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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민주당이 보여준 국회 입법의 민낯

"지금까지 민주당이 싸워 오고 투쟁해 온 그 고귀한 가치를 스스로 부정하는 법안이 되지 않을까 이런 강한 염려를 가지고 있습니다. 정말 이 법안이 민주당스러운가. 어느 당이 집권을 하든 이 법안에 대한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할 겁니다." (2021. 8. 10 국회 문체위)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의 이 말은 그동안 표현의 자유를 강조해 왔던 민주당이 야당이었다면 찬성했겠냐는 물음에 가까웠다. 이 말에 민주당 의원들은 제대로 답변하지 못했다. 민주당 전용기 의원 등이 현재 법안은 국민을 위한 것이고, 때문에 민주당스러운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울림이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과거 민주당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찬성했을까

물론, 반대 질문도 가능하다. 현재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반대하고 있는 국민의힘이 여당이었더라면, 그리고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었다면 이런 법을 추진하지는 않았을까.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 시절 언론 장악을 시도했던 국민의힘 아니었나. 과거 전력이 있는 국민의힘이 여당이자 다수당이었다면 지금과 같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앞장서 통과시키지는 않았을까.

현재 언론이 안고 있는 문제점, 그리고 개혁 필요성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가짜 정보로부터 시민들의 피해를 막고, 건강한 여론 환경 조성 필요성에 반대할 사람은 없다. 하지만, 좋은 의도가 좋은 결과를 담보하는 건 아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말처럼, 선한 의도보다 중요한 건 긍정적 결과를 도출하는 것이다.
 

'테러방지법'을 폐지 않는 민주당과 권력의 속성

학계와 시민사회계, 언론계가 요구하는 건 긍정적 결과 도출을 위한 숙의다. 시민을 위한 제대로 된 법, 악용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는 법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느 당이 집권하든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할 것'이라는 앞선 윤상현 의원의 말처럼, 권력의 속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야당 시절 테러방지법 제정에 반대하며 장시간 필리버스터를 했던 민주당이 여당이자 다수당이 되자 법 폐지는 고사하고, 감염병과 관련된 조항을 추가하려 했던 것처럼 권력의 속성을 의심하고 악용 가능성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민주당 내부에서도 권력에 의한 악용 가능성은 제기됐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인 김두관 후보 캠프 측은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진보언론을 잡을까 우려하고 있다"며, "돈 많은 사람들이 소송을 남발하며 마구 휘두르는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고 페이스북에서 밝혔다. 또, "정권이 바뀌기라도 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통해 진보언론의 씨를 말리려 들 것이라는 공포가 있다"고 적었다. 현 정권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는 자기 확신에 좀 더 방점이 찍혀 있는 말이지만, 학계 등이 우려하는 핵심적인 부분이다.
 
언론중재법 통과 논란
 

민주당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학계 등은 법 취지에는 동의하면서 현재의 개혁이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데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반복된 정책에도 불구하고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부동산 정책에 대한 실정과 백신 수급 실패에 따른 비판을 피하고 기성 언론을 혐오의 대상으로 보는 핵심 지지층에게 호소하기 위한 방편으로 민주당이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이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런 의심은 여러 방면에서 조국 사태 전으로 바뀐 민주당의 입장에 근거한다. 개혁이 정략적 도구로 이용된다면, 그 개혁은 진영을 바꿔가며 개혁의 대상이 되는 악순환을 피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기도 하다. 특히, 정치가 법을 뛰어넘으면 법은 자의적으로 적용돼 그 피해는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걱정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진정한 개혁을 위한 필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참고 기사 : [취재파일] '검찰 개혁'과 '언론 개혁'의 전제 조건, [취재파일] 진영논리와 선택적 지각…조국 사태가 남긴 것)
 

'일관성'을 잃은 민주당의 언론 보도에 대한 태도

국정농단과 적폐 수사 당시 민주당은 언론 보도를 사실로 전제해 논평을 쏟아냈다. 국정농단 보도를 주도한 일부 언론의 보도에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언론 보도의 상당수는 일부 오보를 포함하고 있었다.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대로라면 '조작보도',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 등에 해당돼 '명백한 고의 또는 중과실' 추정 대상에 해당될 여지가 크고, 그 결과 징벌적 손해배상을 해야 할 수도 있다.

민주당이 정치적으로 활용하기도 했던 'MBC의 채널A 관련 보도'와 '한겨레의 윤석열 원주 별장 접대 의혹 보도'도 현재 개정안 대로라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하지만, 민주당이 언론보도로 인한 피해회복을 위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필요하다며 든 예시 중에 이런 보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과문해서인지 들어보진 못했다.

