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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파일] "그냥 두 번 집으면 되잖아?" 환경부 재포장 규제, 예시를 들어보면?

● 환경부가 묶음 할인 판매를 못하게 한다?

지난 6월 환경부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한 언론사가 환경부의 재포장 규제 정책이 시행되면 1+1 같은 할인이 어려워진다고 보도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면 라면, 맥주 등 묶음 판매 자체가 막힐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해당 기사에만 댓글이 1만 개 넘게 달렸습니다. 환경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많았습니다. 포장 규제한다고 할인 행사를 막는 게 상식적이지 못하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 재포장 가이드라인, '가격 할인' 문구가 오해 일으켜

해당 보도가 가능했던 건 '재포장 가이드라인' 문건이 공개됐기 때문입니다. 규제 대상에 '가격 할인'을 위해 재포장된 상품이 예시로 포함됐기 때문입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환경부는 가격 할인을 위해 '재포장'을 하지 말라는 뜻이고, 가격 할인 자체를 막는 게 아니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환경부가 긴급 브리핑까지 열었지만, 오히려 규제 대상 재포장에 대한 범위와 예외 기준을 명쾌히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 환경부 가이드라인 재발표, 비닐로 상품 전체 감싸는 재포장 금지

결국 환경부는 가이드라인을 다시 조정해 발표하기로 했습니다. 이 발표가 9월 21일에 나온 '재포장 세부기준 확대협의체안'입니다. 세부 협의안은 규제 대상인 '재포장'을 정의하고, '재포장'이라 해도 규제 예외인 경우를 정했습니다.

규제의 핵심은 비닐 같은 합성수지 재질로 상품 전체를 감싸는 재포장을 금지하는 것입니다. (박스 형태의 종이 재포장은 해당하지 않습니다.) 편의점의 1+1 행사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편의점에서는 1+1 상품을 구매할 때 상품 2개를 2번 집어갑니다. 앞으로는 대형마트에서도 1+1 등 기획 상품 판매할 때 묶음 포장을 하지 말라는 겁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세부 협의안 문구만 보면, 바로 이해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시를 들거나 쉽게 풀어서 설명해보겠습니다. 해당 세부 협의안을 이행해야 할 주체는 제조사와 유통사로 나눠 설명할 수 있습니다.

★ 재포장 규제 적용대상

① 공장에서 생산 완료된 제품 또는 수입된 제품(수입자가 포장한 경우 포함)을 유통사, 대리점 등 판매 과정에서 추가 포장
-> 유통사와 대리점에만 해당합니다. 국내 제조사가 공장에서 만든 상품 또는 수입된 상품을 합성수지로 상품 전체를 다시 감싸는 형태의 2차 포장을 금지하겠다는 의미입니다.

② 일시적 또는 특정 유통채널을 위한 N+1 형태, 증정‧사은품(주 제품의 구성품에 해당하는 경우는 제외) 제공 등 행사 기획 묶음 포장
-> 제조사, 유통사, 대리점에 해당합니다. N+1 형태의 재포장은 우유와 세제가 대표적입니다. 앞으로는 우유나 세제를 2개씩 묶어서 비닐로 재포장할 수 없습니다. 우유나 세제에 연관된 증정‧사은품을 붙여서 비닐로 재포장하는 경우도 금지됩니다. 다만, 테이프나 고리 등으로 묶어서 파는 경우는 허용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③ 낱개로 판매되는 단위제품·종합제품 3개 이해 묶음 포장(포장 내용물이 개당 30mL 또는 30g 이하인 소용량 제품의 경우는 제외)
-> 제조사, 유통사, 대리점에 해당합니다. 특히, 제조사는 낱개 단위로 판매 가능한 상품을 공장에서 3개 이하로 재포장해서 출시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런 3개 이하 상품을 쉽게 찾기는 힘듭니다. 제조사 단계서부터 재포장된 대표적인 경우가 라면입니다. 하지만 라면은 대부분 4개 이상으로 재포장되는 만큼 이번 규제에서 제외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④ 위 ①~③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서 합성수지 재질(합성수지가 함유된 생분해성수지제품 포함)의 필름·시트로 포장하는 경우로 한정
-> 합성수지는 자연적으로 썩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안으로 나온 재질이 보다 빨리 썩는 생분해성수지제품입니다. 보통 생분해성필름을 합성수지에 함유시켜 빨리 썩게끔 하는데, 환경부는 이런 형태의 필름 포장도 규제 대상으로 판단하기로 했습니다.

