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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S] 양효진이 말하는 '도쿄, 그 여름 추억' ②…"한 편의 영화를 찍은 느낌"

2021년 여름, 여자 배구 대표팀은 온 국민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약체라는 평가를 딛고 '원팀'으로 똘똘 뭉쳐 도쿄올림픽 4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동메달결정전에서 강호 세르비아에 패하면서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5년 만의 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여자 배구 대표팀이 보여준 투혼과 열정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라커룸S>는 도쿄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 양효진 선수를 만나 그 여름의 추억을 다시 회상했습니다.

1편에 이어
▶ [라커룸S] 양효진이 말하는 '도쿄, 그 여름 추억' ①…"내 인생 최고의 한일전"

양효진
양효진

- 한일전 승리로 8강 진출을 확정했잖아요. 선수촌에서 조촐하게나마 회식이라도 했나요?
 
"회식할 틈도 없었고, 시간도 정말 없었어요. 매일 도시락 먹고, 쉬고, 잠자고, 경기하고.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스케줄이 계속 똑같았어요. 시합이 계속 있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어서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어요. 올림픽 끝나고 한국에 돌아와서 시간을 보냈죠."

8강 진출에 성공한 대표팀은 세르비아와 예선 마지막 경기에 힘을 빼고 임했습니다. 세리비아에게 패했지만, 3승 2패 조 3위의 성적으로 8강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추첨 결과 강호 터키와 8강에서 맞대결을 펼치게 됐습니다. 주장 김연경과 터키의 인연이 화제였습니다. 오랜 기간 터키 리그에서 뛴 김연경은 터키 대표팀의 주요 선수와 가까운 사이였는데, 특히 주장 에다 에르뎀은 페네르바체 시절 각별한 동료였습니다. 서로를 잘 아는 만큼 경기는 치열한 접전으로 흘러갔고, 승부는 마지막 5세트에서 갈렸습니다. 라바리니 감독이 원포인트 서버로 투입한 박은진이 터키의 리시브 라인을 흔들면서 2연속 득점에 성공했고, 승기를 잡았습니다. 김연경이 마지막 득점을 꽂으면서 대표팀은 9년 만이자 역대 4번째 올림픽 4강 무대에 올랐습니다.

- 8강 터키전 지금 생각해도 너무 짜릿한데요. 경기를 치렀던 선수 입장에선 정말 피 말리는 승부였을 거 같아요.
 
"처음에는 이기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4세트 내주고 5세트 가면서 힘들다는 생각도 들었고. 정말 경기 중 수시로 왔다 갔다 했던 거 같아요. 5세트 박은진의 서브로 리드를 잡으면서 '이길 수 있겠다'는 느낌을 받은 거 같아요. 터키는 강팀이잖아요. 진짜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내내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밀어붙이니까 터키가 약간 당황한 게 보이는 거예요. 그래서 끝까지 해보면 될 거 같다는 생각에 정말 정신없이 게임을 한 거 같아요. 승리를 확정하는 순간 정말 감격이었죠. 진짜 좋았던 거 같아요.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죠."


- 2012년 런던 대회 이후 다시 4강 진출에 성공했지만, 더 큰 목표가 남아 있었습니다. 런던 때 아쉽게 놓친 메달을 따내겠다는 각오가 컸었죠.
 
"솔직히 다시 4강에 올라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못 했잖아요. 우리가 정말 잘 해냈구나 하는 대견한 마음이 들었어요. 그런데 사람이 마음이 참, 그러면서도 이게 뭔가 더 욕심을 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여기까지 온 거 진짜 메달 한 번 목에 걸어보자'고 다짐했죠."

- 4강 상대는 세계 최강 브라질이었습니다. 그런데 경기를 앞두고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어요. 탄다라 카세이타 선수가 도핑에 적발됐다는 소식이 들렸잖아요. 선수들 동요는 없었나요?
 
"동요되지 않으려고 서로 일부러 노력했던 거 같아요. 브라질은 백업 선수도 기량이 워낙 좋기 때문에 그 선수 한 명이 없다고 해서 크게 약해지는 건 아니거든요. 계속 이야기를 하면서 동요 안 되려고 했어요. 뭔가 될 거 같은데 되지 않으면 오히려 상실감이 커지니까요. 그런데 솔직히 사람 심리가 몰수패가 선언돼 결승에 그냥 올라가면 너무 좋잖아요. 이쪽으로는 '아닐 거야 경기에 집중하자'고 해도, 저쪽으로는 '아 몰수패가 나올 수도 있는 건가' 생각하면서 좀 어수선했죠."