진정한 개혁을 원한다면 진영의 유불리가 아닌 모두를 위한 개혁을 이야기해야 했다. 하지만, 민주당, 나아가 열린민주당은 그러지 않았다.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서 'MBC 채널 A 보도' 등은 현재의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질문에 답변을 못 하고 쩔쩔매었던 김의겸 열린민주당 의원의 모습은 '모두를 위한 개혁'이라는 측면에서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언론, 표현의 자유, 신문, 기자, 탄압
 

한 달 새 수차례 법안 수정…"회의록 좀 읽어보고 말하라"

언론중재법 개정안과 관련해 또 하나 눈여겨보아야 할 점은 입법을 대해는 민주당의 태도다. 8월 10일,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은 국회 문체위 회의장에서 "이 법(언론중재법 개정안)을 8월 달에 통과시켜야 될 불가피한 사유가 있냐"고 물었다. 한 달 사이에 수차례 법안 내용을 바꿔 가면서까지 법안 통과를 밀어붙이는 이유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에 대한 민주당 문체위 간사 박정 의원의 답변은 "오래 끌었으니까"였다. 지난해해에 관련 법안이 발의돼 오래 논의해 왔으니까 빨리 통과시키자는 취지였다. 이런 취지의 주장은 8월 17일 문체위 회의에서도 민주당 의원 측에서 나왔다. 하지만, "(쟁점 사안은) 불과 한 달 전에 새롭게 들어와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라며 "회의록 좀 읽어 보고 말해 달라"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의 말을 민주당 의원들은 반박하지 못했다.
 

민주당 유력 정치인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법안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7월 27일 국회 문체위 법안심사 소위 과정에서 기존에 발의됐던 법안과 다른 위원회 대안이 만들어지며 소위를 통과했다. 이후 민주당은 8월 17일 법안을 수정해 상임위 회의 당일 제출했고, 8월 18일 민주당과 열린민주당 의원들만 참석한 안건조정위 회의 과정에서 또 한 차례 법안을 수정했다. 핵심 사안들이 불과 3주 정도 사이 2차례나 수정된 것이다.

이렇게 급하게 법안이 만들어져서 인지, 민주당 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법안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민주당 유력 대선 주자이면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통과를 강력 지지해온 이낙연 전 총리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가짜뉴스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유튜브는 왜 규제하지 않냐는 비판이 있다"는 취지의 진행자 질문에 "거기에 유튜브가 제외되어 있는 걸로 돼 있습니까?"라고 답했다. 법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 한 채,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강력히 지지해 온 셈이다.

민주당 미디어 특위 위원장을 맡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깊숙이 관여해 온 김용민 의원은 어제 최고위 회의에서 "문체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은 윤석열 후보 같은 정치인들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할 수 없도록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문체위를 통과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현직과 후보자(내정자 및 임명자)만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서 배제했다. 전직 검찰총장인 윤석열, 전직 국무총리인 이낙연·정세균, 전직 법무부장관인 추미애, 전직 국회의원인 유승민 등은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따르면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언론중재법
 

'해당하는 기사'는 어떤 기사를 말하는 것인가

급하게 숙의 없이 밀어붙이고 있어서 인지 모호한 단어들이 다수 포함된 현재의 개정안이 더욱 불명확한 방향으로 바뀌기도 했다. 일단 4개로 최종 정리된 고위 중과실 추정 조항 중에는 '정정보도·추후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를 별도의 충분한 검증절차 없이 복제·인용 보도한 경우'가 있다. '충분한 검증' 자체도 모호하기는 하지만, '정정보도에 해당하는 기사'는 무엇을 의미할까. 정정보도한 기사를 말한 것일까, 정정보도의 대상이 된 이전 기사를 말하는 것일까.

논의의 맥락을 살피자면 '정정보도의 대상이 된 이전 기사'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법안 내용으로만 봐서는 분명치 않다. 8월 17일 민주당이 상임위에 수정안을 제출하기 전의 대안에 있던 '정정보도 등 되기 전의 기사'가 훨씬 이해가 분명하다. 법안은 수정과 논의 과정에서는 점점 더 명확하게 바뀌어 가야 하지만, 급박한 추진 때문인지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반대의 길을 간 셈이다.
 

선택적 속전속결', 민주당이 입법을 대하는 태도

그런데 이렇게 군사 작전하듯 언론중재법 개정안 처리를 밀어붙이고 있는 민주당은 정말 시급을 요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시간 끌기로 비칠 정도로 입법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손실보상제 입법이 대표적이다. (참고 기사 : [취재파일] 코로나19 피해 보상 어려운 손실보상법, 그리고 국가의 책임) 민주당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겠다면 전례가 손에 꼽을 정도인 입법청문회도 진행했다. 입법청문회에서 손실보상제 소급 적용을 호소하는 소상공인들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민주당은 결국 소급 적용을 배제한 채 손실보상법을 통과시켰다. 국민들의 목소리를 듣기만 했을 뿐, 반영하지는 않은 것으로 시간벌기용 이벤트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당이 또 민주당했다"는 힐난까지 나왔다.