★예외기준

① 1차 식품인 경우
-> 채소, 과일, 생선, 곡물, 과일류에 해당합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② 낱개로 판매하지 않는 제품을 묶어 단위 제품으로 포장하는 경우(예, 초콜릿, 껌 등)
-> 껌 1통이 해당됩니다. 보통 껌 1통에 5개가 들어있는데, 낱개로 판매하지는 않습니다. 형태만 보면 재포장에 해당하지만 이런 경우는 규제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③ 수송·운반·위생·안전 등을 위해 불가피하거나 재포장이 아닌 정상제품 포장과 포장방법, 포장재질 및 포장 횟수가 동일한 것으로 환경부 장관이 인정하는 경우
-> 기자 본인도 예시가 떠오르지 않아 환경부 자원순환정책과에 질문했습니다. 담당자도 현재 예시에 해당하는 상품은 없다고 합니다. 만일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만들어놓은 조항이라고 합니다. 재포장 규제 대상에 포함되지만, 1차 식품처럼 수송이나 위생에 문제가 있으면 예외로 인정하겠다고 의미입니다.

④ 소비자가 선물포장 등을 요구하는 경우
-> 소비자가 선물 포장을 원하면 유통사나 대리점은 재포장을 허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테이프로 증정품 묶어 파는 경우는 규제서 제외

환경부가 마련한 재포장 세부 협의안을 두고 규제가 약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일단 포장재를 합성수지를 한정했습니다. 그리고 테이프나 고리로 증정 상품을 묶어 파는 형태가 이번 규제에서 빠졌습니다. 환경부는 앞서 소비자들의 과도한 테이프 사용을 줄이기 위해 자율 포장대를 없애기로 대형마트와 합의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번에는 유통사의 테이프 사용 규제는 이뤄내지 못했습니다.

박찬범 취재파일용

● 유통업체만 규제하면 되나?

이번 규제가 유통사나 대리점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홍수열 자원순환경제연구소장은 이번 규제가 상품을 생산하는 대기업 제조사에는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재포장 규제 적용 대상 ③이 있기 하지만, '3개 이하'로 한정해 라면이 빠졌습니다. 홍수열 소장은 앞으로 유통사가 하지 못하는 묶음 재포장을 제조사가 대신하는 풍선 효과가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 내년 1월부터 시행, 중소기업은 7월부터

이번 세부 협의안은 내년 1월부터 시행됩니다. 다만, 내년 3월까지 계도기간을 부여해 제도가 현장에 정착할 시간을 주기로 했습니다. 중소기업은 좀 더 시간을 주어 내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했습니다. 환경부는 이번 제도가 1년간 시행되면 연간 폐비닐 발생량의 8%를 줄일 수 있다고 예상합니다. 2019년에 발생한 폐기물은 34만여 톤입니다. 2019년 대비 8%가 감축된다면, 2만 7천여 톤에 달하는 적지 않은 양이 줄게 됩니다.

● 연간 폐비닐 발생량의 8% 감축 예상

이번 환경부 규제는 불필요한 포장폐기물을 줄이는 첫걸음을 떼었습니다. 대형마트에 가서 직접 소비자들에게 의견을 들어봤습니다. 대다수가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한 소비자는"그냥 두 번 집으면 되잖아?"라면서 두 번 집는 일이 엄청 번거롭지는 않다고 말했습니다.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이번 제도가 정착돼 포장폐기물이 최대한 많이 감축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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