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SBS 뉴스 상단 메뉴

'이 책을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바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 -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북적북적]

'이 책을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바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 -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북적북적]


[골룸] 북적북적 287 : '이 책을 우리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과, 아이들의 아이들의 아이들에게 바친다'
시간과 물에 대하여 -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2018년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인근 흘라드바이르의 휠다 할머니댁. 할머니와 '나'와 '내 딸'이 함께 앉았다. '나'는 '딸'에게 산수 문제를 낸다.
 
"증조할머니가 1924년에 태어나셨으면 지금 연세가 어떻게 될까?"
"아흔 넷."
"넌 언제 아흔 넷이 될까?"
"2102년 아냐?"
"맞아. 그때 너도 지금의 할머니처럼 활기차길… 어쩌면 네가 지금 여기 앉아 있는 것처럼 2102년에도 너의 열 살배기 증손녀가 찾아와 이 부엌에 함께 앉아 있을지도 모르고."
"네 증손녀는 언제 아흔 넷이 될까?"
"2092년에 태어났으면? 2092에 94를 더하면… 2186년!"
"그래, 상상할 수 있겠어? 2008년에 태어난 네가 2186년에도 살아 있을 아이를 알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시간과 물에 대하여』中


1924년에서 2186년 사이에는 262년의 시간이 이어져 있다. 262년. 아이슬란드의 작가이자 환경운동가인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은 이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게 네가 연결된 시간의 길이란다. 넌 이 시간에 걸쳐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는 거야. 너의 시간은 네가 알고 사랑하고 너를 빚는 누군가의 시간이야." 우리에게 100년 뒤, 200년 뒤는, 어차피 나는 사라지고 없을, 내가 알 바 없는 시간이 아니라 내가 직접적으로 알고, 사랑하는 누군가가 숨쉬고 자라는 시간이다. 이 사실을 우리가 대체로 잊고 있을 뿐.
이번 주 북적북적에서 소개하는 책은 『시간과 물에 대하여(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지음, 노승영 옮김, 북하우스 펴냄)』다. 제목처럼 '시간'과 '물'(특히 빙하와 바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책에서 마그나손은 지구가 처한 위기를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채록한 빙하의 기록들-지금은 녹아 없어지고 있는-과 한국 독자들에게는 이국적이고 신비롭기도 한 아이슬란드 신화에 녹여 풀어낸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과학적 사실을 씨실과 날실처럼 직조해, 과학자들의 목소리를 우리에게 통역해주듯 아름답고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오늘 북적북적의 책 제목을 보고 혹 '환경 책인가 보네. 들어야 되나? 듣지 말까? ' 하는 생각이 드셨을 수도 있다. 저자도 이런 우리 마음을 잘 알고 있다. 우리에게 '기후 위기', '온난화', '해수 산성화 '같은 말들이 마치 '백색 소음' 같아진 것을. 실제로는 모르고 있으면서도 우리는 대충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지겨워 한다는 것을. 그래서 마그나손은 이 책을 쓴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너무 거대해서 모든 의미를 흡수해버리는 이 주제에 대해 쓰는 유일한 방법은 그 너머로, 옆으로, 아래로, 과거와 미래로 가는 것. 개인적이면서도 과학적인 태도로 신화의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라고. 독자는 그렇게 마그나손의 안내로 시간과 물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된다.
마그나손은 아이슬란드에서 사라진 '오크 빙하'의 추도사를 써달라는 의뢰를 2019년 받았다. 그가 빙하에 고한 작별의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이 추도사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으며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우리가 알고 있음을 보여준다. 과연 우리가 행했는가는 미래에 이 글을 읽고 있을 당신만이 알고 있다.'

빙하가 녹으면 해수면이 높아진다는 것 외에, 빙하수가 얼마나 넓은 지역 많은 동식물(인간 포함)의 생명수인지, 전세계적으로 모든 빙하가 일제히 빠르게 녹는 것이 곧 어떤 결과를 부를지, 우리가 만들어낸 이산화탄소가 그동안 어떤 속도로 늘어났고 바다에 흡수돼 바닷물을 얼마나 산성으로 만들었는지, 우리에겐 큰 차이 없어 보이는 pH농도 0.3이 얼마나 엄청난 숫자인지, 더 이상 모르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 이 책을 만나는 것은 행운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세대의 탐욕을 채우기 위해 다음 세대를 위기로 몰아넣고 있으므로.

*출판사 '북하우스'의 낭독 허락을 받았습니다.


▶ <골룸: 골라듣는 뉴스룸> 팟캐스트는 '팟빵', '네이버 오디오클립', '애플 팟캐스트'에서도 들을 수 있습니다.
- '팟빵' 접속하기
- '네이버 오디오클립' 접속하기
- '애플 팟캐스트'로 접속하기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많이 본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