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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커룸S] 양효진이 말하는 '도쿄, 그 여름 추억' ①…"내 인생 최고의 한일전"

2021년 여름, 여자 배구 대표팀은 온 국민에게 기쁨과 감동을 선사했습니다. 약체라는 평가를 딛고 '원팀'으로 똘똘 뭉쳐 도쿄올림픽 4강 진출에 성공했습니다. 동메달결정전에서 강호 세르비아에 패하면서 1976년 몬트리올 대회 이후 45년 만의 메달 획득은 실패했지만, 여자 배구 대표팀이 보여준 투혼과 열정에 온 국민이 박수를 보냈습니다. <라커룸S>는 도쿄올림픽 4강 신화의 주역 양효진 선수를 만나 그 여름의 추억을 다시 회상했습니다.

양효진

- 벌써 5개월이 됐지만, 지금도 생생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도쿄 입성 당시 어떤 마음이었나요?
 
"뭐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은 컸는데, 사실 걱정도 많았어요. 직전 VNL 대회에서 부진하기도 했고, 뭔가 뚜렷하게 갖춰지지가 않았어요. 그래도 마지막 대표팀 무대가 될 수 있는데, '뭐라도 해보고 가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도쿄행 비행기에 오른 거 같아요."

- 첫 훈련 날이 기억나요. 우리가 마지막 순서였는데, 훈련이 끝나고 모두 사진을 찍으며 추억 남기기에 여념이 없었죠.
 
"올림픽에 가면 사진을 많이 찍긴 하는데, 이번 도쿄는 조금 더 특별했어요. 진짜 마지막 올림픽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기장 안에서 계속 서로 막 사진 찍어주고, 먼저 '사진 찍자'고 그랬던 거 같아요."

- 시작은 좋지 않았습니다. 예선 1차전에서 브라질에 세트스코어 0-3으로 완패했었는데, 첫 경기를 마치고 어땠나요?
 
"아직 정리가 안 된 느낌이었어요. 상대가 물론 잘하긴 하지만, 우리가 가진 걸 못한 느낌이랄까요. 그러면서 '아 이거 정말 쉽지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더 굳게 먹었어요. 저뿐만 아니라 모든 선수가 그런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양효진

대표팀의 반등은 예선 2차전 케냐와 경기에서 시작됐습니다. 1세트 초반 케냐의 빠른 공격에 밀리자 라바리니 감독은 작전타임으로 분위기를 전환했고, 김연경과 김희진, 양효진의 공격을 앞세워 대표팀은 내리 3세트를 따내 도쿄올림픽 첫 승을 신고했습니다. 당시 앞선 경기가 늦게 끝나면서 대표팀은 밤 11시에 경기를 시작했고, 승리를 따낸 시간은 자정을 넘어 새벽 1시가 다 된 시각이었습니다.
 
"케냐와 경기가 터닝포인트였어요. 컨디션을 많이 끌어올릴 수 있었던 거 같아요. 자신감을 조금 찾기도 했고요. 가장 힘들었던 건 기다리는 시간이었어요. 밤 경기를 앞두면 보통 저녁을 먹지 않고 시합 준비를 하거든요. 그런데 언제 끝날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까 라커룸에서 처지지 않으려고 에너지바 먹고, 서로 '계속 깨어 있어야 해'라고 하면서 일부러 이야기도 많이 하고, 그런 식으로 계속 분위기를 끌어올렸던 거 같아요."

첫 승을 신고한 대표팀의 다음 상대는 중남미의 강호 도미니카공화국이었습니다. 직전 VNL에서 도미니카공화국에 완패를 당했던 만큼 쉽지 않은 경기가 예상됐습니다. 예상대로 박빙의 경기가 펼쳐졌습니다. 대표팀은 3세트까지 세트스코어 2-1로 앞서 승리를 눈앞에 두는 듯했지만, 4세트를 내주면서 마지막 5세트를 맞았는데요. 9-9 동점에서 김연경이 상대 공격을 혼자 뛰어올라 막아냈고, 이어 서브에이스까지 성공시키며 승기를 가져왔습니다. 14-12에서 박정아가 마지막 공격을 꽂아 넣는 순간, 모두가 코트로 뛰어나와 얼싸안고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었죠.
 
"저희가 직전까지 계속 졌기에 경기를 앞두고 걱정도 많았죠. 다들 '도미니카공화국은 못하지 않아?' 이렇게 생각하는데, 정말 강한 팀이에요. 저희가 진짜 100% 전력을 해야 이길 수 있는. 저희는 도미니카공화국을 무조건 이겨야 예선을 통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어요. 다음 상대 일본은 아무래도 홈 어드밴티지가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연경 언니가 정말 계속해서 푸시를 했던 거 같아요. 정신 차리고 똑바로 하자고. 라바리니 감독님도 계속 분석하면서 우리와 미팅도 자주 했고요. 저에게는 '도미니카공화국 선수들의 타점이 높으니까 타이밍을 잘 맞춰야 하고, 블로킹할 때 손을 들면 안 된다'고 알려주셨어요."

