포럼에서는 '동물 해방' 보다, 50년 동안 변함없이 '동물 해방'을 주장해 올 수 있었던 힘에 대한 얘기를 나눴습니다.) 이 '동물 해방'의 논리 과정을 쭉 따라가 보면 '동물의 고통'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큰 논리 줄기가 '동물도 인간처럼 쾌락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 인간이 인간만의 이익을 위해 동물을 차별하거나 억압, 착취할 수 없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고통을 알아차리게 하는 외적 신호들을 다른 종, 특히 포유류나 조류와 같은 '고등' 동물에게서도 볼 수 있다. 몸부림, 짖는 소리, 또는 다른 울음소리, 고통을 피하려는 시도, 그리고 여러 가지 다른 행동 신호가 존재한다. 이러한 동물이 우리와 생물학적으로 유사하다는 것, 우리와 비슷한 신경 체계를 갖고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는 것 또한 알 수 있다."
<'왜 비건인가': 동물 해방> 중에서

사실 서양의 근대 철학에서는 인간을 도덕적으로 우월한 존재로 보고 인간의 동식물을 이용할 권리를 인정합니다. 성경 창세기에서도 인간은 신의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묘사하고 있죠. 그런데 24살의 피터 싱어가, 그러니까 무려 50년 전에 당시 '상식'에 이의를 제기한 겁니다. 데카르트와 칸트 같은 근대 철학적 전통이 인간에게 도덕적으로 우월한 지위를 부여함으로써, 동물을 학대하고 처분할 수 있는 구실을 줬고 이것이 바로 '종차별주의'라고 비판했습니다. 피터 싱어 스스로도 당시 자신의 주장이 사람들에게 기괴하게 받아들여졌다고 말합니다.

피터 싱어는 20대 때 친구와 '스파게티'를 먹으러 갔다가 '동물해방'에 영감을 얻게 됐습니다. 캐나다 출신으로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철학을 공부하던 리처드 케션과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이 친구가 점원에게 "스파게티 소스에 고기가 들어간 것을 확인하더니 메뉴로 샐러드를 골랐다"는 겁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채식주의자를 만나 본 적도 없었던 피터 싱어. 친구에게 "왜 고기를 먹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리처드는 자신이 채식주의자"라며 "동물이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동물이 도축되는 것은 알았지만 그전까지는 풀밭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줄 알았던 피터 싱어는 이후 현대 축산 방식에 대해 알아봤고, 상상했던 것보다 심각한 실태를 알게 돼 충격에 빠집니다.
 
"닭 일곱 중 하나는 열탕 탱크에 들어갈 때 살아 있었다. (…) 산 채로 끓여졌다.
그들은 퍼덕거리고, 소리지르고, 발길질하고, 머리에서 눈알이 튀어나온다"

<왜 비건인가: 닭을 대하는 윤리적방식?> 중

" 도축의 과정은 비명을 질러대는 돼지가 우리에서 나무로 된 두꺼운 판자 위로 떠밀려가는 데서 시작된다. 일꾼들은 돼지의 머리에 전기 쇼크를 주어 기절시킨다. 그들이 쇼크로 넘어지면 일꾼들은 서둘러 돼지를 컨베이어 벨트에 거꾸로 매단다. 이때 그들의 뒷다리를 금속 죔쇠로 조인다. 간혹 기절한 돼지가 컨베이어 벨트에서 떨어져서 의식을 회복하는 경우가 있다. (…) 일꾼들은 기절하거나 여전히 꿈틀거리는 돼지들의 경정맥을 칼로 찔러 대부분의 피가 몸에서 빠져 나가게 하는 방법으로 도축을 한다."
<동물 해방: 제3장 지금 공장식 농장에서는…>

이런 사육 방식을 두고 세계적인 농장동물 복지 연구소를 설립한 존 웹스터 교수는 "인간이 인간 외 지각 있는 존재에 행하는 가장 끔찍하고 조직적인 비인간적 행위"라고 표현했습니다. 피터 싱어는 식용 동물이 어떤 삶을 사는지 알게 되면서 동물을 대하는 윤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SBS D포럼 2021에서 피터 싱어는 "육류 없이도 충분히 영양섭취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동물의 고통'을 줄이는 첫걸음으로 동물성 식품의 섭취를 중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앞서 얘기했듯, 피터 싱어가 처음 이 주장을 할 때만 해도 비웃음을 샀지만, 지금은 동물을 반려의 대상 생각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됐습니다. 채식주의자들 또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유럽연합을 비롯한 캘리포니아 미국 내 몇몇 지역에서 공장식 사육을 금지하는 곳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피터 싱어의 주장이 별나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인간의 권리를 동물에까지 확대하라는 건 무리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피터 싱어의 '동물 해방'은 '동물을 왜 보호해야 하는가'라는 (지금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철학적 논의의 시발점이 됐다는 점, 나아가 동물 보호를 사회 운동으로 확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나아가 지속 가능한 문명을 위해 지금 우리가 통찰해야 할 주제를 던져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채식을 할 것인가?' 여전히 개인이 선택할 문제입니다. 제게 묻는다고 해도 답이 쉽지 않습니다. 사실 '왜 비건인가'를 읽고 채식 도전도 해봤으나, (채식 '선언'이라고 하는 것이 맞겠습니다;;) 점심 메뉴 선정이 어려워 후일을 기약했습니다. 다만, '끊지는 못해도 줄여는 보겠다'거나 '공장식 축산'에 대한 문제는 잊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동물의 고통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피터 싱어 메시지는 '인간의 선한 마음'을 툭 하고 건드려주는 것 같습니다. 동물은 물론이고 타자 고통, 어려운 처지를 모른 체하기 어려운 그 인간의 선한 본성 말입니다. 문어가 파자마 상어로부터 다리를 뜯길 때 안타까워서 저절로 몰입했던 그 마음도 그 시작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새해가 밝았네요. 그간 바빠서, 감정 노동이 버거워서 다른 이의 마음을 모른 체한 적은 없었는지 돌아봐야겠습니다.

<SBS D포럼 피터 싱어 편 몰아보기>
SBS D포럼 2021 피터 싱어 교수 세션 다시 보기
SBS D포럼 2021 피터 싱어와의 질의 응답
피터 싱어-동물해방 운동의 선구자가 전하는 진정한 '고통의 연대'

'동물 좋아하는 분'에 추천하는 피터싱어 강의 전문(원문포함)
 
새해 마음에 새기면 좋을 피터 싱어 메시지

우선, 스스로 사고하고, 이런 소중한 능력으로 여러분만의 생각을 만들어보세요.
군중심리에 휩쓸리거나 유행 또는 대세에 따라가려고만 하지 마세요.
과연 옳은 건지 자문하고, 옳으면 여러분 삶의 일부로 만드세요.
여러분의 가치관과 삶이 조화를 이루도록 해보세요.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런 깨어있는 비전을 지닌 정치 지도자에 투표하세요

(글: 채희선 기자 sdf@sbs.co.kr / hschae@sbs.co.kr)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