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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강경화 ILO 사무총장 후보의 '자소서' 톺아보기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ILO(국제노동기구)의 사무총장 후보로 출마했습니다. 노동계에서는 강 전 장관이 ILO 사무총장 자격이 없다는 비판이 나왔습니다. 강 전 장관이 ILO에 제출한 이력서와 출마선언문을 통해 국제노동기구의 수장이 될 자격을 갖췄는지 살펴보려 합니다.

강경화 전 장관 ILO 사무총장 출마 이력서

분단국가의 외교부 장관, 신북방 ‧ 신남방정책

강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분단국가인 한국의 외교부 장관으로서 신북방정책, 신남방정책을 이끌어왔다고 스스로 소개했습니다. 세 차례 남북정상회담과 싱가포르, 하노이에서 열린 남북미 정상의 만남 등에 대한 공로를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 회담의 결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겠지만 당시 외교부 장관으로서 남북미 관계에서 한국 정부의 대표로 상당한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일 겁니다. 하지만 ILO(국제노동기구)의 성격은 '국제기구'만 있는 게 아니라 '노동기구'라는 점도 고려해야합니다.
 

소득주도성장

사실 강경화 장관이 노동 분야에 대해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잘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력서를 살펴봤더니 크게 세 가지를 내세웠습니다. 먼저 첫 번째는 소득주도성장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대선 공약이었던 소득주도성장은 ILO의 '임금주도성장'에서 차용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때문에 ILO 사무총장 후보에 적합하다는 걸 내세우기 위해 강 후보는 이력서와 출마선언문에서 모두 소득주도성장을 중심적인 업적으로 강조했습니다.

외교부 장관으로 재직할 당시 강경화 후보가 소득주도성장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알려진 바 없습니다. 이력서와 출마선언문에는 장관으로서 국무회의에 참석해 소득주도성장을 논의했다고 나와있습니다. 경제부총리, 고용노동부 장관 등 주무부처 장관이 아닌 외교부 장관이었던 강 후보가 어떻게 소득주도성장에 관여했는지는 설명이 되어있지 않아 아쉬움이 남습니다.

또한 현재 소득주도성장은 사실상 실패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문재인 정부 후반기 들어서는 청와대나 여당도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언급을 잘 하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소득주도성장을 설계한 홍장표 전 청와대 경제수석, 김상조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 함께 공부한 소장 학자들(학현학파)마저 비판에 나선 바 있습니다.  ▶ [취재파일] '삼성 저승사자'는 왜 소득주도성장 비판에 나섰나
 

ILO 핵심 협약 비준

이번 정부 들어 한국은 ILO의 핵심 협약 8개 중 가입 30년 동안 비준하지 않고 있던 3개(98호, 29호, 87호)를 비준했습니다. 강 후보는 출마선언문에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관련 부처와 국회와 함께 성공적으로 ILO 핵심 협약 비준을 이뤄냈다고 자평했습니다.

한국은 여전히 ILO 회원국이 가입해야 하는 최소한의 기본이 되는 핵심 협약 중 105호는 비준을 못한 상황입니다. 105호는 강제노동 금지에 관한 협약인데, 한국은 여전히 파업을 했다는 이유로 처벌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파업 참가자에게 형법상 업무방해죄가 적용 가능합니다. 2011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 이전에는 파업 참가 자체를 일단 업무방해죄의 구성요건으로 보고 정당한 사유가 있어야 위법성을 배제했습니다. ILO 회원국 중 105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중국, 일본, 라오스, 브루나이, 미얀마, 통가, 동티모르 등 한국을 포함해 11개국입니다.