입법이 늦어지는 사이 소상공인의 피해는 누적됐고, 그만큼 소급 적용이 빠진 손실보상제에 따라 보상받지 못하는 피해는 증가했다. 정작 속도전이 필요한 사안에는 불필요할 수 있는 절차까지 집어넣어서 시간을 끌었던 민주당이 정작 의견 수렴이 필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속도전을 벌이는 지금의 모습을 일반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일까, 아니면 핵심 지지층을 향해서 우리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전술적 행동일까.
 
언론, 표현의 자유, 신문, 기자, 탄압
 

공인 또는 공적 기관의 거짓 정보를 인용 보도하면 징벌적 손해배상의 대상일까

민주당 의원들은 언론 보도의 폐해로 소위 '240번 버스 사건'을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 해당 사건의 시발점은 언론 보도가 아닌 1인 미디어나 커뮤니티 등이었다는 반박이 나왔다. 그러자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240번 버스는 1인 미디어로 시작했지만 기사로 확대·재생산돼서 문제가 된 것은 맞다."(2021. 8.10 국회 문체위)고 해명했다. 전 의원의 이 발언은 의미 있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짜 정보,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하는 정치인 등 공인이 있다고 하자. 그 사람을 방송에 출연시켜 거짓 정보를 이야기를 할 기회를 줬다면 그 방송사는 해당 발언이 전달된 것에 대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할까. 정치인 등의 거짓 주장을 인용해 보도한 언론사는 해당 보도에 대해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할까. 전 의원의 발언 취지에 따르면 모두 징벌적 손해 배상 대상이 되어야 마땅하다.

조국 사태 당시 조국 전 장관을 비롯한 가족과 주변 인물들이 발화한 잘못된 정보가 숱하게 언론에 보도됐다. 청와대는 재판부 설명 자료를 근거로 했다며 "환경부 사건은 '블랙리스트 사건'이 아니다'는 조작된 정보를 공개적으로 밝혔고, 이런 입장 표명은 대다수 언론에 보도됐다. (참고 기사 : [취재파일] 전·현직 청와대 대변인의 '블랙리스트' 정의, 그리고 '화이트리스트 ) 민주당 유력 대권 주자 중 일부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부인 정경심 교수의 2심 선고와 관련해 "사모펀드 관련해서는 (모두) 무죄가 났다"는 내용의 거짓 정보를 반복해 이야기해 언론에 보도됐다. 이런 보도들은 징벌적 손해 배상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

언론중재법 개정안만을 봤을 때 확실치 않다. 법안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대통령 등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방송에 송출했는데 그 발언이 거짓 정보였고, 그로 인해 피해자가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혔다면 해당 방송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 할 수도 있다. 이에 대해 언론중재법 개정안 마련에 주도적 역할을 한 민주당 의원은 SBS 기자에게 "취재원이 거짓말을 해 그것을 받아썼다고 해도 기자가 그 의도를 알고 썼는지 어떻게 알 거냐"며, "주장을 그냥 전달한 것만으로는 징벌적 손해배상 대상이 되기 힘들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답변은 한쪽의 이야기만 듣고 기사를 써서는 안 된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추진하는 민주당의 입장과는 상충한다. 이른바 받아쓰기를 막기 위해 도입했다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현주소다.
 

'위헌적 상황'을 피하기 위한 입법 가능할까

헌법재판소는 올해 2월과 3월, 명예훼손 형벌 조항과 관련해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 인정됨에 따라 민사상 손해배상을 통해 형벌을 대체하는 예방이나 위하효과를 달성할 수 있는 입법례와 달리, 우리나라의 민사적인 구제방법만으로는 형벌과 같은 예방이나 위하효과를 확보하기 어렵다"며 합헌 결정을 했다.

헌재의 결정은 징벌적 손해 배상을 형벌로서의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명예훼손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없으니 형벌 조항은 합헌이라는 취지다 . 현재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돼 시행되고, 그 시점에 사실적시 명예훼손 등 형벌 조항이 유지되고 있다면 '이중 처벌', '과잉 금지 위반' 등 위헌적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한편, 올해 3월 헌재는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법률은 규제되는 표현의 개념을 세밀하고 명확하게 규정할 것이 헌법적으로 요구된다'고 밝혔다. ' 불명확한 규범에 의한 표현의 자유의 규제는 헌법상 보호받는 표현에 대한 위축 효과를 야기하고, 그로 인하여 다양한 의견ㆍ견해ㆍ사상의 표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러한 표현들이 상호 검증을 거치도록 한다는 표현의 자유의 본래 기능을 상실하게 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현재 언론중재법 개정안에는 '보복', '반복', '조작' 등 불명확한 표현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현재의 법안대로 국회를 통과한다면 위헌적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는 상황. 학계와 시민사회계, 언론계 등이 숙의를 요구하는 건 이런 위헌적 상황의 발생을 막고, 시민 보호를 위한 제대로 된 법안을 만들자는 취지다. 하지만, 그동안 민주당의 입법 논의 과정을 봤을 때 이런 걱정과 우려가 반영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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