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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관행 답습 않겠다"던 공수처장, '합법'이란 형식 뒤에 숨다

[취재파일] "관행 답습 않겠다"던 공수처장, '합법'이란 형식 뒤에 숨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생긴 건, 단지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 공수처 설립 배경에는 검찰, 나아가 경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에 대한 반성이 있었다. '먼지털이식 수사'라고 불리는 저인망식 수사, '줄소환'이라고 일컬어지는 과도한 수사, '목표(타깃)를 정한 수사'라는 의도성이 의심되는 결과 지향적인 수사 관행의 극복이 공수처 설립의 기저에 있었다.

극복되어야 할 관행들은 '불법'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외려 지극히 '합법'이어서 문제였다. 불법이 아닌 합법이었기에 '관행'이라는 이름으로 쉽게 치부됐고, 관행 개선의 책임은 '법 개정'으로 쉽게 전가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검·경은 수사의 필요성과 상당성, 비례성을 벗어났다는 비판받는 경우가 잦았고, '중이 제 머리는 못 깎는다'는 자조 속에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의 전범으로서 공수처 설립이 논의됐다.
 

"과거 관행 답습 않겠다"고 밝혔던 공수처장

때문에 김진욱 공수처장인 취임사를 통해서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이 되겠다"고 반복해서 다짐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기존 수사기관의 '합법적'이지만 잘못된 수사 관행이 공수처 설립 배경의 한 축이었기에, 김 처장이 '자기 성찰적 권한 행사', '품격 있고 절제된 수사'를 강조한 것 역시 필연적인 일이었다. 김 처장은 인사청문회 서면 답변에서 "기존 수사 관행이 국민의 형사사법 시스템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비판을 명심하고, 어떤 경우에도 과거 관행을 답습하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런데 '통신자료 조회 논란' 속에 국회에 출석한 김 처장은 "합법이다", "왜 우리에게만 그러냐"는 말을 방패 삼아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의 장으로서의 책임을 방기했다. 특정 정당 소속 국회의원 및 인사들에 대한 대규모 통신자료 조회, 특정 사안을 취재한 기자 및 기자 가족에 대한 통신자료 조회가 정치권에선 '불법', '사찰'이라는 프레임 속에 공방이 벌어지고 있지만, 문제의 본질은 '합법이냐 불법이냐', '사찰이냐 아니냐'에 있지 않다. '합법'이라고 포장된 잘못된 관행을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이 되겠다던 공수처가 '답습'하는 것이 옳은지에 문제의 본질이 있다.

김진욱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통신자료 조회'라는 해묵은 논란

수사기관의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는 우리 사회의 해묵은 논쟁이다. 박근혜 정부 국가인권위는 2014년 2월 18일, 수사기관의 통신자료 조회를 가능하게 한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대한 삭제를 권고했다. 영장 없이 이뤄지고, 사후에 당사자에게 통지되지 않는 통신자료 조회가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2016년 제기되자 국가인권위는 헌법재판소에 해당 조항은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제출하기도 했다.

2017년 5월엔 데이비드 케이 유엔 의사·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해당 법 조항에 대한 우려의 의견을 헌재에 전달하기도 했다. 케이 특별보고관은 제3자의 의견서를 통해 " 국가기관이 사전영장 제시 없이 이용자 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적법성, 필요성 및 비례성의 원칙에 반한다"며, "익명 표현 및 통신의 자유를 익명 표현 및 통신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아야 할 대한민국의 의무에 반한다"고 밝혔다.
 

'합법', '임의적 조항'이라는 형식의 방패 뒤에 숨은 공수처장

김진욱 공수처장은 전기통신사업법 조항에 대한 오래된 논란을 누구보다 잘 아는 위치에 있었다. 헌법소원이 제기되고 인권위와 유엔 특별보고관의 의견서가 헌재에 제출될 당시 헌재 연구관으로 재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당 법 조항에 대한 논쟁과 수사기관의 자료 제공 요구에 사업자들이 거의 기계적으로 따르고 있는 현실도 잘 알고 있을 김 처장은 해당 조항이 강제적 규정이 아닌 임의적 규정 아니냐는 여당 의원의 질의에 동의하며, "합법"이라는 말에 이어 다시 형식이라는 방패 뒤에 숨어버렸다.

김진욱 공수처장이 임명될 당시, 그의 수사 경험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한편으로 헌재 연구관을 지내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이 되어야 할 공수처장으로서 적임자라는 평가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고발 사주 의혹' 등에 조직의 명운을 건 듯 한 모습, 특정 사건에 대한 광범위한 통신자료 조회 등의 모습은 검찰 개혁의 근거가 됐던 잘못된 수사 관행의 답습에 가까워 보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절제되고, 자기성찰적인 수사를 하며, 과거 관행을 답습하지 않는 인권 친화적 수사기관을 만들겠다는 김진욱 공수처장. 법조계에서 검사 등 고위 공직자들에게 '날카롭고 위협적인' 수사기관이 되어야 할 공수처가 국민 일반에 대해 '거칠고 위험'해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까. 공수처는 아마추어냐 아니냐는 수사 실력에 대한 질문이 아닌 현재 조직의 운영 방식과 존재 이유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 직면했다.

(사진=국회사진기자단,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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