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되어야 할 관행들은 '불법'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외려 지극히 '합법'이어서 문제였다. 불법이 아닌 합법이었기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치부됐고, 관행 개선의 책임은 '법 개정'으로 쉽게 전가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검·경은 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 비례성을 벗어났다는 비판받는 경우가 잦았고,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자조 속에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의 전범으로서 공수처 설립이 논의됐다.
"과거 관행 답습 않겠다"고 밝혔던 공수처장
그런데 '통신자료 조회 논란' 속에 국회에 출석한 김 처장은 "합법이다", "왜 우리에게만 그러냐"는 말을 방패 삼아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의 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다. 특정 정당 소속 국회의원 및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통신자료 조회, 특정 사안을 취재한 기자 및 기자 가족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가 정치권에선 '불법', '사찰'이라는 프레임 속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합법이냐 불법이냐', '사찰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합법'이라고 포장된 잘못된 관행을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이 되겠다던 공수처가 '답습'하는 것이 옳은지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통신자료 조회'라는 해묵은 논란
2017년 5월엔 데이비드 케이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해당 법 조항에 대한 우려의 의견을 헌재에 전달하기도 했다. 케이 특별보고관은 제3자의 의견서를 통해 " 국가기관이 사전영장 제시 없이 이용자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적법성, 필요성 및 비례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익명 표현 및 통신의 자유를 익명 표현 및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할 대한민국의 의무에 반한다"고 밝혔다.
'합법', '임의적 조항'이라는 형식의 방패 뒤에 숨은 공수처장
김진욱 공수처장이 임명될 당시, 그의 수사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한편으로 헌재 연구관을 지내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이 되어야 할 공수처장으로서 적임자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발 사주 의혹' 등에 조직의 명운을 건 듯 한 모습, 특정 사건에 대한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 등의 모습은 검찰 개혁의 근거가 됐던 잘못된 수사 관행의 답습에 가까워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절제되고, 자기성찰적인 수사를 하며, 과거 관행을 답습하지 않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을 만들겠다는 김진욱 공수처장. 법조계에서 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에게 '날카롭고 위협적인' 수사기관이 되어야 할 공수처가 국민 일반에 대해 '거칠고 위험'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까. 공수처는 아마추어냐 아니냐는 수사 실력에 대한 질문이 아닌 현재 조직의 운영 방식과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