양효진

- 김연경 선수가 4세트 작전타임에서 한 말이 크게 이슈가 됐었어요.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고 소리쳤죠. 들었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연경 언니의 그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말 그대로 해야 된다 그 생각만 했던 거 같아요. 보시는 분들은 감동을 받으셨지만, 저희는 진짜 정신이 없었어요. '그래 맞다. 우리 지금 해야 하는데, 여기서 지면 끝이다. 끝장이다'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웃음) 그리고 5세트에서 본인이 직접 해결하는 모습을 보면서 전율을 느꼈죠. 연경 언니의 옆에 있으면 내가 점수를 안 냈지만 같이 만든 것처럼 에너지를 받아요. 그 에너지를 받아서 좋은 리듬을 만든 거 같아요. 12명이 다 같은 마음이었을 걸요."

예선 2승 1패로 8강 진출에 7부 능선을 넘은 대표팀의 다음 상대는 숙명의 라이벌 일본이었습니다. 일본을 잡으면 8강 진출을 확정할 수 있는 기회. 1승 2패에 머물던 일본 역시 우리를 이겨야 8강 진출 희망을 이어갈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앞선 경기에서 발목 부상을 당한 일본의 에이스 코가 사리나가 통증을 참고 코트에 설 정도로 절박했습니다. 숙명의 라이벌답게 경기는 치열한 접전으로 펼쳐졌습니다. 한국이 1, 3세트를 일본이 2, 4 세트를 가져가면서 마지막 5세트에 돌입했습니다. 접전 속에서 일본이 코가의 연속 득점으로 2점 차로 벌려 승기를 잡았고, 12-14로 매치포인트까지 몰린 상황. 그러나 대표팀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박정아의 연속 득점으로 14-14 듀스 동점을 만들었고, 일본의 범실로 역전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박정아의 마지막 공격으로 혈투에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3회 연속 올림픽 8강에 진출하는 순간이었습니다.

- 일본전 역전승은 지금 생각해도 너무 짜릿했습니다. 한일전은 늘 부담 속에서 치렀잖아요. 이번에도 같은 마음이었죠?
 
"그렇죠. 아무래도 많은 분이 보시고, 관심이 크다 보니 저희도 한일전은 무조건 이기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진짜 끝까지 '어떻게든 해보자. 해볼 만큼 해보자. 그렇지 않으면 우리 집에 못 갈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했으니까요. (웃음."

- 사실 코가 선수의 출전 여부가 불투명해서 유리할 거로 예상했는데, 예상을 깨고 코트에 등장했습니다. 선수들의 동요는 없었나요?
 
"솔직히 코가 선수는 우리와 경기에 못 뛸 줄 알았어요. 발목 부상이 컸기 때문에. 그런데 시합하기 전날 코가 선수가 걸어 다니는 걸 어떤 선수가 봤다는 거예요. 그래서 '에이 거짓말이지? 설마 시합을 뛰겠어?' 이렇게 생각했는데, 진짜 등장한 거죠. 당황하지는 않았어요. 뭐랄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픈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니까. 끝나고 코가 선수를 보는데 뭔가 좀 짠하더라고요."

양효진

- 정말 치열한 승부를 펼친 끝에 마침내 일본에 승리를 거두고 8강에 올랐습니다. 당시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겠죠?
 
"정말 너무 좋았죠. 지금도 보면 막 울컥할 거 같아요. 사실 제가 올림픽 경기를 끝내고 한국으로 오면 재방송을 한 번도 보지 않았어요. TV에서 재방송을 엄청 많이 해줬잖아요. 마음이 뭔가 아프고 뭔가 기분이 좀 그래서 항상 보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다녀온 건 정말 마음 편하게 보고 있는 거 같아요. 도미니카공화국과 경기를 마치고 분위기가 정말 좋았어요. 저희끼리 하는 말이 '이번 게임에 걸어. 걸어'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하는데, 진짜 모든 걸 걸고 서로서로 믿고 의지하면서 게임을 풀었던 거 같아요. 제 인생의 최고의 한일전이라고 생각해요"

2편에서 계속
▶ [라커룸S] 양효진이 말하는 '도쿄, 그 여름 추억' ②…"한 편의 영화를 찍은 느낌"

(영상취재 : 공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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