ILO는 105호 핵심 협약의 비준을 권고해왔지만 강 후보가 장관으로 있었던 이번 정부를 포함해 30년간 한국 정부는 외면해왔습니다. ILO 회원국으로서 기본적인 노동권 보호가 안 되고 있는 국가라는 뜻입니다. ILO는 파업에 대한 처벌을 강제노동으로 판단합니다. 노동자가 형사 처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파업이라는 기본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다면, 고용주에게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고 경제적으로 대등하지 못한 위치에 처합니다. ILO는 노예제나 예속 상태의 노동 뿐 아니라 이처럼 대등하지 못하고 불완전한 상태의 고용관계 또한 '강제노동'으로 판단합니다. 강 후보는 ILO가 규정한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는 국가의 장관 출신인 겁니다.

강경화 전 장관 ILO 사무총장 출마 이력서

재외공관 행정직 노조 설립 "자랑스럽다"

노동과 관련된 업적 세 가지 중 마지막으로 강 후보는 장관 재직 시절 재외공관 행정직 노조가 설립된 것을 꼽았습니다. 강 후보는 출마선언문에서 해당 노조 설립이 "자랑스럽다"며 본인의 경영 스타일이 '다양성에 대한 존중과 모든 직원의 존엄성에 확고한 바탕을 두고 있었다'고 썼습니다.

재외공관 행정직들의 노조(한국노총 전국노동평등노조 재외공관행정직지부)는 2018년 3월 설립됐습니다. 9개월 만인 2018년 12월에 한국 외교부와 단체협약을 처음 맺는 데 성공했습니다. 열악한 처우에 있었던 재외공관 행정직들에게 4대 보험 가입을 시키고 공무원과 복지 격차를 축소하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노조는 설립됐지만 여전히 조합원들은 노조 가입을 이유로 탄압이나 불이익을 걱정하고 있다고 하고, 최근 들어서도 대사 등의 행정직원 갑질이 계속 터져나오는 등 여전히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행사에서 남은 깐풍기를 가져오라는 몽골대사 갑질, 워싱턴대사관에서 행정직원에게 조카 어학연수 학원 등록이나 자녀 하교 문제 해결을 시킨 문제, 베이징대사관 무관이 행정직원에게 구두닦이를 시키고 욕설과 막말을 한 갑질 등. 강 후보가 외교부 장관으로 있을 당시 행정직에 대한 갑질 문제가 지속적으로 터져나온 바 있습니다.
 

민주노총 "누울 자리보고 다리 뻗어야"…반대 입장

민주노총은 강경화 전 장관의 출마에 대해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어야 한다"고 비판했습니다. ILO가 내세우는 '보편적 노동권 보장'과 이번 정부와 강 장관의 행보가 거리가 멀다는 이유입니다. 한국의 최대 노동단체인 민주노총의 위원장은 구속된 상태입니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감염병예방법 등을 어기고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입니다. 코로나19 위험 상황에서 집회 강행이 옳았느냐의 여부는 뒤로하고, 110만 명의 노동자를 대표하는 노총의 위원장에 대해 불구속 상태에서 수사와 재판을 받을 권리를 앗아간 점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ILO가 핵심 협약(87호, 98호)에 명시하고, 별도의 위원회를 만들 정도로 중요시하는 '결사의 자유'에 대해 ILO 사무총장 후보로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습니다.

주제네바대표부가 ILO에 보낸 강경화 후보자 등록서류

'노동선진국' 위상 강화할 것이라는 정부

국제기구의 특성상 아시아 최초, 여성 최초 사무총장 타이틀을 가질 수 있는 강 후보가 사무총장이 될 가능성은 없진 않아 보입니다. 사무총장에 대한 투표 또한 노동계의 입장만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노, 사, 정 삼자주의에 기반해 각각 대표 56명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과반수 득표로 결정됩니다.

정부의 설명대로 강 후보가 ILO 사무총장이 된다고 해서 한국이 저절로 '노동선진국'의 위상을 확고히 할 수 있진 않습니다. '노동선진국'은 100년이 넘게 쌓인 ILO의 협약과 논의들, 권고들을 한국 정부가 얼마나 제대로 지키고 이뤄내느냐에 달려있습니다. 강 후보의 이력서에는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1944년 ILO 필라델피아 선언)라는 ILO의 정신을 얼마나 고민해왔는지가 잘 보이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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