- 결국, 몰수패는 없었고 우리는 브라질과 4강전을 치렀습니다. 예선에서도 겪었지만 기량 차이가 컸어요. 어떤 점이 달랐나요?
 
"빨라요. 빠르기까지 한데, 공격수가 한 타임을 보고 때려요. 그래서 정말 어려웠던 거 같아요. 내가 블로킹 타이밍을 완벽하게 맞춰서 막았다 생각이 들면 가볍게 연타를 날려요. 안 막힐 거 같은 타이밍에 때리고. 정말 쉽지 않다는 생각이 계속 들었죠."

양효진 블로킹

비록 결승 진출은 실패했지만, 대표팀은 다음을 준비했습니다. 강호 세르비아와 마지막 동메달결정전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직전 VNL에서 승리를 거둔 전력도 있어 접전이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보스코비치를 앞세운 세르비아의 전력은 예상보가 훨씬 강했습니다. 대표팀은 온힘을 다했지만, 세트스코어 3-0으로 패하고 메달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 세르비아와 경기에서 패하고 인상 깊었던 건 누구도 울지 않았다는 점이에요. 모두 밝은 표정으로 사진 찍고, 서로를 격려했죠. 어떤 마음이었나요?
 
"솔직히 상대 유럽 국가의 전력이 너무 강하잖아요. 신체 조건도 그렇고, 실력도 그렇고. 마지막에 덤덤하게 받아들인 거 같아요. 그냥 '아 끝났구나' 이렇게. 돌아보면 우리가 4강, 동메달결정전까지 올라온 게 정말 대단한 거예요. 서로가 서로를 봤을 때도 너무 고마운 마음이 컸어요. 각자의 열정, 스태프의 열정까지 모두 합쳐져서 대회 마지막 날까지 모두 코트에 서있었잖아요. 그래서 후회 없이 하고 온 거 같은 느낌이 들었던 거 같아요."

- 동메달결정전을 끝으로 쉼 없이 달려온 대표팀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어떤 생각이 들던가요?
 
"뭔가 좀 이상했어요. 대표팀 유니폼을 처음 입은 뒤 거의 15년 정도 뛴 거 같은데 모든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흘러가더라고요. 매순간 힘들었던 거 같아요. 안 힘들었던 기억이 없던 거 같은데. 한편으로 이 선수들과 함께 했기 때문에 너무 즐거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제일 왼쪽 14번, 양효진 (사진=연합뉴스)

- 양효진 선수에게 태극마크는 어떤 상징이었나요?
 
"나의 성장. 성장인 거 같아요. 제가 계속 발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준. 솔직히 유럽 선수를 처음 상대하면 정말 힘들어요. 그런데 그 힘든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이나 루트를 찾았을 때 성취감이 엄청났어요. 우리 후배들도 다 능력이 있기 때문에 대표팀에서 성장하면서 좋은 결과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 마지막 도쿄올림픽은 어떤 의미로 남을까요?
 
"저의 대표팀 커리어의 마지막을 장식할 만큼 멋진 대회였다. 그냥 영화 한 편을 찍은 거 같아요. 매순간이 다 감동이었고, 감독님이 말하시는 그런 말들은 영화의 한 장면 대사 같았고.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즐겼던 오고 간 대화들은 계속 평생 기억 속에 남을 거 같아요."

- 양효진은 없지만, 여자 배구 대표팀에 대한 팬 여러분의 응원을 부탁드릴게요.
 
"사실 10년 전, 처음 시작할 때는 여자 배구는 비인기 종목이었어요. 지금은 정말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높은 인기를 구가하는 것도 알고 모든 게 감사할 따름이에요. 이제 저는 대표팀에 없지만, 후배들 많이 응원해주시고요. 저는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고 즐겁고 좋은 경기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끝까지 많이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2022년 임인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여자 배구 파이팅!"

태극마크 단 모습은 볼 수 없지만,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은 양효진은 진행형이다 (사진=현대건설 배구단 제공)

(영상취재 : 공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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